[6월 122호] 끌어당기는 힘, 여기 칸영화제에서 읽다

끌어당기는 힘, 여기 칸영화제에서 읽다

매력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그들은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은근히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눈빛 하나만 주고받아도 이끄는 그 무엇이 있어,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들은 따뜻한 기운을 받으면서 금방 행복해진다.

최근에 2017칸영화제에 참석하는 행운을 얻었는데, 어느 날 밤에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한국영화인의 밤’을 만들었다. 초대장을 받고, 설렘 반 기대 반으로 갔는데, 유명한 배우와 유명한 감독들, 내노라하는 영화인들의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한 분을 만났다. 영화 그 바닥에서는 오래 일을 한 경력자였고, 영화계 선배로 그들에게는 단연 선생님으로 지칭되는 분이다. 그렇다고 아이돌처럼 혹은 아름다운 여배우처럼, 또 혹은 웃음만 버금어도 인기 만발한 남자배우처럼, 소위 스타는 아니었다. 그저 일상의 어른으로 자리매김되는 그런 남자배우였다. 그의 이름은 변희봉이다, 그래 영화배우 변희봉. 늘 백발성성한 어르신 역할로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장식하니 실제 나이는 정말로 몇 살인지 사실 모른다. 뭐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영화 <옥자>로 봉준호 감독과 같이 거기 칸에 왔는데 ‘한국영화인의 밤’에 참석했다.

나, 거기 칸에 참석한 행운을 얻었지만, 내가 무슨 전문 영화인도 아니고 그저 독립영화를 찍은 감독과의 연으로 잠깐 도와주러 들어간 사람 아닌가. 당연히 변희봉(일상 배우 이름 부르듯이 존칭은 생략합니다)은 본 적도 없고, 아는 사람도 당연히 아니다. 그의 연기를 봐 왔던 평범한 일상의 팬이고 평소 그의 연기를 좀 좋아하는 그런 관객이다. 그의 적절한 감정 안배로 영화나 드라마를 돋보이게 하는 양념 같은 조연의 역할을 보면서 내공이 깊구나, 그래서 저리 오래 연기할 수 있구나, 를 상상한 그런 배우였다. 그런 배우를 여기 파티장에서 만났다. 변희봉 배우와 박찬욱 감독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인사 끝에 나랑 변희봉 배우와 눈이 마주쳐서 내가 가벼운 목례를 하며 눈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아, 모르는 분이다. 그럼에도 눈이 마주쳤을 때 인사를 해야겠다는 이끌림이 있어 인사를 했는데, 그의 반응은 놀라웠놀라웠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음에도 나에게 준 따스한 눈빛은 와, 상대를 바로 압도하더라. 전혀 낯설지 않았고, 전혀 거만하지 않은 눈빛으로 나에게 눈인사를 하는데 사실 좀 놀랍더라. 저게 배우의 기본 포스인가 하는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그 눈빛이 사람을 잡았거든.


배우 변희봉과 필자

이래저래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성거리다 다시 앞쪽 스크린으로 갔다. 아까는 기자들과 개별 인터뷰를 한다고 배우 변희봉은 소위 VIP룸으로 들어갔으나 이제는 나와서 영화 관계자들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있어 다시 앞으로 쓱 가 봤더니, 역시나 예상처럼 그는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평소 팬이었다고 인사를 하고 저도 사진 한 장 찍으면 좋겠다고 하니, 바로 포즈를 취해 주었고, 매니저가 와서 내 핸드폰을 받아 들고는 사진을 찍어 주었다. 사진 한 장 같이 찍었다고 뭐 내가 단박에 그의 매력에 빠졌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을 압도하는 그런 힘이 있어. 경력만큼 연결되어지는 그의 따스한 기운이 사람을 순간적으로 행복하게 한다. 이런 기운이 영화인, 소위 연예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것은 연예인이 품어 내는 기운이 아니고, 사람의 매력으로 끌어당기는 강한 기운이었다. 자석 같은 끌어당기는 힘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적으로 습관화되고, 내재화되는 그런 자신의 내공이겠다 싶으니, 그의 세월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래 사람은 저렇게 나이 들어야 해, 저런 매력이 있으니 오랜 기간 일을 하는 것이고, 주변의 후배들이 여전히 같이 일하자고 역할 매김을 하는 것이고, 여기 칸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싶으니, 진짜 눈부시게 멋지게 보이더라. 물론 나는 여전히 그를 모른다. 실제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인데 잠깐 눈빛 교환하고, 겨우 사진 한 장 찍고는 이런 부러움을 가진다는 것에 그를 잘 아는 사람이 혹이나 그건 아니다, 라고 나한테 강한 제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 어떠냐, 그게 잘 정제된 연기의 한 부분이고 팬서비스라고 한들, 그게 어디 무심코 행동에서 나오는 가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디 가짜를 진짜처럼 아무렇지 않게 일상에서 쏘고 있는 게 그리 쉽지 않잖아. 그런 행동이 가짜라면 배우로서 또한 그의 빛나는 능력 아니겠는가. 사람을 순간적으로 끌어당기는 그 힘에, 나는 ‘따스함’을 읽었다. 변희봉 배우의 그것, 나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원초적 물음표가 생겨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칸영화제에서 영화 <옥자>로 주목받은 봉준호 감독도 그 자리에서 만났다. 나에게 봉준호 감독은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향수끼 이쁘다”라는 어록을 선사한 그런 감독이라 평소 꼭 보고 싶었는데, 파티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는 어찌나 반갑던지. 그래 오늘 내가 저 분과도 사진 한 장 정도는 남기는 인증을 하자. 그런 인증이 아주 큰 의미는 아니겠지만 나름 재미는 있겠다 싶어서, 또 성큼성큼 가서 인사를 하며, 내 배지(영화제 패스카드)를 보여 주면서 “감독님, 제가 진짜 향숙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더니, 봉준호 감독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거두고 나에게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겸연쩍은 모습으로 이렇게 답변하더라. “본의 아니게, 죄송하게 되었습니되었습니다.” 세상에, 본의 아니게 죄송하게 되었다고 답변하다니, 그럼 나는 본의 아니게 향숙이라 죄송합니다, 라고 응대해야 할까, 하는 순간적인 생각들이라니, 그래 그냥 같이 웃었다. 함께 마주 보고 잠깐 웃었는데 사람을 순간적으로 무장해제 하게 하는 힘이 있더라. 그 역시 타고난 대중적 끼가 있구나. 그래서 또 다른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구나.

사람들 관계 속에서 끌어당기는 힘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고, 밀어내는 힘을 가진 사람이 있다. 전자는 늘 사람 속에서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고, 후자는 늘 사람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살아갈 것이다(아, 물론 죽도록 사랑하여 아프다, 그런 감정은 논외로 하고). 관계 안에서 사람의 힘을 믿고, 사람의 에너지를 품고 사는 사람들은 사실 능력보다 좀 더 많은 기회를 얻고, 그 기회를 통한 성공한 성과를 만들어 낸다. 반면 능력은 출중한데 그 능력만큼의 기회를 얻지 못 하고, 관계가 시끄러워서 일이 삐거덕거리고 헐떡 헐떡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일을 잘 하든 못 하든 중요한 것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그게 사실은 굉장한 힘이고, 굉장한 권력이거든. 그런데 그게 어디 인위적으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겠나. 늘 스며들어야 하고, 늘 바닥에서 내 안의 감정선이 평화로워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나. 내 안의 평화가 있어야 상대에 대한 자유로움도 있는 것인데, 그게 쉽지 않으니 시끄럽더라. 내 감정에는 예민하면서 타인의 감정에는 예민하지 않는, 무딘 감각의 사람들은 사실 자기중심적 사고에 많이 빠져 있다. 그래서 주변의 좋은 힘과 에너지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슬픈 일이다.

주변의 영향력을 내 것으로 잘 받으려면 내 안에,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해. 일을 완벽하게 잘하든가, 자신의 단점을 바로바로 인정할 수 있든가, 아주 따스한 기운이나 위트가 있든가. 뭔가 나만의 그 무엇이 있어야 사람의 힘을 서로 교환 할 수 있거든. 그게 쉽지 않으니, 사실 많은 사람들은 관계 안에서 허걱허걱한다. 배우 변희봉에게서 따스함을 읽었고, 영화감독 봉준호에게서 깔끔한 위트를 읽었다

2017칸영화제에 우연히 참석하는 기회를 얻었고, 영광을 누렸다. 올해로 70회 행사를 치루고 있는 프랑스 남부지방의 작은 해변 도시 칸느. 지역 축제가 세계적으로 파산되었고 무려 70회를 넘기면서 환갑 넘어 고희를 맞고 있다. 그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은 어디에 매료되어서 해마다 여기 작은 도시로 이동해 올까. 깐느의 인구가 7만인데 축제 기간 동안 20만이 다녀간다고 하더라. 처음보다 상업적으로 많이 바뀌어서 욕을 많이 먹고 있고 철저한 계급주의로 배지(패스 카드)배포도 각각의 레벨이 있어서 배지 발급도 어렵고, 받아도 기분 나쁘다는 우스개 소리를 한다마는,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는 분명 매력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 매력 안에 나는 그들 구성원이 품고 있는 사람의 매력을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배우로 혹은 감독으로 풀어내는 매력, 관계자 개인으로 풀어내는 그 매력들이 모여서 끌어당기는 힘을 만든다는 생각이다. 내가 칸영화제에 있는 동안 배우도 만나고, 감독도 만나고, 연출자도 만나고, 기획자도 만나고, 기자도 만났다. 일면식이 있던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초면이 그런 사람들과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차를 마시거나 일상의 교류를 하는데 단박에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진짜도 있었고, 뭔가 아쉬운 가짜도 있었다.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각각 고유의 특성이 있고 이런저런 장단점이 있는 것이 사람의 특성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관계 안에서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만들어 내는 매력이 많은 사람은 사는 게 더 평화롭다. 그래서 행복하다. 반면 관계에서 밀어내는 힘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은 덜 평화롭다. 그래서 덜 행복하다. 그거 들여다보면 아주 슬픈 일이다. 나는, 우리는,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는가. 밀어내고 있는가, 그거 들여다보는 것, 그게 우리들 관계의 시작이다. 오늘은 나를 들여다보는 그런 물음표를 가져보고, 그게 느낌표 되는 그 순간을 맞이해 보자, 그게 우리들 관계이니까. 나는 끌어당기고 있을까.

- 2017, 70회 칸영화제 참석하면서, 앙티브 어느 아파트 숙소에서 글을 쓰다.

글 사진 김향숙(문화·교육기획가, 행복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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