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9호] 포켓몬고 한 달 체험기_세계의 끝과 포켓몬 원더랜드

포켓스톱이 너무 멀리 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충남대학교로 가는 길은 멀 고 험했다. 대전 중구 유천동 현대아파트에서 지하 철 서대전네거리까지 가는 동안 배터리는 40%가 닳 았다. 1.10km를 걸으며, 포켓스톱 여섯 개 정도를 방문하고, 다섯 마리의 포켓몬을 잡았을 뿐이었다. 어쩐지 긴장되었다. 가방에서 보조배터리를 꺼내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레벨21이에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한 열 흘 정도? 학교 안에서만 하는데, 여기에 포켓스톱이 많으니까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산책하는 겸 하는 거죠. 그렇게 하니까 금방 오르던데요.” 충남대학교 미술대학 앞에서 빙빙 돌던 레벨21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나는 조금 조바심이 났 다. 빨리 레벨20까지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 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충남대학교에는 곳곳에 포 켓스톱이 있지만, 특히 조형물이 많은 미술대학 앞 에 포켓스톱이 몰려 있었다. 미술대학 앞에는 조형물이 많아 등록된 포켓스 톱이 많았다. 포켓스톱은 주로 조형물이나 건물, 교 회, 관광지의 표석 등 그곳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적 은 것에 등록되어 있었다. 포켓스톱이 많이 없는 중 구에 사는 나는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새로 도감에 등록됩니다

2017년 1월 24일 한국에 정식으로 포켓몬고가 출시되었고, 월간 토마토 사무실에서는 그날 두 명 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시작했다. 그 이름은 이송은 과 박지윤, 월간 토마토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 송은이는 친구가 알려 줘서 포켓몬고를 시작했 다. 송은이는 적극적인 플레이어라기보다는 생활형 플레이어로 분류할 수 있다. 적극적인 플레이어의 특징은 레벨에 집착하며 수시로 포켓몬고를 실행한 다. 포켓몬 진화, 강한 포켓몬 모으기, 체육관 점령 등 다양한 기능을 꿰고 있으며, 포켓몬마다 특성을 연구한다. GPS 조작 없이도 레벨을 올릴 수 있는지 등을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하는 데 시간을 쏟는다. 송은이는 몬스터볼을 던지고, 포켓몬을 잡는 데만 주력하는 생활형 플레이어였다. 지윤이는 현질(現-질:현금을 내고 물건을 사는 일이라는 뜻으로, 온라임 게임 따위에서 유료 아이 템 사는 일을 이르는 말)을 한 플레이어다. 딱 한 번 이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집 주변에 포켓스톱이 없어서였다. 지윤이는 걷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가끔 화끈한 데가 있다. 그래서 딱 한 번 몬스터볼을 구매했으나 다시는 하지 않았다.

                                    

신난다~! 메달을 획득했다!

     

“데구리 나왔다! 아가씨, 데구리 봤어?” 과연 레벨31의 말대로 데구리가 출현했다. 볼 안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세 번 반복하고, 데구리가 잡혔다. 2월 16일, 인터넷 신문에서 포켓몬고를 잡다가 커플이 탄생했다는 미담 기사를 본 날이었다. 희귀 포켓몬의 출현으로 기쁨을 나누고, 종일 포켓스톱을 함께 다니며 정을 키웠다는 기사였다. 나는 유림공원에서 데구리의 출현을 친절하게 알린 50대 중반, 청주에서 대전의 유림공원까지 출장을 온 레벨31과 대화를 시작했다. 레벨31은 포켓몬고를 하러 아침 9시 30분부터 유림공원에 머물렀다. 나와 레벨31이 만난 시간은 오후 6시 반 경, 레벨31은 그날 앞으로 세 시간은 더 머물며 게임을 하다 갈 생각이었다. “열흘 정도 됐어요. 처음엔 몰랐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보니까 더블린에 사는 분이 포켓몬고 잘하는 법 포스팅을 했더라고요. ‘아일랜드 사랑’이라는 블로그인데 보고 따라 하니까 점수가 금방 올라가. 일단 숍에서 포켓몬 박스를 업그레이드를 해야 해요. 업그레이드하기 전에는 250마리만 잡으면 더 잡을 수 없잖아. 계속 업그레이드를 하다 보면 천 마리까지 잡을 수 있더라고요. 사탕 열두 개만 있어도 진화하는 구구나 뿔충이 같은 걸 최대한 많이 잡아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행복의 알을 사용하는 거예요. 행복의 알을 사용하면 30분 동안 두 배의 XP(Experience Point)를 받을 수 있어요. 애들을 진화시키면 500XP를 받는다고. 두 배면 1000XP잖아. 30분 동안 최대 80마리까지 진화할 수 있어. 그렇게 80마리까지 진화할 포켓몬을 모아 놓고 계속 진화를 시키면 레벨이 금방 오르더라고.” ‘사탕’은 포켓몬이 먹고 진화하거나 강화할 수 있는 ‘먹이’다. 포켓몬마다 진화할 때 먹어야 하는 사탕 개수가 다른데, 몇 마리 포켓몬은 사탕이 많지 않아도 진화할 수 있어 많이 잡을수록 많이 진화시키고, 많은 XP를 얻는다. 레벨31은 그렇게 열흘 동안 하루에 7~8시간 정도를 투자해 포켓몬고를 하며 레벨을 올리고, 진귀한 포켓몬도 많이 잡았다. 많은 곳에 다녀 봤지만, 유림공원만큼 좋은 장소가 없었다. 일단 포켓스톱이 많은데도 면적이 넓지 않아 계속 걸어 다닐만 했다. 레벨31이 포켓스톱을 따라간 곳은 대전의 뿌리공원과 서울의 고려대학교 등이 있는데, 모두 언덕이 높아 다니기가 힘들었다. 유림공원은 포켓스톱이 평지에 고루 퍼져 있다. “애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레벨 높게 키워서 애들한테 아이디 주려고. 애들이 좋아하려나는 모르겠지만(웃음). 그리고 하다 보면 포켓몬들한테 정이 들더라고. 이상해씨, 파이리 이런 애들 눈을 보고 있으면 너무 순수해서 나까지 정화되는 느낌이야.”

유림공원에는 현수막이 붙었다

2월 17일: 갱신한다 OK           

레벨31을 포함해 진정한 고수는 점잖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날 만난 1960년에 태어나 물리학을 전공했다던 레벨23 역시 다방면으로 연구하고, 고민하며, 포켓몬고를 ‘플레이’ 하고 있었다. “여기 잉어킹이 많이 나와서 잉어킹을 잡으러 왔어요. 일단 최대한 많이 모아서 갸라도스로 진화를 하려고요. 아무 포켓몬이나 진화하면 안 돼요. 여기 CP(Combat Power: 전투능력 수치)가 있잖아요. CP가 높다고 무조건 좋은 포켓몬이 아니더라고. 일단 IV(Individual Value: 개별값)가 높아야 해요. IV는 IV GO라는 앱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건 아무리 진화를 해도 높아지지 않아요. 얘네들이 타고난 능력인 거예요. 이게 낮으면 아무리 강화하고 진화해도 강한 포켓몬이 안 되는 거죠.” 레벨23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다. 함께 걷는 파트너 포켓몬을 지정해 걸으면, 그 포켓몬의 사탕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떻게 다 알았냐는 물음에 게임에 있는 모든 기능을 하나씩 눌러 보고 살피라는 조언을 얻었다. 그날은 레벨17이었다. 레벨17이 되는 동안 파트너 포켓몬 한 마리 데리고 다니지 못했다는 것이 조금 멋쩍었다. 그날은 아직 2세대 포켓몬이 나오기 전이었고, 곧 있으면 2세대 포켓몬이 출현할 거라고 충남대학교에 다니는 레벨17이 먼저 이야기해 주었다. “1세대 포켓몬에는 정이 없어서 쉬엄쉬엄하고 있어요. 2세대가 출현하면 본격적으로 해야죠. 저는 핫삼을 좋아해요. 빨갛고, 항상 세거든요. 포켓몬고가 포켓몬 활용한 게임 중에서는 제일 캐쥬얼하게 나온 거예요. 닌텐도에서 플레이하는 포켓몬 게임은 더 전략적이고 포켓몬마다 특징을 살려서 기술을 계산해야 해요. 기존 게임들에서 7세대 포켓몬까지 데이터가 있으니 포켓몬고에서도 7세대까지는 당연히 나오겠죠. 저는 최근에 현금 2만 원 정도 썼어요. 평소 재미있게 하던 걸 좀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 쓰는 돈이니까 아깝지 않아요. 다른 취미에 비하면 싼 편이죠.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아. 본격 플레이 말고 그런 것(알을 부화하려고 일부러 걷거나 포켓몬고 전략을 위해 검색하는 일 등)도 플레이에 치나요? 그러면 꽤 될 것 같은데요.” 계속 새로운 포켓몬을 등장시키고 플레이어들이 염원하는 포켓몬 교환이나 직접 배틀 등 게임은 더 재미있게 진화하고, 본격 플레이어들은 계속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레벨17은 이야기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좀 슬퍼요. 포켓몬마다 IV가 다르잖아요. 어떤 애는 태어날 때부터 강하고, 어떤 애는 약한 거예요. 그런데 약한 애들은 다 박사한테 실험용으로 보내잖아요. 그 대가로 강한 애를 키울 수 있는 사탕을 얻는 거고요. 얘네를 사람으로 생각하면, 태어날 때부터 약한 애는 죽이고, 걔를 죽여서 얻는 사탕으로 강한 애를 더 강하게 키우는 거잖아요. 강한 사람만 살아남는 거죠.”

앗! 볼에서 나와 버렸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포켓몬고를 켜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한참 손가락으로 포켓몬을 잡고 있는데 조잘거리는 두 학생의 이야기가 들렸다. 둘은 중학생이고 얼마 전에 고등학교 배정을 받았다. 공부하는 게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휴대전화 화면에 정신이 팔린 내게 들리기 시작한 건 한마디 때문이었다. “야. 10분이 얼마나 중요한데!” 나는 레벨21이다. 포켓몬 도감에 120마리를 등록했고, 포켓몬고를 신경 쓰며 91.60km를 걸었다. 가만히 서서 몇 분 동안 그곳의 배치된 포켓몬과 싸워야 하는 체육관 배틀은 28번이나 이겼고, 진 것도 포함하면 그보다 많이 체육관 앞을 서성거렸다. 포켓스톱은 566개를 방문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중요했던 시간에 포켓몬고를 하고 있었다.

                      


이수연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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