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5호]대전시민아카데미가 소개하는 1월의 책


(김경희, 책세상, 2009)
2015 아카데미안 추천 ‘다시 읽어 볼 만한’ 책 1위


소설가 김훈은 어느 강연장에서 이렇게 운을 뗀 적이 있다. “평상시 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1항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로 바꿔 읽곤 한다.” 글쓰기의 첫걸음은 의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의 입을 빌려 다시 묻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가?

위의 질문에 공화주의의 핵심 이념을 대입하여 다음과 같이 바꿔 물을 수 있겠다.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국민’이 신분, 지위, 재산 등등의 여러 조건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예속되어 동등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일부 국민이라도 공정한 법이 아닌 특정한 지배자나 권력 집단에 의한 자의적 지배에 놓여 있지는 않은가? 공동체의 각 세력이 공공선을 저버린 채 저마다 사적 이해관계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데 이번은 저자의 입을 빌려 물을 차례다.
지금 왜 공화주의인가를.

공화주의 이념은 서양에서는 저 멀리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로마로부터, 동양에선 중국 주나라의 폭군 려왕에 대한 제후들의 반란에서 시작된다. 공화주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군주제에 대한 저항의 논리라는 얘기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발달한 오늘날 “개인주의에 빠진 시민들은 광장에서 물러나 개인들의 은밀한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자유를 탐닉하느라 정치를 잊어버렸다.” 라고 저자는 토로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적잖이, 공적 영역은 시민과 사회를 억압하고 간섭하는 ‘불편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공화주의 이론을 계승·발전시킨 정치가 또는 정치철학자 틈바구니에 서게 되면 조금 더 선명해진다.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인정하고 그것을 활력으로 최적화시킬 것을 주장한 마키아벨리, 시민들이 자발적 결사 속에서 자치를 경험하고 자유를 체화하는 것이 공화주의의 핵심이라고 여겼던 토크빌, 정치의 공간을 국회나 청와대가 아닌 사람들이 함께 모여 참가하면 생겨나고 흩어지면 사라지는 ‘잠재적 공간’으로 본 아렌트. 이들 공화주의자들에게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공통된 점은 ‘시민의 자유는 정치를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2015년 12월 송년회 자리에서 아카데미안들이 올해 다시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공화주의》를 선택한 것은 추천한 이의 달변 때문도 책이 얇아서도 아니었다. 이제 막 개봉한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7>에서 우주 공화국이 허망하게 폭격되는 장면이 잠자고 있던 어떤 힘을 깨워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한 잔씩 걸친 터라 날 선 이성은 주춤하였고, 더러는 자기가 추천한 책에 몰표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더군다나 그 날은 야권의 대선 후보가 탈당을 선언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라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이상 징후였다. ‘10년 만의 이변이다.’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혹시 2016년에 정치 재해가 발생한다는 신호를 감지할 동물적 감각이라도 깨어난 것일까. 하여 공화주의가 경제 논리라는 한 가지 논리가 독점적 지위를 차지해 공공성의 영역을 질식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일까. 공과 사가 무질서하게 뒤엉켜 불평등이 심화되고 공동체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음을 경고하기 위한 의식적 선택이었을까.

대부분의 사람이 저자처럼 시장 논리의 지배, 서울의 지배, 화폐의 지배를 문제 삼는다. 그러나 자칭 진보라는 사람들도 이른바 시민운동을 한다는 사람마저도 여전히 정치를 직업 정치인들이나 뛰어난 지도자들 곁에 두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공선을 향한 시민의 참여가 기울어진 균형추를 바로 세워 힘없는 자들을 보호할 것이라는 믿음에 회의적이다. 효율성을 가장한 시민 배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저자는 책 말미에서 공화주의는 현실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하나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또한, 공화주의의 통합과 조화의 정치이론은 갈등이 충분히 표출된 후에야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작은 단위의 조직이나 공동체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 일부 명망가들에 의해 운영되는 ‘시민 없는 시민단체’는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따끔한 충고가 고맙다. 또한, 공화주의 정치의 필수 요소로서 시민 교육, 특히 청소년 교육에서 ‘말하기’와 ‘토론 문화’를 굳이 맺음말에 끼워 넣은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와 ‘공화’의 끝없는 균형 잡기는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민주 혹은 민주주의라는 물고기는 공화제라는 물에서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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