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1호] 多 情_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 이조년(고려말 문인)의 시(詩) 다정가(多情歌)

배꽃이 희다 보니, 한밤중 배꽃에 어리는 달빛도 덩달아 하얗다. 봄을 맞이하는 배나무 가지마다 내 마음이 심란하게 걸려 있고 화사한 봄기운에 온몸이 어질어질하다. 봄날 그 ‘다정(多情)’한 마음으로 인해 옛 조상들도 잠 못 드는 날이 참 많았구나 싶다.

한 달 전 즈음 장모님을 우리 집에 모시게 되었는데 애완견도 한 마리 더불어 살게 되었다. 연로하신 어르신을 모시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집 안에서 동거하게 된 말티즈 종의 애완견 ‘두부’가 말썽의 빌미가 되고 있다. 털이 두부처럼 하얗고 부들부들해서 두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두부는 장모님이 손주처럼 아끼는 반려견이다. 밥을 먹을 때나 잠잘 때도 늘 곁에 있다. 장인이 여러 해 전에 돌아가시고 난 이후 두부는 장모님의 더없이 소중한 말벗이 되었다. 모두가 외출하면 장모님은 종일 두부와 단둘이 보낸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두부는 장모님이 세탁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늘 졸졸 따라다닌다. 두부가 배설한 똥과 오줌을 치우고 목욕을 시킬 때도 장모님은 전혀 힘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표정이다.

이렇듯 두부는 장모님에게 금쪽같은 자식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두부가 우리 집에서는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함께 식사하는 시간에 두부는 장모님 곁에 붙어서 마치 어린아이 밥 얻어먹듯이 한다. 당신이 먹는 배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뿐 아니라, 빵이나 인절미 등 이것저것 챙겨서 먹여 주는 데 두부는 장모님에게는 가족보다도 더 높고 귀한 지위에 있는 듯하다. 그런데 장모님이 방에 들어가 쉬고 있는 동안 다른 가족들이 식사할 때나 간식을 먹을 때에도 식탁으로 다가와 누구에게라도 옆에 붙어서 먹을 것을 달라고 낑낑대며 구걸한다.

두부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우리 가족은 ‘지금은 우리가 밥 먹는 시간이야~ 기다려!’ 하며 혼내곤 한다. 그러면서 두부 밥(사료)이 놓인 곳을 가리키며, ‘네 밥 먹어!’라고 하면, 장모님 보기에 서운한 모양이다. 이래 저리 오랫동안 장모님과 두부의 두부의 동거 그리고 식습관 등이 그대로 우리 집 곳곳으로 스며들어 와 버린 것이다.

개는 어디까지나 개이니 개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 가족의 입장이다. 그 대변인이 아내다 보니, 아내는 두부의 행동거지와 관련해서 장모님과 티격태격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급기야 딸이 외출하려다 문밖으로 탈출한 두부를 집에 들여놓으려고 잡는 과정에서 손을 물리는 사고가 났고, 아내는 마침내 ‘난 너하고 같이 못 살아!’ 하고 두부에게 선언을 하게 되었다. 장모님은 그 말이 당신과 같이 못 살겠다는 말로 오해를 하시어 짐을 싸는 일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손주를 귀여워하면 수염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우리의 속담은 사람이 지켜야 할 ‘선’에 대한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다정’한 손주 사랑으로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식별하는 힘을 배우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이런 기준을 애완견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장모님의 정이 듬뿍 담긴 두부 사랑으로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두부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개의 버릇이 무분별하게 잘못 든 것이라고 우리 가족은 보고 있다.

장모님은 당신의 유일한 말벗으로서 두부에 대한 온갖 애착, 즉 ‘다정’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지나친 애착, 무분별한 ‘다정’이 못된 버릇의 원인이니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을 아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까지 합세해서 이참에 두부 교육을 시키자고 장모님에게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아내더러 장모님의 유일한 말벗으로서의 두부를 어느 정도 수용하며 가자고 권하지만, 두부의 무분별한 버릇을 그대로 보고 싶지도 않다. 쉬 잠 못 드는 봄날이다.

글 이명훈(변두리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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