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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7호] 나의 혼술체험기,혼술각
나의 혼술 역사는 대전 중구의 모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서부터 시작했다.
# 나는 편견에 자유롭지 못했다
12월 12일 월요일, 저녁 일정을 마치고 9시가 넘었다. 저녁 사이 잠깐 내린 비가 그쳤다. 툭툭 내린 비는 아스팔트에 푹 스며들었다. 푹 젖은 아스팔트 바닥이 그날따라 발걸음에 맞춰 물컹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튕기는 듯한 기운을 받아 더 빠르게 밤을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 사이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 맥주 칸에는 전 세계가 담겨 있었다. 요즘엔 무엇이든 쉽게 만날 수 있다. 간단하게 집에서 술을 즐기는 문화 때문인지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냉장고를 가만히 채우고 있었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건 ‘홈(home)술’이라고 부른다. 혼자서 술을 마시는 건 혼술, 혼자서 놀이공원에 가는 건 혼놀, 혼자서 놀이공원에 가는 사람을 두고 혼놀족이라고 한다. 혼자 영화 보는 건 혼영, 시대를 반영하여 태어난 말 중에는 혼참러라는 말도 있다. 혼자서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맥주 냉장고에 앉은 것 중 가장 비싼 맥주를 골라 카운터 앞에 섰다. 체코의 필스너우르켈이라는 다소 발음하기 어려운 맥주였다. 초록색 플라스틱 테이블을 앞에 두고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힐끔 쳐다보고 가는 사람은 아홉 명 정도였다. 지나가는 사람을 세었던 건 사람들이 날 보고 갈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딱 한 사람만이 매우 드러나게 내 눈과 테이블 위의 맥주를 쳐다보았을 뿐 다른 사람들은 곁눈질 후 금방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다.
#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포털사이트에서 혼술을 검색했을 때 대부분 사람이 해시태그를 붙여 ‘#혼술각’이라고 썼다.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몰라서 우리 디자이너에게 물었다. “나영아. 궁금한 게 있는데 혼술각 이렇게 하면 무슨 뜻이야?”
“혼자 술 먹는다. 혼자 술 먹게 생겼네. 외롭게 됐다. 킥킥.”
“아. 각이 뭐야?”
“음. 딱 그렇게 각이 잡혔다. 사이즈 나온다. 예를 들어 날씨 너무 춥다. 패딩 입어야지. 이건 ‘패딩각’. 크리스마스 솔플각은 크리스마스에 솔로 플레이하게 생겼다. 이런 뜻이에요.”
나영이는 친절하게도 손으로 각을 그리는 이모티콘을 보내 이해를 도왔다. 아, 우와 같은 감탄사만 내뱉었다. 실로 놀라웠다. 2016년 10월 국립국어원에서 개통한 사용자 참여형 온라인 사전 우리말샘(opendict.korean.go.kr)에서는 각을 뿔 각(角) 한자와 함께 ‘어떤 일이 일어날 조짐이나 분위기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풀었다. 우리말샘은 국립국어원이 인정한 국어사전은 아니지만, 위키피디아처럼 일반인 누구나 새로운 어휘를 온라인 사전에 첨가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국가가 만든 사이트다. 일반인이 작성한 뜻에 전문가 감수를 거쳐 풀이를 단다.
# 나도 안다
혼술각 12월 16일 금요일 두 번째 ‘혼술각’은 유성의 작은 술집이었다. 요리하는 두 주인을 마주 볼 수 있는 바 형태의 테이블이 빙 둘러 있었다. 문을 열고 빠르게 공간을 살피고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있는 구석 자리로 직진했다. 모든 안주 메뉴가 5,900원이었다. 돼지껍데기야채볶음과 칵테일 같은 술 한 잔을 시켰다. 마주 본 자리엔 옷과 가방만 놓았을 뿐인데도 자리가 꽉 찼다.
“혼자 오셨어요?”
“네.”
“아아아(동그란 눈에 안타까움). 자리 옮겨 드릴까요?”
“아. 왜요? 여기 앉으면 안 돼요?”
“아아아(당황). 여기 편하세요? 문 앞이라 추우실까 봐.”
“음. 아니요. 괜찮아요.”
거절한 후 앉아 술을 마시는데 어쩐지 까칠해 보였을까 봐 미안했다. 이후에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친절한 말투로 술을 시키곤 했는데, 이 또한 나의 편견이라는 걸 깨달았다.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은 까칠하거나 사교성이 없다. 그런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맛은 좀 괜찮으세요?”
두 번째 안주로 볶음밥을 시키자 사장이 말을 걸었다. 괜찮다고 답했는데 다시 한번 “짜진 않아요?”라고 물어서 조금 생각하다가 밥이랑 같이 먹으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짜서 밥 시키는 거예요?”라고 물어서 “아. 뭐. 그냥요.”라고 답하자 사장은 작은 접시에 안주 하나를 더 내주었다. 메뉴판에 있던 히말라야냉두부였다. 이것과 함께 먹으면 조금 덜 매울 거라는 말과 함께였다. 나는 공짜로 메뉴를 받아먹으면서도 조금 민망했다.
사장은 나에게 조금씩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혼자 오는 손님이 많을 법도 한 공간인데도 6개월 전 술집이 문을 연 이후 혼자 온 여성 손님 중에서는 두 번째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하하. 첫 번째가 아닌 게 아쉽네요.”라고 대답했다. 볶음밥까지 졸지에 안주를 세 개나 놓고 술을 마셨는데, 테이블 위 안주 말고도 또 다른 안주가 있었다. 뒤쪽 테이블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이들은 내가 들어온 순간부터 10여 분간 혼자 술 마시는 것에 관해 자기들끼리 토론을 벌였다. 이후 주제를 넘나드는 그들의 대화도 자연스럽게 나의 안주가 되었다.
# 칭찬은 고개를 숙이게 한다
12월 26일 세 번째 혼술은 동네의 작은 바였다. 20분 정도 밖에서 망설이다가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쿵쿵 계단을 올랐다. 문을 몸쪽으로 당겨서 열고 들어갔다. 문을 마주하고 테이블 네 개가 이어져 있었다. 맞은편에는 바 직원들이 손님과 함께 있었다. 문을 당겨서 열고 들어가기까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눈을 마주친 바 직원의 눈과 입이 동시에 동그랗게 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또다시 그대로 직진을 해서 눈앞에 보이는 테이블에 앉았다.
세 명씩 앉는 테이블 세 개는 하나도 빈 곳이 없었고,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한 남자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칵테일 한 잔과 마른안주가 나오고, 홀짝거리며 술을 마시고 있는데 “내 것만 세게 탄 거 아니야?”라는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레이디 바에 여자 손님이 혼자 온 건 처음 봤어요. 여자 둘이 와서 양주 마시는 건 봤는데 말이야. 참 용기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같은 걸 시켰는데 내 것만 너무 세게 탄 것 같아. 손님이 한 번 맛 좀 봐요.”
이렇게 남자와 바 직원, 우리 셋의 대화가 시작됐다. 바 직원과 남자는 손님과 직원으로 알고 지낸 게 4년이 넘었다고 했다. 매우 자주 바에 혼자 와서 술을 마신다는 남자와 직원은 친한 사이 같았다. 나를 두고 이런저런 상상을 했던 모양이다. 둘은 내가 남자친구와 싸워서 속상해 혼자 술을 마시러 온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냥 술이 마시고 싶어서요.”라고 이야기하고 웃었다. “오빠. 언니한테 그만 물어봐. 얼마나 속상하겠어.” 더 큰 오해를 불렀던 것 같았는데 내버려 두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여자가 혼자’였다.
“나도 다른 바에 가서 혼자 술 마셔 보고 싶었는데 한 번도 해 보지 못했거든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언니랑 오빠랑 떨어져 앉아 있으니까 늦게 온 손님은 둘이 연인인데 다툰 줄 알더라니까요.”
잠깐 나를 화재에 올렸던 둘은 일터에서 있었던 일, 키우는 강아지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도 함께 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앉아서 칵테일 두 잔을 마시고 나가려는데 남자가
“제가 계산했으니까 들어가세요.”라고 말했다. “어? 아니요. 그러면 안 되는데요.”
“아니야. 됐어요. 이런 데 여자 혼자 온다는 게 얼마나 용기 있어. 그냥 더 많이 사람이 왔으면 해서 그러는 거예요. 가요.”
나는 자리에 서서 동동 발을 구르다 에라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꾸벅 90도로 인사를 하고 빠르게 계단을 빠져나왔다.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혼자 한다는 것에 이렇게 과도한 칭찬을 받으며, 공짜 술과 안주를 먹고 마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시선에 나를 가두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싶다 세 번 모두 술 마시는 걸 마치고 나왔을 때는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몸 안에 있던 모든 게 마구 풀어지면서 자유롭다고 느꼈다. 나를 가두는 건 내가 만든 시선이었다. 어떤 가게 안에 들어갔을 때 처음엔 사람들 시선이 나에게 있을 거라는 편견, 한동안 거기에서 전시품으로 자리한다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 시선을 극복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안도감은 묘한 긴장으로 몸을 감돌다가 그곳을 빠져나왔을 때 사르르 풀린다. 그 느낌이 무언가 해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혼’이라는 말이 붙는 건 둘 이상이 모여 하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술이나 밥, 영화 보기나 놀이동산 가기 같은 행위는 주로 관계를 동반했다. 혼이라는 말에는 관계가 빠졌다. 약속을 잡고 시간을 맞추고 서로의 기분을 살피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는 행위와 자기 자신이 남았다. 아마 앞으로는 더 많은 낱말 앞에 ‘혼’이 붙어 하나가 될 것 같다.
글 사진 이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