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1호] 오뎅에 대한 모독

대전이라는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성심당의 튀김소보로는 이제 하나의 고유 브랜드가 되었다. 튀소라고 줄여서 말해도 통하는 걸 보면 그 유명세를 짐작할 수 있다. 빵집 운영자의 남다른 노력 끝에 얻은 명성이다.

성심당을 빵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추억이라는 게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남기 마련이다. 내 경우는 성심당의 빵보다 그 골목에 등장했던 떡볶이 포장마차에 대한 기억이 더욱 선명하다.

지금도 떡볶이를 파는 노점이 있지만 1980년대 중반에 선보였던 그 떡볶이는 신선한 매력을 주었다. 우선 떡의 굵기가 가래떡 크기라서 몇 개만 먹어도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일명 왕 떡볶이다. 그때만 해도 동네 구멍가게나 분식집 떡볶이는 새끼손가락 크기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차별성을 가졌다. 여기에 기존 양념의 조합보다 더 다양한 것으로 추정되는 갖은 양념은 식욕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떡볶이 골목으로 불렸고 삼삼오오 몰려가 매콤한 맛을 즐기곤 했다.

대전의 떡볶이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곳 중에 하나가 지금은 사라진 신도극장 뒷골목에 있던 ‘스마일 떡볶이’이다. 떡은 기본이면서 당면과 채소를 함께 넣어 끓여 먹던 집이다. 검정색 프라이팬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아마도 떡볶이와 오뎅은 전생에 형제자매였을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둘은 거의 붙어 다닌다. 떡볶이 한 접시를 주문하고 꼬치에 끼어 있는 오뎅을 떡볶이 소스에 찍어 먹는 방법은 거의 표준화된 매뉴얼 수준이다. 추운 겨울날 오뎅 국물로 몸을 데우던 기억은 지나간 추억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하다. 거리의 음식이 식당 안으로 들어와 오뎅을 주 메뉴로 파는 주점이 생기면서, 어느새 오뎅은 번듯한 메뉴로 대접을 받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방송에서는 오뎅을 어묵이라고 순화시켜 부르고 있지만, 어묵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어감과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전히 나는 오뎅이라고 부른다. 늙어 가는 아저씨들이 영화 〈러브레터〉의 유명한 대사를 변형해 ‘오뎅끼데스까’라는 농담을 던지며 헛웃음을 짓는 것은, 그것이 어묵이 아니라 오뎅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중년의 사내들이 포장마차 앞에서 떡볶이나 오뎅을 먹는 일은 젊은 시절보다 부쩍 줄어들었다. 다만 선술집이나 허름한 실내포장마차에서 저렴한 가격의 오뎅탕을 앞에 놓고 시절을 한탄하는 일은 줄지 않고 있다.

“김 부장은 그렇게 승진하려고 애 쓰더니
끝까지 욕심을 못 놓네.”
“그러게 말야, 그까짓 상무가 뭐라고.”
“대장암에 대한 보상이 고작 상무라니.”
“술이나 한잔 마시자고.”
“우리는 만년 과장으로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살자고.”

오뎅탕 한 그릇에 담긴 뜨끈한 국물은 취기를 달랠뿐만 아니라, 쓸쓸한 시절의 아픔을 달래는 작은 위안이다. 오뎅이 어묵으로 바뀌는 것은,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바꾸었던 것만큼이나 납득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있다. 오뎅이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게 중론이기는 해도 우리나라의 완자탕을 오뎅에 가깝다고 분석하는 이들이 있다. 오뎅과 어묵이 다른 음식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연원이야 어찌됐든 오뎅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아무래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부터로 봐야 할 것이다. 1935년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내외주점, 선술집, 오뎅집은 새벽 1시 이후 영업을 금지하며 이를 어길 경우 엄중히 단속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오뎅의 역사가 상당히 긴 것을 알 수 있다.

5월의 일상 르포를 떡볶이와 오뎅으로 장광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른바 장미대선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광장을 밝혔던 촛불은 조기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촛불민심이 만들어 낸 정치적 밥상에 숟가락을 얹어 놓으려는 후보들이 대거 출마했다. 선거 벽보에 붙은 기호만 15번까지다. 듣도 보도 못한 후보들이 절반 이상이다. 무슨 생각으로 출마를 했는지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지만, 초청 토론회에 나오는 대선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연일 뉴스의 화제가 되고 있다.

뉴스를 장식하는 사진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게 노점에서 오뎅, 떡볶이, 순대 등을 먹는 장면이다. 꼬치 오뎅을 한입 베어 무는 장면은 유세 현장을 장식하는 오랜 전통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인터넷 포털에서 ‘정치인 오뎅 사진’이라고 검색어만 넣으면 전직 대통령부터 이름을 제법 알린 정치 엘리트, 시정잡배 수준의 정치인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올라온다. 군부대에 가면 형편없는 폼으로 총 쏘는 흉내를 내는 정치인이 많고, 요양원에 가면 환자들을 돌보는 장면이 단골이듯이, 전통시장에서 빠지지 않는 게 오뎅 먹는 모습이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른바 ‘서민 코스프레’를 했다. 정치인의 이미지라는 게 실천적 과정을 통해 각인되기는 해도, 한순간의 인상적인 모습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오뎅 하나 먹고, 떡볶이 접시 앞에 앉아 있고, 순대 파는 할머니와 사진 한 장 찍는 것이 포즈의 정석인 것처럼 여기는 정치인이 많다는 것은, 아니 그것을 기획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은 낙후된 ‘포즈의 정치’를 답습하는 구태이다.

특히 서민 간식의 대명사인 오뎅, 떡볶이, 순대를 이미지의 매개로 삼는 것은, 그것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누구나 오뎅을 먹을 수 있고,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오뎅 국물로 쓰린 속을 달래는 직장인들과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스트레스를 날리는 고딩 청춘들의 고민이 음식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그것을 이미지 창출의 소품으로 활용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흐느적거리는 오뎅의 속살은
기다림의 세월
떡볶이의 불같은 표정은 쌓여 있는 화
창백하게 식은 순대는 소화되지 않은
내장의 고통

음식의 속성마다 저마다의 특징을 담고 있다. 농담 같은 위의 비유는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생활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왜 오뎅이 불어 터졌냐고 물으면, 한 시간 동안 손님이 두 사람밖에 지나가지 않아서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없는 일이다. 식은 순대를 먹으며 쓴 소주를 마시는 퇴직자의 뒷모습을, 자신의 그림자라고 생각하는 시대의 초상을 부인할 수 없는 것 또한 지금의 현실이다. 대선 정국에서 서민행보를 하는 후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장밋빛 공약을 쏟아 내고 있다. 그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는 일, 검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말의 성찬은 계속되고 있다. 대선후보 토론회를 보면서, 선거벽보를 보면서, 지면을 장식하는 후보들의 얼굴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이렇게 한마디한다.

“대통령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나?”
“그 인물이 그 인물이지.”
“내가 안 찍어도 그 사람이 되지 않겠어?”
“빌 공 자 공약이지, 그게 가능하겠어.”

정치 허무주의를 말한다. 정치에 대한 불신을 넘어 혐오를 말한다. 먹고 사는 게 힘들다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정치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좋으나 싫으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들이 떡볶이, 오뎅, 순대를 먹으며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찍어 내야 할 대상을 골라야 한다. 대의정치가 민주주의로 가는 분명한 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촛불 민심이 만들어 낸 소중한 밥상 위에, 아무나 숟가락을 얹게 놔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을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오뎅에 대한 모독을 참을 수 없어 투표를 할 것이다.

글 사진 정덕재(시인, 르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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