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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1호] 박희인, 김신일 사회자_우리는 둘이 아니였다
11월 첫 집회는 둔산동 타임월드 옆 우리은행에서 열렸어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집회가 이렇게까지 커질 걸 예상하지 못했어요. 주말 첫 집회가 열리던 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인원이 집회 장소로 나왔어요. 혼자 온 사람도 있고, 가족의 손을 잡고 나온 사람도 있었죠. 둔산동 타임월드 앞이 워낙 차량이 많은 도로잖아요. 경찰도 주최측도 거기에 나온 시민도 예상하지 못한 인파가 몰리니 어찌할 도리가 없는 거예요. 두 번째 주말 집회 때는 더 많았어요.
선두에서 구호를 외치는 자동차를 따라 사람들이 행진하잖아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데 맨 뒷줄에 선 사람들의 꽁무니를 만난 거예요. 그 많은 사람이 길을 꽉 채우니까 경찰도 어쩔 수 없이 거리를 통째로 내 줬어요. 은하수 네거리, 타임월드 건너편에 두주 만에 자리를 옮겨 섰는데 그게 참, 뭉클한 경험이더라고요. 서울 같으면 광화문이라는 장소 가 있지만, 우리는 상징할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그런데 타임월드 앞 도로가 그런 장소가 된거예요. 온전히 시민의 힘으로 만든 무대였어요.
매일, 매 순간이 희망이었어요. 우리가 정한 원칙이 있었어요. 무대 위에는 시민만 오른다. 어떤 정치인이 와도 마이크를 주면 안 된다. 정치인은 여기 모인 시민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이 라는 판단이 있었어요. 다만 끝까지 집회에 참여하고 행진까지 했던 정치인들은 마지막에도 소개했어요. 같이 수고했다는 걸 알린 거죠. 무대에는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꼭 서야 한다고 신청한 시민이 많았어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부터 어린 친구들까지 다양했죠. 마냥 어리게만 판단했던 학생들이 똑바른 생각으로 할 말을 또박또박 할 때, ‘아, 앞으로 희망이 있겠다.’ 그랬어요.
집회를 진행하면서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죠.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분들은 노골적으로 집회를 방해하셨어요. 술을 드시고 무대에 대고 협박을 일삼던 분, 소리 지르며 사회자를 찾거나 촛불 든 시민에게 시비 걸면서 욕하고 몸싸움 하려던 분도 계셨고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시민들을 더 단단하게 했던 것 같아요.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어요. 끝까지 집회를 이끌 수 있었던 것도 시민의 모금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총 1억 7천만 원이 모금되었고, 덕분에 마지막까지 마무리를 잘할 수 있었어요.
글쎄요. 사회자라서 특별히 애쓰고 수고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희는 앞에 드러나는 사람이었잖아요. 매번 무대에 설 때마다 많은 분이 걱정도 해 주시고, 먹을 것도 가져다주시는 분이 많았어요. 그런데 무대 뒤에서 애쓰는 자원활동가분이 훨씬 많았거든요. 정말 큰 집회를 준비할 때는 아침부터 나와서 밤까지 일해야 했는데도 묵묵하게 할 일을 해 주신 분들이 있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의무감이 지워졌던 것 같아요. 장갑을 껴도 손가락이 얼어붙은 것처럼 추웠던 날이 있었어요. 그런 날에도 몸을 떨면서 자리한 분들을 보면서,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게 뭘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라도 추워서 사람들이 덜 나올까 봐 걱정하며 나온 분들이거든요.
이번 집회는 진행자 입장에서 신나는 면이 있었어요. 몸이 힘들고 고돼도, 진짜 국민과 함께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매번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 자체가 힘이 되었어요. 그동안 많은 집회의 사회를 보고 참여도 해 보았지만, 그 어떤 집회보다도 관심이 뜨겁고 참여율이 높았던 집회였거든요. 세월호 유가족분들은 대통령 탄핵 집회가 시작된 이후에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배후에 있는 세력을 목격한 사람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거죠.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여기까지 오는 데는 힘들고 외로웠던 순간이 있었어요. 세월호 가족 분들도 그런 시간을 버티신 거였고요. 그동안 수많은 집회로 작은 것부터 지켜 온 게 단단한 힘이 되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누군가는 청산해야 할 사회 문제 때문에 끊임없이 싸웠기 때문에 폭발 정국에서 시민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집회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에게 항상 물었어요. 혹시 집회에 처음 참석해 보신 분 있냐고, 그러면 집회마다 반 이상이 손을 들었어요. 매일 2/3 정도가 처음 참석한 사람이었어요. ‘집회’라고 했을 때 드는 편견이 많이 깨졌다고 하셨어요. 특히 탄핵 인용 결정된 다음 날 너무 좋았어요. 국민이 승리했다, 잘못된 대통령을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렸다는 게 감격스러웠죠.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무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자리에 모인 시민께 큰절을 했어요. 자리에 앉은 시민분들도 저희에게 맞절하는데, 감격스러웠어요. 서로 고마웠던 것 같아요. 어쨌든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이번 탄핵과 집회 과정이 우리 지역의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죠. 어쨌건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은 거니까요. 우리가 모두 승리자다. 그 말이 계속 되새겨지더라고요. 과거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구속 이전의 시대로 가지 않는다, 이제 펼쳐질 세상도 우리가 결정할 거다, 자신 있게 사회를 바꿔 나가자, 그런 말을 꼭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