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1호] 대전산업용재유통단지_안녕, 낯선 세계야

숫자가 쓰인 길이 건물을 잇는 통로다

전혀 모르는 세계다. 톱니바퀴처럼 생긴 기계가 돌아가며 윙 소리를 낸다. 탁자 위에 커다란 은색 판이 기계가 지나가며 두 동강 났다. 멍하게 바라보았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 안경 쓴 마른 남자가 기계가 일을 끝낼 때마다 다시 탁자 위에 은색 판을 올려 놓는다. 조금 전, ‘대전산업용재유통단지(이하 공구상가)’라고 쓰인 문을 지나 터덜터덜 얼마 걷지 않았는데,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난 것 같다.
616번 버스를 타고 공구백화점 정류장에 내렸다

“알루미늄 소재 자르는 거예요. 판재 작업이죠. 여기는 소재 집이라고, 비철이나 금속 같은 걸 절단해서 가공 집에 넘겨요. 엔지니어링 집에 물건을 판매하는 거죠. 소재 집은 알루미늄, 스뎅, 써쓰 같은 게 원재료를 다루는데 주력 품목이 조금씩 달라요. 저희는 알루미늄이나 써쓰를 많이 해요.”

외계어 같은 말을 가만히 받아 적었다. 공구상가에서 처음 만난 건 알루미늄과 같은 원재료를 엔지니어링 집에서 가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한남금속’이었다. 유통단지 안에는 가공하기 전 원재료를 다듬는 소재 집, 원재료로 부품을 만드는 엔지니어링 집, 공구 제품을 판매하는 가게, 오디오 수리점, 설계도 제작하는 곳, 각종 자석을 판매하는 곳, 안전장치, 안전모를 판매하는 곳 등 다양한 공간이 있다. 한남금속처럼 소재를 직접 만드는 곳은 공구 상가 안에는 많지 않다.

한남금속은 공구상가의 17동 건물에 있다. 공구상가의 남문 입구로 들어가 왼쪽에는 16동, 17동 건물이 있다. 18동 건물은 남문 입구에 들어가기 전 외따로 떨어져 있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1동부터 16동이 나온다. 모든 건물은 지하 1층부터 지상 3~5층으로 되어 있고, 한 동당 80여 개 가게나 사무실이 입점할 수 있다. 총 18동 건물에 지원상가 3동이 있다. 지원상가에는 식당, 커피숍, 편의점 같은 편의시설이 있다. 21개 동을 모두 합해 ‘대전산업용재유통단지’라 부른다. 사람들은 공구상가, 공구백화점이라고도 한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바깥은 또 다른 풍경이다

너무나 낯선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원래 여기가 포도밭이었어요. 2만 평이 넘었지. 공구상가를 시에서 조성한 건 아니고, 준비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원동에 공구상가가 많이 밀집해 있었어요. 처음엔 공구 취급하는 가게들이 소규모로 모임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이야기 나온 게 ‘대전도 공구상가가 밀집해 있으면 어떨까?’라는 의견이었어요. 서울 청계천이나 인천 같은 데는 대단위 유통 상가가 있거든요. 모임에서 출자를 같이해서 만들어 보면 어떠냐는 뜻이 좋으니까 사람이 많이 모였어요. 3백 명 넘는 사람이 공동 출자금을 모아서 땅을 산 거죠.”

산업용품 소모 자재를 판매하는 김 씨의 이야기다. 김 씨는 공구상가를 조직한 대전공구상협동조합의 조합원은 아니었지만, 1997년 공구상가가 조성될 때 입주했다. 공구상가가 건설된 후 협동조합은 해체되었다. 공구상가는 1997년 대덕구 대화동 298의 2만6천여 평 부지에 건설되었다. 인동, 중동, 원동 등 대전시 내 도심에 흩어져 있던 공구상가 몇이 1997년 이전에 10여 년 정도 모임을 하면서 조합비를 모았다. 모은 조합비로는 대지를 매입하고, 건설사에 땅을 공급해 건물을 짓게 했다.

“알아보던 부지가 많았는데, 대한통운 자리로 가려다가 조건이 안 맞아서 지금 자리로 왔다고 이야기 들었어요. 건물은 1997년에 지었을 때부터 이 모습이었어요. 처음 지었을 때보다는 많이 활성화된 편이에요. 지금 1층에 있는 상가는 대부분 오랫동안 여기에 있던 분들이에요. 오래들 됐다고 봐야죠. 지금 모습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10년 정도 걸렸나?”

무엇이 낯설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나란히 있는 1동부터 12동은 건물 옥상이 연결되어 있다. 1동 옥상으로 올라간 자동차가 자리가 없을 때는 2동 옥상으로 갈 수 있고, 또 자리가 없을 땐 3동 옥상으로 갈 수도 있다. 동마다 건물은 떨어져 있는데 옥상은 연결된 형태다.

길가에 이 재질로 만든 조형물 같은 게 많아서 물었더니 함께 매달려 있는 폴리우레탄 일신폼을 뿌려서 굳힌 거라고 한다, 일부러 조형미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옥상 주차장에도 차가 빼곡하다

바퀴, 콘베어, 프로파일 같은 간판도 낯설게 느껴진다

“처음 지을 때부터 지금 모습이었지. 건물을 튼튼하게 지으면 되는 거지. 뭐, 이런 게 신기할 게 있나? 워낙 주차할 데가 없어요. 가게가 이렇게 많은데 가게마다 차 한두 대는 꼭 있으니까 지금도 주차 공간이 없어서 상가 앞에 막 주차하고 그러잖아. 주차 공간은 더 있어야 해요.”

낯선 기계가 돌아간다, 계속 돌아간다

1997년 완성된 형태의 건물을 짓고, 2017년 30여 년 동안 별로 변한 것은 없다. 사무실 안에서 한참 회로도를 설계 중이던 한상현 씨는 1997년 공구상가 안에 자리를 잡았다. 회사나 개인 등과 거래하는 한 씨는 전자회로를 디자인해 공장에 보내 주는 일을 한다. 모니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움직거리며, 컴퓨터 안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원재료부터 가공된 상태의 부품까지 과정과 그 안에 얽힌 사람이 얼기설기 붙어서 또 다른 세계처럼 자리했다

사실은 익숙해야 할 것이 더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대영기전을 운영하는 김요연 씨는 2012년 사업을 시작하며 대화동 공구상가로 들어왔다. 모터, 펌프 등을 수리하는 일을 하는 그는 가게에 있는 날보다는 출장 가는 날이 더 많다. 출장이 없는 날에도 오전 8시 30분이면 가게로 출근한다. 가게에서는 사람들이 맡겨 놓은 물건을 수리하고 기계를 정비하는 등 나름의 할 일이 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땐, 두려움이 제일 컸지.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게 스무 살부터였어. 돈을 벌어야 하니까, 기술을 배웠던 거지. 일이 적성에 맞지는 않았어. 10년 정도 하니까 다른 일도 해 보고 싶고, 늙어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도 되고, 그래서 그만뒀지. 뭘 할까 하다가 개인 용달을 했어. 적성을 찾는다기보다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할 수 있는 걸 찾은 거지. 처음엔 경기가 좋아서 용달업도 괜찮았는데, IMF 터지면서 딱 안 되더라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른 방향으로 가도 뾰족한 수가 없는 거야. 다시 기계 밥을 먹게 된 거지. 후회하지는 않아. 어쨌든 우리 애들도 키우고, 지금까지 한 일이니까.”

김요연 씨가 출장 나가 주로 하는 일은 아파트나 건물의 지하에서 옥상으로 물을 올리는 펌프나 탱크를 고치는 일이다. 대부분 큰 건물에 설치되니 기업이나 아파트 등 거대한 건물이 김요연 씨가 수리하는 대상이 된다.

“조금 수리하거나 고치는 건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나 같은 기술자를 부르는 거야. 딱 보면 알아야지. 생각해 봐.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오만 데 다 진찰하고 나서 아픈 데를 짚으면 어떨 것 같아? 신뢰가 안 가지. 그렇게 되려면 10년은 해야지. 10년 정도 지나면 좀 들여다보면 어디가 잘못됐는지 금방 알게 돼. 일도 번복하면 안 되고, 고치고 나서 또 고쳐야 하면 골치 아프잖아. 그냥 쉽게 생각해. 기계 고치는 의사라고 생각하면 돼.”

공구 도서관처럼 책장에 공구 자재가 나란히 앉아 있다, 이름은 후렌지, 맹후렌지 등 생소하지만 다들 이름이 있다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자 김요연 씨는 ‘의사’라는 말을 꺼냈다. 그가 고치는 건 각종 기계다. 그것들을 수리하기 위해 모양이나 쓰임새, 얼마나 썼는지를 살피는 일을 진찰이라고 생각하고, 수리하는 걸 수술이나 약 처방 등으로 생각하면 된다. 의사나 약사와 같은 직업은 익숙하고 흔하게 생각되는 데 김요연 씨의 직업 ‘엔지니어’는 낯선 낱말이었다.

공구상가를 빠져나온 후 곳곳에서 그곳에서 발견했던 부품들을 볼 수 있었다. 화장실 호스, 세면대에 연결된 관, 연결된 관을 조여 주는 부품, 서대전역 델리만쥬 가게에서 혼자 착착 돌아가며 델리만쥬를 만드는 기계의 연결 부품, 의사보다 더 가깝게 그 낯선 세계가 우리 삶에 있었다.

글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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