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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1호] 공시생, 그들은 무엇을 원했나
C 군은 2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대전에서 나름대로 규 모가 있는 전기·소방 공사 관련 회사에 다니던 그는 직장생활 2년차 에 접어들며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무직은 일을 오래 해도 배울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었어요. 기술직 처럼 직장 생활을 오래 한다고 해서 전문가가 될 수도 없었고요.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고 퇴직은 일찍 다가오는데, 퇴직 후 삶이 그려지지 않았어요. 먹고살 길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퇴직 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시작했다. 전문 적인 분야면서 개인의 시간이 보장되는 직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찰공무원이 눈에 들어왔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바람도 결정에 힘을 더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작은 사업장을 운영해 가족과 함께한 기억이 적었던 터였다.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부모, 아이가 성 장하며 느끼는 고민을 함께 나누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그 길로 직장 을 그만두었고 긴 수험생활에 들어섰다.
“매일 7시에 일어나 바로 학원으로 가요. 오전에는 수업을 듣고, 오 후에는 인터넷 강의를 보며 공부하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도착 하면 11시 정도가 돼요. 매일 그런 일상이에요.” C 군의 동생 S 군도 공무원시험 수험생이다. 국가공무원 선거행정 시험을 준비하며 지방공무원 일반행정 시험도 함께 치르고 있다. 법 학과에 다니던 S 군은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고 사법시험이 철폐되며 자연스럽게 공무원으로 눈을 돌렸다. 학연, 지연 없이 시험만으로 당 락을 결정한다는 게 공정한 싸움 같아 보였다. S 군에게 공무원은 공 정한 직업이었다. S 군도 C 군과 비슷한 일상을 보낸다. 아침 6시 반 에 일어나 독서실에 들어가면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온다.
“보통의 삶을 살고 싶었어요. 정년이 보장되고 안정적인 삶이요. 근 데 참 쉬운 게 없네요.”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K 양은 작년 초 가산점 취득에 시간 대부분을 할애했다. 여경은 모집 인원이 적어 가산점 만점인 5점을 무조건 채워야만 했다. 작년 대전 여경 경쟁률은 200대 1, 올 상반기에도 단 2명만을 채용했다. 가산점을 취득할 방법은 다양했지만, 워드프로세서 자격증과 1종 대형운전면허증을 선택했다. 여기에 어릴 적 취득한 태권도 3단 자격증을 합해 만점을 채울 수 있었다.
건축학과를 졸업한 K 양은 서울에 있는 건축 잡지사에서 1년 반 동안 일했지만, 업무도 회사 분위기도 잘 맞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건축 관련 일을 찾아볼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현실적인 부분이 와 닿았다.
“친구들이 다 건축 관련 일을 해요. 야근이 일상인 직업인데 그에 대한 보상은 없어요. 게다가 기본 급여도 적은 편이에요. 일한 만큼, 노력한 만큼 대우받고 싶었어요.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여가와 육아휴직, 복지제도가 보장되는 공무원을 선택했어요. 수많은 직렬 중 경찰이 저에게 가장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K 양의 일과는 다른 공시생들과 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 한 과목을 공부한다. 점심을 먹고 저녁이 될 때까지 독서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잠시 운동을 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경찰공무원 체력시험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오랜 수험생활에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게 눈치 보이기는 하지만 붙을 때까지 계속 볼 생각이에요. 한국에서 공무원만큼 대우받는 직업이 없잖아요. 대전으로 내려오며 내린 결정을 바꾸고 싶지 않아요.”
경쟁률이 높은 직렬 중 하나인 교육 행정직에 합격한 J 양은 지난달 논산에 있는 초등학교에 발령받았다. 대학을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지 2년 만이었다. 그녀는 22살인 대학교 3학년 때 공시생이 됐다. 취업 준비를 시작하기도 전, 애초에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들어가려고 해도 전공인 철학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원서를 넣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게 됐어요. 취업 준비를 생각해본 적도 있지만 토익, 토스, 각종 자격증, 한국사에 대외활동으로 이어지는 취업 스펙을 준비할 자신도 미친듯한 취업 경쟁률을 뚫을 자신도 없었어요. 얼른 노선을 변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공무원 시험이 절실했다. 일단 시험에만 합격하면 일반 직장처럼 결혼하거나 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을 것 같았다.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의도하지 않게 빨리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실적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에서도 자유로울 것 같았다. 그만큼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어릴 적, 엄마는 항상 바빴어요. 문화센터에서 선생님으로 일하셨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일이 자주 있었어요. 국제결혼을 한 여자분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 남편들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엄마를 힘들게 한 적도 있어요.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회사를 그만두셨어요. 그때부터 엄마가 ‘아빠처럼 공무원 해라.’라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 사회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J 양은 1년 반 동안 공무원 시험을 위해 본가인 천안에서 노량진을 KTX로 통학했다. 매일 통학에만 2시간이 소요됐다. 이동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노량진에서 방을 얻어 생활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비용이 너무 컸다. 첫차를 타고 학원에 도착하면 8시 반, 오전에는 일타강사라 불리는 교수님(노량진에서는 학원 강사를 교수님이라 불러야 한다)의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스터디 모임을 했다. 영어 단어와 국어 문법 스터디였다. 스터디 모임이 없는 날에는 수업 후 바로 학원에 있는 자습실로 향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도착하면 11시가 조금 넘었다.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존심도 상하고 자존감도 떨어지고…. 같이 스터디하던 사람이 합격해서 나가면 또다시 마음잡기가 힘들었고요. 언제 합격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어요.”
인기가 많은 교수님 수업을 듣기 위해 6시 반 차를 타고 학원으로 향하는 날도 있었다. 그 시간에 출발해도 J 양의 자리는 강의실 중간이었다. 4시에서 5시 사이에는 줄을 서야, 맨 앞줄에 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교수님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강의실에 앉는 건 다행이었다. 조금이라도 늦은 날에는 같은 수강료를 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 강의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영상반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카톡도 없애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시험을 준비한 지 2년이 지났고 시험합격 통보를 받았
“저는 운이 좋은 케이스예요. 주변에 아직도 스터디 하며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요. 처음 공무원에 합격했을 때는 너무 기뻤죠. 내 자리가 있다는 느낌. 그런데 일을 해보니 조금 회의감도 들어요. 내가 그렇게 바란 일이긴 한데, 이렇게까지 공부해야 하는 일이었나.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노량진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특별한 직업인가.”
지난 4월 8일 2017년 9급 국가공무원 시험이 치러졌다. 4,910명 선발에 22만 8368명이 지원했다.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지원률이라고 한다. 이날 하루의 결과로 누군가는 길고긴 공시생 생활을 마무리하고, 또 누군가는 길고 긴 공시생 생활로 다시 돌아온다. 1년에도 몇 번씩 수험생이 밀물과 썰물처럼 들어오고 나가지만, 그 숫자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