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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7호]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아침 해가 뜨고 천천히 햇볕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문 여는 시간은 오전 열한 시. 그때부터 오후 한 시 사이가 7평 남짓한 공간 안에 햇볕이 차례로 머무는 시간이다. 문 앞부터 시작해 공간 깊숙이까지 한 번씩 손을 내밀고 물러간다. 제대로 아침 인사를 받으며, 이유 없는 공간이 하루를 시작한다.
등잔 밑에서 ‘이유 없음’을 찾다
이유 없는 공간은 선화동 이유 있는 공간의 이웃에 있다. 이유 있는 공간은 2014년 문을 열었다. 네 작가의 작업실로 쓰이던 공간은 작업실 겸, 비슷한 또래 젊은 작가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공간으로 쓰였다. 이유 있는 공간에 모인 네 명의 작가가 각자 다른 길을 찾아갈 즈음, 바로 옆 빈 공간도 이유 없는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이유 있는 공간을 함께 운영하던 이길희 작가와 친구 이용성 씨가 카페로 만든 것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작업을 많이 못했어요. 이유 있는 공간 만든 게 벌써 3년 전인가. 이후에 딱 2년 동안 직장에 다녔거든요. 일 그만 두면서, 쉬면서, 뜻 맞는 친구랑 공간을 알아보고 다녔어요. 한 달 정도 놀면서 알아봤어요. 선화동, 대흥동, 인동, 정동, 중동, 가양동, 대사동까지 안 가 본 데가 없어요. 그런데 꼭 그렇잖아요. 마음에 들면 비싸고, 너무 넓고, 2층이고, 하나씩 걸리는 게 있는 거예요. 마음에 딱 맞는 공간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유 있는 공간 옆에 빈 데가 있는 거예요. 여기에 해 보면 어떨지, 용성이와 상의해서 공간을 얻었어요.”
생각해 보니 빈 채로 꽤 오래 있었는데 들어오겠다던 사람도 없었고, 무언가 있을 때에도 창고처럼 쓰이던 곳이었다. 주인에게 이야기해 공간을 둘러보았다. 사실 둘러볼 것도 없이 좁은 곳이었는데, 이유 있는 공간 옆이라는 것과 이정도 크기라면 부담없이 시작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두 사람의 의견이 맞았다. 지난 여름부터 준비해 3개월 정도 뜯고 붙이고, 비우고 채우는 걸 반복했다. 마치고 보니 10월이 다 가 있었다. 10월의 마지막 날, 이유 없는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문을 열었다.
주인 A, B와 수많은 C의 공간
“제가 주인 A고 용성이가 주인 B예요. 용성인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주로 제가 자리를 지켜요. 일단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문을 열고 지난 한 달 동안 많은 걸 했어요. 문 연 기념으로 공연도 하고, 상영회도 하고, 책 모임도 주최해서 열고 있고요. 저만 아니라 공간 쓰고 싶은 분들이 종종 연락 와서 작지만 한쪽에서 대관해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요. 아직은 일단, 재미있어요. 선화동도 조금씩 변하는 추세거든요. 언제까지 영업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공간을 바탕으로 계속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이유 없는 공간에서
혼자 찾아 본 이유
이유 없는 공간에는 손님을 위한 세 개의 독립적인 공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깊숙하게 자리한 공간 1은 출입문에서 가장 멀고, 계단 한 칸 정도를 올라간 높이에 있다. 은밀하고 조용한 이야기를 하기에 좋을 것 같다.
공간 2는 조금 떠들어도 좋을 것 같은 곳이다. 몇몇이 먹을 것 펼쳐 놓고 떠들며 앉아 있기에 좋은 곳이다.
공간 3은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곳이다. 창문 밖으로 펼친 풍경이 생각보다 좋다. 가만히 혼자 앉아서 작업을 하거나 조용히 있고 싶은 사람에게 좋을 것 같다.
공간 문을 열자 주변에서 책이며 그림 등을 가져다 주었다. 이유 없는 상영회, 독서 모임 등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건 더 많은 사람이 공간에서 만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주인 B 이용성 씨는 주로 평일 저녁 혹은 주말에만 가게에 있다. 이용성 씨 역시 이유 없는 공간이 사람이 모이는 플랫폼이 되길 바란다.
“지금은 주로 지인들의 모임 장소로 쓰이고 있어요. 앞으로는 이런 모임이 더 활성화하면 좋겠어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더 나아가서는 지역 주민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 강좌나 그림 그리기 교실 같은 것들을 운영할 생각이에요.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주소 대전 중구 선화서로 64
전화번호 010.2702.9365
영업시간 11:00~22:30
* 페이스북에 카페 이유 없는 공간을 검색해 일정을 확인해 주세요.
글 이수연 사진 이수연, 주인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