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19호] 메뉴판 뒤에 숨은 들깨 칼국수
맛집 기사를 이렇게 써도 되나
청양 칼국수는 외관에서부터 60년이라는 어마어 마한 숫자를 내세운다. 그만큼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켰다. 공간과 맛은 남았지만, 주인은 여러 번 바뀌 었다. 처음 식당을 시작했던 할머니는 바뀐 주인들에 게 전설의 ‘누구’처럼 전해 내려오는 모양이다
“지금 건물 관리는 칼국수 장사를 시작했던 할머니의 아드님이 하고 있어. 어머니가 오랫동안 장사를 했던 건물이라 건물에 대한 애정도 있고, 그래서 팔 일은 없으니 마음 놓고 장사하라고 하더라고? 그 아들이라는 분도 여든이 넘으셨으니까 할머니는 살아계셨으면 100세가 넘으셨겠지. 듣기로는 할머니가 새댁 때부터 했던 장사라고 들었어. 글쎄 내가 몇 번째인 줄은 모르지.”
2017년 청양 칼국수를 이끄는 건 홍사선 씨다. 레시피와 공간을 고스란히 받아 8년쯤 장사를 하고 있다. 일부러 오후 4시쯤 식당을 찾았는데 검정 양복을 입고 술 한 잔씩 걸친 사람들이 한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다. 식당엔 그 손님들 말고도 혼자거나 둘인 사람이 계속 들어와 칼국수 한 그릇씩을 시켰다. 나도 그 사람들 틈에서 우뚝 서서 “들깨 주세요.”라 고 말했다. 홍사선 씨는 “들깨 뭐?”라고 물어서 당황하며 메뉴판을 보는데 메뉴판에 칼국수는 조개와 매운 칼국수뿐이었다.
홍사선 사장님
“원래 메뉴가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없앴어. 점심시간 같은 때 사람이 몰리면 그 많은 메뉴를 어떻게 감당해. 그래도 단골들은 메뉴판에 없어도 알아서 찾으니까 해 달라는 사람은 해 주지.”
홍사선 씨는 들깨를 외치기에 ‘언제 우리 집에 왔었나.’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메뉴판에는 그림자만 남은 들깨 칼국수가 식탁 위에 올랐다.
꼭 한입 먹어 보고 싶게 생겼네
약간 날카로운 홍사선 씨에게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지 살금살금 눈치를 살피는데 검은 옷을 입고 무더기로 앉은 테이블 쪽에 앉은 손님이 “아니, 이게 뭐야? 맛있게 생겼네? 메뉴판에는 없는데?”라고 말을 붙였다. 그러더니 식탁 위에 남긴 들깨 칼국수를 먹어도 되겠느냐고 제안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홍사선 씨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손님들이 제일 많이 찾는 게 수육이랑 매운 칼국수야. 매운 걸 엄청들 좋아하더라고. 매운 칼국수도 한 번에 되는 게 아니야. 다진 양념을 1주일 동안 숙성시켜서 국물을 내는 거야. 들깨도 아침에 물에 불려 놓지 않으면 걸쭉한 맛이 안 나. 우리는 면도 직접 뽑아. 그러니 일이 많지. 아이고. 뭐든 쉽게, 한 번에 되는 거 하나도 없어.”
들깨 칼국수에는 정말 들깨가 듬뿍 담겼다. 꼭 콩국수처럼 국물이 걸쭉한 느낌이다. 그래서 처음엔 감자가 들어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아니란다. 진한 들깨 국물에 애호박, 쑥갓, 당근이 송송 담겼다. 푹 익은 깍두기와 아침에 담근 겉절이를 번갈아 가며 냠냠 먹는다.
맛을 안다는 단골들은 그림자만 남았어도 찾는 메뉴이기에 아침마다 들깻가루를 물에 불려 준비한다. 들깨 칼국수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불린 들깻가루를 기본 육수 베이스에 넣고 조리하면 된다. 육수 베이스와 재료를 아끼지 않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재료. 재료가 제일 중요해. 다 똑같은 소리지만, 내 식구가 먹는다고 생각하면 맛이 없을 수가 없어. 마늘값 오르고, 배춧값 올라도 우리는 수입 안 써. 김치도 아침마다 담그고. 나는 시장에서도 물건 까다롭게 산다고 소문난 사람이야.
청양 칼국수
주소 대전 중구 대종로 505번길 31
영업 시간 10:00~22:00
글 사진 이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