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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자란다 - 신뢰의 주춧돌
우리 집에는 여섯 살 된 어여쁜 딸 보미가 있다. 작년까지는 집 앞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 니다가 올해 2월에 졸업을 했고, 며칠 전 집 앞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 보미야 일어나야지, 유치원에 갈 시간이야.
- 엄마, 졸려. 너무 피곤해, 더 자고 싶어.
- 그러다가 늦는단다. 어서 일어나서 준비해야지.
- 엄마, 그런데 배가 너무 아파.
- 배탈이 났니? 왜 그럴까? 일단 씻고 옷을 입으렴.
- 엄마, 오늘만 안 가면 안 돼?
입학 이후 3일째 되는 날에 처음 이런 모습을 보이더니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같은 레퍼토리로 등원을 거부했다. 급기야 “유치원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라며 눈 물을 보이고는 이불 밖으로도 나오지 못했다. 우는 아이를 억지로 보낼 수도 없고, 그 아이를 데리고 함께 출근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아… 어떡하지
봄은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이 움트고, 움튼 생명의 싹이 수많은 곳에서 각양각색 으로 피어나는 계절이다. 새싹들이 새로운 땅과 공기, 주변의 동식물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피어나게 될지 설레기도 하지만, 새로운 계절 속에서 그 여린 새싹들이 과 연 생존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
매년 3월이 되면 많은 아동은 새로운 학급과 학년,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 학기 를 맞이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온도 차는 있겠지만, 대개의 아동은 설렘과 함께 두려움도 느낀다.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친구들이 나를 인정해줄까?’, ‘혹시 왕따 를 당하지는 않을까?’ 혹자는 이런 부담과 두려움이 대개 성숙하지 못하거나, 나이 가 어려서 겪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인 남자들이 군대라는 낯선 환경 에 입대해서 보이는 어리바리 한 모습을 떠올려 볼 때, 이것은 단순히 나이가 아니 라 낯설고 부담스러운 환경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새 학기, 만약 당신의 자녀가 갑자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개의 부모는 나처럼 도대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새하얀 백지상태가 될 것이다. 잠시 후 정신이 들고나면 “혹시 무슨 일 있니?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하지 않겠니?”라며 차분히 대응할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 “너 빨리 안 갈래?”, “그렇게 하면 나중에 더 힘들어져.”라며 애써 아동의 두려움을 외면하고 학교로 보낼 것이다. 아동이 새로운 환경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부모 역시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학교에 안 가게 되었을 때 벌어질 자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실 이런 아동을 위해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학교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경우, 해결할 방법이 적을뿐더러, 설령 극단적 방법으로 전학을 한다 해도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물론 심각한 학교 폭력 피해, 교사의 학대, 수치스러울 수 있는 사건 발생 등의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부모들의 생각은 “참고 학교에 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이럴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진보적인 교육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공통으로 이렇게 주장한다. “아동은 성장하며 종종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들은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의 주춧돌 위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한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내 딸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새로운 환경에 마주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아이는 새로운 환경이 주는 불안감에 압도되어 갈등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 단순히 그냥 싫어서 가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안해서 못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참고 학교에 가보라는 부모의 말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아동이 가진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하는데, 그것은 아동이 스스로 잘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만드는 일이다. 결국,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잘해낼 수 있다고 믿어주는 일밖에는 없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3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다. 요즘 보미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유치원에 간다. 무슨 노래냐고 물어보니 ‘원가’란다. 유치원 이름만 이야기해도 눈물 흘리며 안 가고 싶어 했던 아이가 이제는 유치원 이름이 들어간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같은 3월인데 이렇게 달라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신뢰의 주춧돌 위에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걸음 떼기 두려웠던 3월의 발걸음은 그렇게 새봄의 설렘이 되어 노랫소리로 돌아왔다. “행복이 넘쳐나는~ 우리 유치원♬”
글 윤대진(대전시 교육청 가정형 WEE센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