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2호] 에이지 하라다_절판하지 않는 책을 만들겠다

에이지21 출판사는 일본 도쿄 도 시부야 구 에비스 지역에 있었다. 출판사는 이곳에 5층 건물을 소유했다. 사무실에 찾아간 날, 맨 꼭대기 5층 공간에서는 파티가 열렸다. 아쇼카 펠로우 재단 관계자가 일본에 방문했고, 바로 이 공간에서 프리젠테이션과 함께 작은 파티를 개최했다.
출판사 대표 에이지 하라다는 반갑게 일행을 맞이했다. 늦은 저녁이었다. 출판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양한 줄기를 가지고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변화하는 시대 출판의 현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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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로 인쇄할 때는 정말 지식인만 책을 낼 수 있었다. ‘윈도우95 시대’ 이후에는 누구나 활자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출판사에 당연한 신뢰를 부여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출판사의 구실이 바뀌어야 한다.

과거 금속활자 시대, 누구나 쉽게 활자를 소유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희소한 무엇을 소유하거나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권위와 권력을 부여받는다는 의미였다. 이제는 접근뿐 아니라 소유도 무척 쉬워졌다. 문고판의 천국이라던 일본에서도 최근에는 문고판보다는 E-book 시장이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이런 변화 앞에 에이지 하라다는 출판사의 핵심 기능으로 ‘편집’을 꼽았다. 이와 연관해 그는 “출판사는 저자를 컨설팅 한다”라고 그 역할을 설명했다. 책은 저자가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다. 저자가 메시지를 좀 더 분명하게 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제대로 편집해 더 많은 대중에게 닿도록 하는 것이 에이지 하라다가 말하는 컨설팅의 목표다.

“출판사를 통해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계를 맺은 저자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큰 보람이다. 나는 우리 프로듀서들에게 ‘절판하지 않는 책을 만들겠다’라고 선언한 후에 책을 만들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하면 책을 만드는 방식이 달라진다. 지금 시대뿐만 아니라 미래 독자도 원하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

에이지 하라다는 저자와 대중 사이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책’이 갖는 본질이라고 할 때, 반드시 기존과 같은 방식의 ‘책’이나 ‘출판 방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도 이야기한다. 강연도 하나의 방식일 수 있고 다양한 다른 채널과 결합하는 형태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비즈니스 모델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모색과 확장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했다. 저자를 결정하고 저자에게 인세를 지급한 후 출판하는 방식이 아니라 ‘북펀딩’이라는 방식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기존의 자비 출판 방식과 유사할 수 있지만 좀 다른 부분도 있다. 책을 기획할 때, 출판사 적정 이윤을 비롯한 제반 비용을 펀딩 형태로 충당하는 것이다. 만약 기업에서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출판’이라는 방식을 고민했다면 그것에 소요되는 비용 전부 혹은 일부를 펀딩하고 그에 따라 수익률을 나누는 방식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저자조차 책을 팔고 싶을 정도로 프로듀서가 책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일종의 컨설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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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지21 출판사는 한국에도 진출해 출판사를 운영했다. 지금은 주식을 처분했지만 한국 출판 문화를 경험했다. 이 기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출판사와 서점의 관계였다. 서점에서 판매할 책을 결정하는 데 출판사가 지불하는 비용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서점이 매대를 출판사에 팔면 당장 이익을 낼 수 있겠지만 서점이 책을 보는 눈이 없어진다. 자기들이 팔고 싶고 많이 팔릴 책을 고를 줄 알고 독자와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서점의 구실인데, 돈을 많이 내는 출판사 책을 매대에 까는 것이다. 출판사는 아무래도 새 책에 마케팅 비용을 많이 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서점에서 출판한 지 시간이 좀 지났지만 여전히 좋은 책은 볼 수가 없다. 저자들이 몇 십 년 동안 생각해서 만들어 낸 지혜가 3개월 만에 사라지는 것이다. 이건 서점과 출판사 모두에게 좋지 않다.”

현재는 서점이 책을 가장 많이 파는 곳이기 때문에 출판사와 서점 간 힘의 균형이 맞지 않고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지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한다. 책을 읽는 것은 서점이 아니라 독자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새로운 수익 모델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으로 출판계의 혁신은 지금과 같은 대형 서점 이외의 곳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출판사와 서점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유통구조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혁신의 출발이라는 그의 생각은 기획을 비롯한 전체 출판 단계에 명확한 비즈니스 감각을 투영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리는 정가를 책정하는 것에 따라 초판 발행 수량을 결정한다. 이 작업은 매우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광고홍보비와 유통비 등을 수익에 얼마까지 쓸 것인가를 비롯해 각 단계별로 투여해야 할 모든 비용을 고려해 적정한 정가와 초판 발생 부수를 결정해야 한다. 그냥 많이 팔면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는 곤란하다. 초판을 발행해서 모두 소화했을 때 이익이 돌아와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산해 보면 한 권에 1,500엔(円) 하는 책을 출판할 때 대략 초판 5천 부는 찍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책 한 종을 출간하는 행위가 700만 엔 혹은 1천 만 엔짜리 프로젝트인 셈이다.

“일본의 편집자는 저자와 출판을 협의하는 단계부터 손익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정도 내용이면, 15,000엔 이상은 받지 못하겠네. 그렇다면 5천 부 이상을 팔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협의를 진행한다.”


에이지 하라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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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지 하라다는 출판사를 하기 전,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가 가업인 인쇄소에 들어가 할아버지와 함께 출판업을 병행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출판업을 함께 진행하는 것이 잘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때 기획하던 책이 몇 종 있었는데, 저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있어 원고를 들고 나와서 차린 것이 에이지 출판사라고 한다. 서른세 살 때다. 지금까지 대략 300종이 조금 넘는 책을 출간했다

“분명한 건, 지금 출판사를 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저자가 꾸는 꿈을 응원하면서 그 성장을 보상으로 받는다. 앞으로 사업을 다각화할 생각이다. 지하 1층에 코워킹 스페이스를 만들고 오늘 보았던 공간은 파티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활용할 계획이다. 종이책을 만든다는 건 어떤 측면에서는 정보를 고정화하는 작업이다. 저자와 출판사 모두에게 강한 책임감을 심어 주는 일이다. 그 종이책을 통해 만들어지는 네트워크의 확장성을 고려하면 단순하게 수익을 생각해 포기할 일은 아니다.”

에이지21 출판사는 단행본 출판을 결정하기 전에 기획자가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진행한다. 직원들 찬성이 있어야만 비로소 출판을 결정한다. 내부 구성원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책은 독자 마음도 결코 움직일 수 없다는 신념에서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는 에세이를 받아 전 직원이 돌려보고 함께 일할지를 결정한다.

“20명의 직원은 나의 손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인 나는 그냥 치어리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과 함께, 그리고 우리의 네트워크를 맺어 가는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만들어 가는 출판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내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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