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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1호] 4월 20일, 상암 오펜센터_배우 이황의 만나다
얼마 전에 면접을 봤다. 작품에 대한 당선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뭔가 계획하면 어색해지는 성격 탓에 큰 준비 없이 임했고, 쏟아지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고 나왔더랬다. 조금 후회가 되었는데, 미비한 준비상태 때문이 아니었다. 열심히 질문해 주시는 분들보다 외려 해당 작품에 대해 스스로 감흥을 못 느끼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년 전 온 힘을 다해 인물을 만들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내 감정은 한참 달라져 있었다. 당시의 나에게 진입하지 못해 작품 속 인물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고, 탈락해도 이상할 것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작품 속 인물 그 자체가 되어 버려, 괴로움에 찌든 모습으로 결기를 드러내는 데 온 힘을 다했던 면접. 누가 봐도 객관화되지 않은 진심은 부담스러웠을 테고, 함몰된 투지는 위험해 보였을 것이다. 아마도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인물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과정은, 배우가 역할로 들어가 연기하기까지 과정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겪은 두 자리가 연극무대였다면, 그날은 망한 거겠다. 근래 <무박삼일>이라는 연극에서 만난 이황의 배우님은 낯이 익었다. 검색하면 작품이 찾아지겠지만, 굳이 앞에 계시니 느껴지는 대로 뵈었다. 두 주연배우의 노래로 가득 찬 무대도 즐거웠지만, 뒤풀이 자리가 백미였다. 모두는 그의 연주에 맞춰 메칸더 V를 불렀던가, 그랬다. 흥겹게 술이 오가는 가운데 문득 신기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는 연기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무대와 사석에서 배역과 자신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쌓아 올린 관록이겠지만, 술이 깨면 다시 뵙고 조금 힌트를 얻고 싶어졌다.
이황의 배우
2017 <무박삼일> 박정욱 役
2017 <덕혜옹주> 이완용 役
2017 <김과장> 박계장 役
경원 저는 어릴 때부터 매체에서 선배님 얼굴을 뵈었었어요.
황의 일반 분들은 잘 모르실 테지만, 영화하시는 분들은 아마 아실 수도 있죠. 단편작업을 많이 했어요.
경원 사석에서 뵙고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좋은 형 같은 느낌. 한참 선배님이신데 굉장히 겸손하시고 후배들 잘 대해 주셔서.
황의 감사하죠. 헌데 이쪽 일은 못된 놈이 잘된다는 말이 있죠(웃음).
경원 음악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황의 제대로 한 건 아니고, 듣는 걸 좋아했어요. 기타는 중학교 때 이사 가던 옆집 형이 놓고 가서 처음 치게 됐죠. 중고등학교 때 꿈이 지휘자여서 음대를 가려고 피아노 학원 다니고 그랬죠. 그러다 고등학교 ‘문학의 밤’ 때 연극을 봤는데 크게 느껴지는 거예요. 형편상 공부를 다 못하고 회사를 다녔는데, 워크샵 공연한다고 회사 그만두고 포스터 붙이러 다녔어요. 월급이 안 들어오니까 그만뒀다고 말하고, 집 나와서 창고극장에서 자고.
경원 삼일로 창고극장.
황의 네. 그러다가 88년에 <금관의 예수>(김지하 시인)가 16년 만에 해금돼서 그걸로 데뷔를 했는데, 대박이 나서 몇 년 했을 거예요. 당시엔 뿌듯했죠. 영화를 처음 찍은 건 <유령>이라고, 단역이었죠.
경원 그게 98년 즘이죠?
황의 그럴 거예요. 정식으로 배역을 받은 건 <오! 수정>(2000)이에요. 그 후로 단편들이랑 최근 상업으로 <덕혜옹주>(2016), 그 전엔 <용의자 X>(2012) 참여했어요.
경원 방은진 감독님.
황의 네, 누나랑 같은 극단 공연을 했었거든요, <지하철 1호선>(1994~)
경원 현재 소속이 있으신가요?
황의 학전이에요. 예전엔 선배들이 영화하면 배신자라고 하던 때가 있었어요. 제의가 들어와도 할라치면 간첩이 된 느낌이 들었죠. 사실 인간이 가지는 예술욕구와 번식욕구가 비슷하잖아요, 뭘 남기고 싶은. 계속 영화에 관심이 있었죠. 작년엔 임창재 감독님과 <푸른 날>(2016)이라는 작품을 찍고 전주에서 틀었는데, 현장 이후 영화는 축제더라고요. 촬영 땐 씻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다가 영화제 때 다 모였는데, 할 이야기가 너무 많고 서로 굉장히 진지하고요. 영화는 내가 연기한 결과물을 나를 포함한 누군가와 함께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매력인 것 같아요. 연극은 몸속으로 한 번에 쑥 들어오는 희열이 크지만, 반면 곧 없어지는 느낌, 일정 부분 소진되어 허탈한 느낌이 있죠. 그래서 술도 자주 먹게 되고(웃음).
경원 물론 어떤 역할이든 다 할 수 있으시겠지만, 스스로 좋아해서 특화시키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황의 악역이죠. 캐릭터로 따지면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스티브 부세미.
경원 아, 매칭이 되네요.
황의 조니뎁도 좋아하고요. 조니뎁이 조금 정형화되었다면 스티브 부세미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걸 바탕으로 계속 만화(변화)하잖아요. 30대 초반까지는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착각이었죠. 배우가 평생 ‘이건 너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야.’라는 말을 한번 들으면 성공한 거거든요. 그러려면 먼저 자기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게 탄탄해지면 혹시 다른 변화가 가능할는지 몰라요.
경원 제가 선배님 처음 뵙고 목소리 좋으시다 말씀 드렸잖아요. 연극에서는 멀리까지 우렁차게 들리면서, 영화에서는 뭉쳐서 찌르는 게 아니라 저음으로 은근히 퍼지는 목소리이시죠. 어떤 이미지가 상상되는 목소리였어요. 또 하나는 덕혜옹주를 봤을 당시 고종 우편에 앉아 있던 이완용의 임팩트를 기억하거든요. 근데 실제 뵙고는 머릿속에서 매칭이 안 됐어요. 어떤 배우는 정확히 악한 외모라 그 표현만 가능하겠다고 여겨지는 반면, 선배님은 악역이라고 해도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걸쳐진 캐릭터시지 않나싶어요.
황의 악이라는 것이 가치판단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각자의 기준에 따라 악으로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배역 속 인물 자신은 아마도 절대 선일 거예요.
경원 흔히 있고 나도 그럴 수 있는 인물인데 맥락상 악이 되어 버리는, 그래서 그 사이 어떤 인간이 드러나는.
황의 타당성이 생기는 거죠. 특히 영화는 일반 사람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주변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니까요. 제가 하고 싶은 악역도 그런 류인 것 같아요.
경원 그래서 애매한 게 아니라 두 가지 매체에 고루 강점을 가지고 계신 거라 느껴졌어요. 이번에 연극을 보면서 그걸 확인한 것 같아요.
황의 저도 리마인드 해야겠네요.
경원 술자리에서도 좋았고요, 노래 많이 불러 주셔서(웃음). 그런데 이번엔 전혀 악하지 않은 달달한 멜로를 하셨어요.
황의 멜로를 할 거라 상상도 못했죠. 제가 낯간지러운 걸 못하거든요. <무박삼일>은 20년 지기 친구가 하는 거라, 애초부터 무대에서 신나게 연주하면서 놀자는 생각이었죠. 친구에게 ‘접촉 같은 건 없지?’ 물었는데, ‘접촉은 없는 데 내적으론 굉장히 야할 수 있다.’ (웃음) 무튼 스킨십이 없어서 다행이죠,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경원 어떤 감당이…(웃음).
황의 제가 만약 30대 총각이고 스킨십 있는 연극을 했으면 여배우랑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아요, 매일 보니까.
경원 감정적으로 그럴 수 있죠.
황의 그래서 굉장히 경계해요. 물론 멜로를 주로 하는 남배우가 매번 여배우랑 사귀는 일도 있을 수있겠죠. 근데 그런 걸 보면서 ‘아, 뭐야.’ 하다가도 ‘그게 배우로서는 어떤 의미일까?’ 하고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조니 뎁 초기작 중에 차 안에서 성행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오케이가 나도 차 안에서 안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경원 어쩌면 그 배우는 그냥 영화처럼 살아 버리는 사람일 수도 있겠네요.
황의 그렇죠. 근데 결국 성격 따라 가는 것 같아요,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의미도 그렇고. 예로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던 레너드 번스타인이랑 카라얀 있잖아요. 한 사람은 너무나 인간적이라 연습시간에 조금 늦어서는 ‘미안합니다. 결혼식을 하고 와서.’ 이런 성격이고, 한 사람은 2차 대전 때 부역(나치)까지 했는데도 그걸 비즈니스로 활용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죠. 물론 둘 다 실력도 뛰어나고 관객에게 인정받는 요소가 있었겠지만요. 다만 스타일이 다른 거죠.
경원 근래 몇 년 사이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는데요. 작가나 감독들이 자기 이야기를 던지기에 이전보다 편한 환경이 마련된 것 같아요. 근데 외려 화두는 더 얕아진 느낌도 간혹 들거든요. 단순 논리로 보면 큰 예산으로 창작하시는 감독님들이 많은 사람의 구미를 충족시키는 방향에 집중할 것 같은데, 외려 그들이 더 마이너하면서 강력한 이야기 위에 익숙한 것들을 가져와 녹여 내는 느낌이 들어요. 반대로 작은 예산으로 창작하는 감독님들이 마이너 한 걸 용감하게 만들면 되는데, 외려 오버로 올라가기 위해 관객에게 읍소하는 작품을 만드는 경우도 보이고요. 이건 배우 역시 비슷한 것 같아요. ‘작품 물고 떠야지.’라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었고요. 물론 어떤 작품을 만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요.
황의 결국은 돈 때문이겠죠. 성공하고 싶은 작가나 감독의 욕망이자 배우의 욕망. 제 입장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아직 작품을 고를 단계가 못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오디션 보러 많이 다니고요. 일 봐주는 분이 계셔도 제가 직접 다니는 경우가 많죠. ‘황의야, 4회 찬데 감독 누구니까 이거 하자.’, ‘작품 뭔데, 배역 뭔데?’, ‘일단 하자, 좀.’ 그러죠. 대본 봐서 영 아니면, ‘형, 이거 못하겠는데?’ 할 순 있지만, 웬만하면….
경원 맞춰서 해 주시는.
황의 그런 입장이에요. 근데 작가나 감독들은 만드는 입장이니까, 얼마나 혼자 힘들고 외롭겠어요. 그나마 연극은 배고프면서도 작가, 스텝, 배우가 같이 연습실에서 지지고 볶으며 위안을 얻을 수 있죠. 영화 작가는 슛 들어가기 전까진 혼자 버티는 시간이 많고, 어쩌다 통화하고 소주 한잔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잖아요. 서로 일하는 시간도 스타일도 다르니까요. 또 그걸 서로 존중해야 하고요. 결국 감독이나 작가도 소속사가 있는 배우처럼 큰 시스템 안에서는 같은 처지일 수 있죠. 감독이 아무리 좋은 소양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도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없냐가 편집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처럼요.
경원 결국엔 힘이 있어야 제작비도 그만큼 따낼 수 있고 편집권도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황의 본인이 카메라 들고 반사판도 들고, 완성하고 나서 ‘영화제 안 걸리면 소극장에서 우리끼리 틀자, 그래도 나는 내 이야기하는 게 좋아.’ 하시는 분도 계시죠. 가끔 영화가 난해한 부분도 있지만, 그런 분들도 있어야 해요. 반대로 ‘나는 투자 받아야 하니까 일단 자극적으로 만들어서 영화제에 하나 걸자.’ 하는 분들도 필요하죠. 근데 문제는 그게 다인 줄 알까 봐. 일단 아카데믹한 것을 거쳐보고 판단이 선 다음 어느 길로 가겠다고 결정하면 좋은데, 그거 안 해보고선 작가주의로 가는 창작자를 인간적으로 무시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어떤 상황에서 자기 이야기를 할 것이냐, 그건 각자에게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죠. 뭣보다 좋든 나쁘든 자신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 한 장면 가지고 술자리에서 싸우기도 하고, 그로 인해 대화가 발생하는 것 자체가 감독에게는 소중한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람들이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이 부조리한 사회가 바뀔 수 있는 기회를 만드니까요.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죠. 그래서 작가적 성향을 가진 감독님들이 많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돼요. 어쨌든 파급효과가 큰 매체를 만드는 사람들이니까요.
경원 2000년도 초반엔 감독들이 연극 많이 보면서 착상하고 배우들 캐스팅도 하고 그랬는데, 근래는 그런 경우가 적은 것 같아요.
황의 주기적으로 달라지죠. 연극 쪽 대본이 영화로 많이 팔려서 영화의 가치가 올라가면 연극계는 다시 내려가죠. 그 인력이 다 영화 쪽으로 가니까요. 그럼 연극계에 다시 신예들이 나타나서 순환되고. 저는 괜찮다고 봐요. 누군가는 연극은 토양이다, 연극 쪽이 탄탄해야 영화나 드라마 쪽을 받쳐 준다 이야기하는 반면, 또 누군가는 연극 쪽은 아마추어라고 하시는 분도 있죠. 서운하긴 하지만 자본의 경쟁 논리에서 그렇게 보실 수 있어요. 이번 블랙리스트 때 보면 미디어 쪽은 블랙리스트 만들어서 돈줄 끊으면 다루기 쉬웠는데, 연극 쪽은 돈줄 끊어도 우리가 언제 그 돈 없어서 뭘 못했나.
경원 원래 없었고요.
황의 원래 없었고, ‘그래? 그럼 우린 더 할 거야.’ 해 버리죠.
경원 선배님은 안 올라가셨나요?
황의 올라갔죠.(웃음) 일단 마로니에 공원 가서 같이 노래 한 곡 부르고 서명하면 안 올라갈 수가 없죠.
경원 저 서명 많이 했는데 안 올라갔어요. 많이 불쾌했죠(웃음). 사실 저는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연극 보면서도 저렇게 매일 긴 시간 동안 연기를 하는 게 어떤 의미일까 잘 상상이 안 되기도 해요.
황의 내 생각엔 배우가 배역으로 서 있느냐 배우로 서 있느냐의 문제 같아요.
경원 어떤 차이인가요?
황의 내가 서 있으면 긴장되고 실수할 까봐 조마조마 하죠. 부자연스럽고 유연하지 못해요. 근데 신기한 게 배역으로 서 있으면 옆에서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나 자신을 관찰할 수 있죠.
경원 내가 움직이고 있는데 또 다른 자아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황의 그렇죠. 그게 장면마다 왔다 갔다 하기는 해요. 장면이 잘 안 풀리면 바로 자신으로 들어가고, 장면이 너무 좋으면 다시 나와서 구경하게 되죠.
경원 아, 자의식 없이 관조할 수 있게 되면 굉장히 편하겠네요. 신선이 된 기분이겠어요.
황의 불교에서 내려놓는다고 하죠. 약간 비슷한 것 같아요. 영화도 같은 맥락인 것 같은데, 카메라 연기는 거울 보는 느낌이 들죠. 바로 바로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경원 연기를 하고자 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많은 수의 아이돌이나 가수들도 롱런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으니까 연기로 넘어오고 싶어 하고. 어떻게 보세요?
황의 저는 오히려 음악 하고 싶거든요. 배우는 기억력 떨어지면 끝이에요. 난 기록성 예술 작업 중에서 음악이 최고인 것 같아요. 소리라는 게 사람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주죠. 제가 5남매 중 막내였고, 어렸을 때 충남 광천 끝 천북이라는 시골에 살았어요. 부모님 일 나가시고, 형 누나 다 학교가고 다섯 살 저 혼자 집에 있었죠. 그렇게 덩그러니 있으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 그게 나를 둘러싼 유일한 것이었던 기억이 있어요.
경원 저는 그게 궁금해서 예전에 이창동 감독님께 여쭤봤어요.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결국 어떤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고, 그걸 이야기가 견인하죠. 음악도 물론 가사와 내러티브가 있지만, 소리라는 건 사람에게 직관적인 울림을 주기 때문에 영화보다 음악이 감정을 전달하는 데는 더 강력한 매체 아니냐고.
황의 뭐라고 하시던가요?
경원 ‘너는 음악을 안 듣고 살 수 있냐 없냐.’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몇 달 안 듣고 살기도 했으니까, 살 수는 있다고 대답했죠. 그러니까 ‘그럼 이야기 없이는 살 수 있겠냐 없겠냐.’ 물으셨죠. 생각해보니 없겠더라고요. 결국 감독님 말씀은,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가 오늘 뭐해야 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하며 하루를 마치고, 문득 누군가가 생각나고 그립고, 그런 모든 일상이 다 이야기라는 말씀 같았어요. 결국 사람이 귀가 안 들리고 눈이 멀어도 살 수는 있지만, 이야기가 없으면 절대 살아갈 수가 없다는 말씀이셨죠.
황의 중요한 이야기네요. 생각해 보면 사람마다 자살하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잖아요. 저도 떠올려 보면 앞으로 이야기가 이어져 봤자 싫고, 이어 갈 이야기도 없을 때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감독님 말씀은 생존 자체에 대한 말씀이시네요, 절실함에 대한.
경원 선배님 말씀 하시는 건 음악의 미덕, 쾌감, 행복하게 살기 위한 어떤 요소를 말씀하시는 거구요. 근데 ‘이야기로 삶이 나아가고 있다는 현상’이 미약해도, 주변의 어떤 것 때문에 삶이 환기되어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 음악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황의 그게 사람을 살게 할 수도 있는 거죠.
언젠가 라디오에서 신해철이 그랬다. “뭐랄까, 황혼이 지는 절벽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거랑 비슷하죠. 이 삼박자가 맞아야 작품이 탄생해요. 누구보다 물구나무도 잘 서야 하고, 계속 하다 보니 더는 갈 곳 없는 절벽에 위에 오게 된 거죠. ‘이제 마지막으로 해 보자.’하고 물구나무를 딱 섰는데, 그때 우연이 황혼이 지고 있는 거예요. 남들이 봤을 땐 멋지겠죠. 근데 우리는 항상 위태위태하고, 언제든 인생 전체가 깨지는 걸 감수해야 하는 놈들인 거죠.” 정확친 않지만, 기억을 더듬으니 대략 이렇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선배님을 보내 드리고 돌아서며 그의 말이 떠올랐다. 어느 시절, 매번 그랬듯 무엇도 명확하지 않은데, 각자 물구나무를 선 어떤 배우와 감독이 좌우로 흔들거리며 나아간다. 한 사람은 조금 더 정리되어 있고, 한 사람은 먼저 가고 있는 그들에게 조금 배우며. 언젠가 다다른 곳에 멋지게 황혼이 지고 있지 않더라도, 서로 고생했다 격려하며 절벽 끝에서 만나면 좋겠다. 오랫동안 준비한 이야기는 끝났더라도, 그때처럼 노래 부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