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7호] 순댓국, 사람 사는 맛_천리집

천리집

드러나지 않아 천천히 편하게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누린다. 그중 최고로 치는 곳은 국밥집이다. 분식집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하면 금세 허기가 지는 반면, 뜨끈한 국밥을 한 그릇 먹고 나면 추위에 긴장했던 몸이 풀리고 한참 동안 두둑한 속으로 다닐 수 있다. 유성구 신성동에 있는 천리집은 순대, 족발 요리 전문점이다. 순대볶음, 전골 등 다양한 메뉴 중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순대국밥이다. 뜨끈하고 진한 국 한 사발이 몸을 녹여 주고 마음을 달래 준다.

                  

조화롭고 따뜻한 한 끼

식당은 하나의 잔칫집 같았다. 혼자 온 사람, 가족, 친구, 연인으로 보이는 무리가 뜨끈한 순댓국을 숟가락 한 가득 떠 후후 불어 가며 먹는 모습엔 어떠한 근심 걱정도 보이지 않았다. 

주문을 하고 2, 3분이 지났을까 뚝배기 안에서 여전히 끓고 있는 순댓국이 자리에 차려졌다. 들깻가루를 한 숟갈 넣자 보글보글 끓던 순댓국이 잠잠해진다. 먼저 국물을 호로록 들이켠다. 불 끄는 날 없이 항상 끓인다는 진한 사골 국물은 야채순대와 내장, 파 맛과 합쳐져 깊은 맛을 낸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니 국에 건더기가 가득하다. 커다랗게 썬 야채 순대, 여느 순대국밥집에서는 못 볼 정도로 길게 썬 내장은 숟가락에 한 번에 올리기도 버겁다.

국밥을 채우는 주재료들은 간혹 시원한 국물맛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기도 하는데, 천리집의 순댓국은 재료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느낌이다. 탱글한 야채 순대 피를 베어 물으면 그 안에 또 다양한 식감이 살아 있다. 40여 가지 재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부드러운 식감을 낸다. 그중 아삭하게 씹히는 것은 양배추다. 국밥을 먹는 내내 간간히 씹히는 아삭한 양배추의 느낌이 좋다. 쫄깃쫄깃하고 몰캉하기도 한 내장도 각기 제 존재를 분명히 드러낸다. 
여기에 밥 한 숟갈과 적당히 신 배추김치, 깍두기까지 곁들이면 이보다 조화롭고 따뜻한 한 끼가 또 있을까 싶다. 현미를 찹쌀과 섞어 꼬들꼬들하게 지은 밥은 국에 말더라도 퍼지지 않는다. 

                       

오늘 저녁, 잘 먹었단 소문

천리집에서는 순대든 김치든 직접 만든 것을 쓴다. 일주일에 두세 번쯤 순대를 만들고 깍두기를 담는다. 배추김치는 이틀에 한 번 담는다. 

지금 자리에서만 12년 넘게 천리집을 운영 중인 최옥란 사장은 천리집만의 순대를 만들고 싶어 직접 순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간단한 음식을 하려고 순댓집을 열었어요. 순대를 받아서 쓰고 김치도 잠깐 받아 썼었는데 확실히 맛이 덜했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순대며 김치며 직접 만들기 시작했죠.”

일주일에 서너 번은 새벽 4, 5시에 일어나는 고단한 삶이지만, 최옥란 사장이 천리집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가끔 식당에 나와 일을 돕는 딸이 이제 그만두고 좀 쉬는 게 어떠냐고 권할 때마다 하는 말이다.
“한 분에게라도 정성을 담은 음식 더 드시게 하고 싶어요. 한 번 오실 때 더 맛있게 많이 드시고 가셨으면 해요. 자식들 수업료 못 낼 때 일어설 수 있게 해 주신 손님들에게 고마워서 뭐 하나라도 더 드리려고 하고 쉽게 그만둘 수도 없어요. 이 많은 손님들 어디 가서 밥 드시겠어요.”

뚝배기 가득 담긴 순댓국은 맛으로나 양으로나 흠잡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전에는 이보다 양이 더 많았는데, 남기고 가는 손님이 많아 양을 조금 줄이고 대신 더 달라는 만큼 순댓국을 내어 준다고 한다. 

한 뚝배기 건하게 먹고 식당을 나서는 길, 입구 밖 냉장고에서 요구르트 한 병을 꺼내 마시면 입가심하기 그만이다. 순댓국 한 사발과 요구르트 한 병이면 어느 추운 날에도 ‘잘 먹었다는 소문이 날’ 만하다.  

                    

주소 대전 유성구 신성남로 127  |  영업 시간 오전 8시~오후 10시  |  순댓국은 6천 원입니다.

            


글 사진 성수진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