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8호] 무대에서 다 하고싶다_박준우 연출

가난한 남자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 남자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매일같이 일한다. 대위의 집에서 면도를 해 주는 일과 세 달 동안 완두콩을 먹으면 망아지가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실험을 하는 의사의 실험 대상이다. 제때 집에 돌아가는 날이 없다. “금방 나가야 해.” 집으로 돌아간 보이첵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그래도 가난은 늘 함께다. 남자의 곁에 있는 아내는 가난 속에 머물기는 너무 아름답고, 젊고, 화려한 삶을 동경한다. 아내는 그를 유혹하는 군악대장의 품에서 밤을 보내고 화려한 것들을 손에 얻는다. 그것이 아내에게 익숙해질 즈음 남자는 사람들에게 아내의 외도를 전해 듣는다. 연극 <보이첵>은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작품이자 미완성 희곡이다. 1913년 11월 독일 뮌헨에서 초연한 후 많은 연출가가 다르게 해석해 무대에 올렸다. 지난 12월, 대전에서는 박준우 연출의 해석이 담긴 연극 <보이첵>을 볼 수 있었다.

                         

연극의 본 고장에서 연기를 배우고 싶다

박준우 연출도 처음엔 배우로 연극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 교사였던 극단 금강의 임은희 대표를 만났다. 스무 살이 되고는 바로 극단 금강으로 들어왔다.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바로 옆에서 연극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대학도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연극에 전념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클라운 마임을 배웠다. 연기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생계를 잇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행사장에서 기다란 막대기 위에 올라 광대가 되는 일이었다. 일하다 보니 춘천 마임 축제에도 가게 되고, 좋은 선생님도 만났다. 그러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쳐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게 박준우 연출의 삶이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 

“연기연예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가르치면서 저도 공부가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새로운 꿈이 생긴 거죠. 대학도 중퇴하고 연극만 했으니까 아무래도 절대 정교수는 될 수 없잖아요. 마임으로 번 돈을 모아서 비행깃값만 마련해서 러시아에 갔어요.”

미국이나 영국, 독일에서도 연기는 스타니 슬라브스키 시스템으로 배운다. 스타니 슬라브스키는 러시아의 연출가이자 배우로 러시아의 모스크바 예술극장을 창립하고, 사실적인 연기 기법으로 후세를 지도하며 스타니 슬라브스키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왕 배우는 거, 러시아의 국립 쉐프킨 연극 대학교에서 정통 연극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무작정 갔어요. 1년 동안은 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1년 후에 입학했어요. 1년을 살면서 언어 공부를 했어도 부족한 게 많잖아요. 그런데 다행히 대학에서 처음 1년 동안은 통역을 붙여 줬어요. 1학년 때 기초를 배우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학사를 마치고 석사를 하면서 연출을 배웠어요.”

                   

                         

좋은 시스템을 함께 배우고 싶다

연극을 배우며 그 나라의 문화를 배웠다. 부러운 마음으로 하나씩 살핀 러시아는 연극을 대하는 생각부터 달랐다. 지하철에는 백발노인이 돋보기를 끼고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 인터넷이나 영화, 텔레비전같이 빨리, 쉽게 소비되는 문화보다는 연기하는 걸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연극이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러시아 국민은 어떤 일을 하는지 관계없이 한 달에 한 번이면 말끔하게 옷을 입고 극장에 가요. 연극이나 발레, 음악회 같은 문화를 꼭 즐기는 거예요. 그게 오래전부터 뿌리 깊게 자리한 국민 정서인 것 같아요. 그만큼 극장에서는 일주일이면 일곱 개 공연이나 연극을 무대에 올려요. 매일 다른 무대를 볼 수 있는 거예요. 모스크바에만 80개 극장이 있는데 대부분 그렇게 해요.”


연극을 하는 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매체는 연극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연극 무대에서나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모든 게 분업화되어 있다. 박준우 연출이 러시아 쮸즈극장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작품에 배우로 참여했을 때였다. 대기실에 미리 걸려 있는 옷을 입고, 분장한다. 대기하고 있다가 무대에 나갈 차례가 되면 안내 요원이 배우를 데리러 온다. 대기 요원을 따라 무대 뒤로 가면, 가지고 나갈 소품을 손에 쥐여 준다. 배우는 무대에서 연기만 하면 된다. 


국가에서도 엄청난 지원을 한다. 극장에 연극을 올리면 몇 개 극장은 200석 좌석 중 100석을 국가에서 산다. 국가는 이 티켓을 정년퇴임을 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퇴직한 노인들이 공연을 보러 다니고, 문화생활을 즐긴다. 연극대학 학생증이 있으면 모든 극장의 연극을 무료로 볼 수 있다. 극장은 항상 만석이다. 그만큼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고, 그러다 보니 모두 열심히, 즐겁게 무대에 오른다. 

                        

                      

즐겁게 연극 하고 싶다

2006년 석사 과정까지 러시아에서 마치고 다시 대전에 돌아온 게 2013년도였다. 대전에 돌아와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죄와 벌>, <거북이 혹은>을 연출했다. 모두 번역극이었다. 좋은 번역극을 대전 관객에게도 많이 보여 주고 싶다.

“<보이첵>은 대전문화재단 차세대 아티스타 지원을 받아서 만든 연극이에요. 각색하고,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소속 극단이 없으니 모두 소속이 다르고, 상황이 다른 배우가 모였어요. 완전 외인구단이었죠. 오디션을 보는데 주인공 보이첵을 맡은 친구는 13년 만에 무대에 서는 거였어요.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었던 친군데, 어린 나이에 가족이 생겼어요. 그걸 책임지려다 보니까 연극 무대는 쳐다보지도 못했던 거죠. 무대에 대한 목마름이나, 절실함이 역할과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연극을 계속했던 친구들이 무대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에게 무대는 너무 절실한 공간이니까 그런 게 잘 표현되었던 것 같아요.”

<보이첵>을 만들며 강조했던 건, ‘작품 만들며 절대 술 마시지 않겠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차 마시면서 하자. 서로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지 말자. 역할에 맞는 연기는 연습해 오고 모두 모였을 때는 맞춰 보기만 한다.’였다. 
“연기 연습은 따로 하고, 모였을 땐 맞춰 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 같이 있을 때 개인 연습을 하면 서로 시간을 잡아먹는 거잖아요. 다행히 끝날 때까지 큰 소리 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게 했어요. 배우 모두 열심히 해 줬어요. 무엇보다 연극을 만드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어요. 러시아에서 정말 부러웠던 게 사람들이 다들 너무 행복하게 연극을 한다는 거였어요. 죽 행복하게, 연극 하고 싶어요. 러시아의 제 스승이 항상 하던 말씀이 있어요. 모두 사랑하라고 하셨어요. 배우도, 이야기도, 무대도, 모두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뻔한 이야기 같지만 정말이에요.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니까 모두 행복한 거예요. 앞으로는 더 좋은 연극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어요. 좋은 연극이면 결국 관객이 알아봐 줄 거라 생각해요.” 

                      

                            


이수연  사진 이수연,허윤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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