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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6호] 영화 <동명이인> 무비토크
# Intro “감자전이 나오면 대담을 시작합시다.”
영화 촬영장은 항상 우여곡절이 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촬영장은 스트레스가 적다. 근래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어느 마을(洞)에 사는 두(二)사람의 이야기’라는 컨셉으로 총 열두 명의 배우와 여섯 편의 짧은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함께 한 메인 스텝들과 술자리를 하던 중 녹음 버튼을 눌렀다. 한정된 지면에 세세히 담을 순 없지만, 어떤 마음으로 제작이 진행되었는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머지않아 오프라인에서 이 영화로 독자 분들과 만나, 좀 더 길고 깊은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길 바란다.
방학남(촬영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14년 째 영화촬영 중.
홍은녀(조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귀여운 남편을 둔 새댁.
탄방남(감독)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무모한 일을 벌인 장본인.
# 선 잡담.
방학남 저는 어제 <가려진 시간>을 봤습니다.
홍은녀 별 몇 개십니까, 다섯 개 중에.
방학남 한 개 반. 과한 네러티브가 한 인간을 힘들게 만들어요. DI(색 보정)도 과하게 됐고.
탄방남 마케팅비까지 80억 들었잖아요.
방학남 진짜 많이 들었네.
홍은녀 어제 청룡 영화제도 했잖아요.
방학남 저는 손언진(손예진) 씨가 받을 줄 알았는데.
탄방남 저도요. <덕혜옹주>의 내용을 떠나서 정석적인 연기를 깊이 있게 한 것 같아요.
방학남 빨리 좋은 영화를 보면서 힐링하고 싶은데, 당기는 영화가 없네요.
탄방남 아, 어제 <신비한 동물사전> 봤어요. 근데 <신비한 동물사전>의 관 점유와 <무현:두 도시 이야기>의 관 점유가 비슷하더라고요. 17만 넘었다고 들었어요.
방학남 시국이랑 잘 맞은 거죠.
탄방남 전인환 감독님이 촬영 포지션 많이 하셨는데, 원래 연출하는 분이셨거든요. 좋은 분이에요.
홍은녀 <신비한 동물사전>은 250만 넘었네요. 해리포터 세대는 보고 싶어 할 거예요.
탄방남 근데 막상 보니까 유아용이랄까. 그래서 난 별 두 개.
방학남 전 해리포터를 별로 안 좋아해서.
홍은녀 <미씽>은 10위로 들어왔네요.
탄방남 예고편을 보면서, 어떤 감독이 아니라 여성감독이라고 느껴지는 게 싫었어요.
방학남 누구예요?
홍은녀 이언희 감독님. <...Ing>찍은.
방학남 와, 진짜 오랜만에 찍으셨네요.
방학남 <판도라>는 언제 개봉해요?
홍은녀 12월에 한다던데.
방학남 잘될까요?
홍은녀 잘될 거 같아요. 어쨌든 재난영화니까.
탄방남 잘 되면 <해운대>고 잘 안 되면 <제 7광구>꼴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방학남 촬영상을 <아수라>가 받았는데, 왜 촬영이랑 조명상을 같이 주지?
홍은녀 그러게요.
탄방남 이번에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있잖아요. 예고편을 봤는데, 너무 예쁘게만 찍은 거예요. 그걸 <립반윙클의 신부>처럼 찍었으면 좋았겠다 생각했어요. 더 채도를 빼고 투박하게 찍었다면.
방학남 완벽한 앵글을 만들지 않아도 새롭게 찍을 수 있을 텐데.
탄방남 <러스트 앤 본> 같은 경우, 어느 순간에 힘을 주고 어느 순간에 흘릴지 계산했죠. 근데 이 영화는 그냥 내용 따라서 찍은 느낌이에요.
방학남 뻔한 촬영이 많긴 해요. 필터를 쓰고 역광으로 찍고 망원렌즈를 많이 쓰고.
탄방남 난 우주선 안에 있을 때 앵글은 별로였거든요. 근데 얕은 물에 착륙했을 때, 그때 와이드로 쫙 벌리는 게 소름 돋던데.
방학남 이전이랑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쎈 감독이랑 찍기도 했지만.
# 후 대담.
탄방남 촬감님은 예전에 다큐를 좀 찍었던 게 도움이 돼요? 왜냐면 이번 엔딩 찍을 때 촬감님이 무빙에 대해서 좀 보수적이라고 느꼈거든요.
방학남 나중에 다시 보니까 제가 좀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게 티 나더라고요.
탄방남 그러니까 뭔가 정돈된 촬영의 느낌이랄까. 지금 찍은 게 마음에 안 든다는 게 아니라, 그러지 않아도 됐거든요. 나는 카메라가 계산된 상태에서 자유롭고 과감했으면 좋겠어요.
방학남 되게 좋은 말인데, 서로 맞추려면 세세히 대조해 보고 이야기해 봐야 하니까요. 우리는 이제 하면서 알게 된 거죠. 근데 상업영화를 하니까 저도 모르게 이 포맷에 맞게 해야 한다는 모습이 있는 거 같아요. 싫으면서도 익숙해져 있지 않나 싶어요.
탄방남 우리 여섯 편의 영화에서 쓴 Fixed(고정) 샷과는 완전 다르게, 엔딩은 다른 사람이 찍었나 느낄 만큼 카메라가 날아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무빙 디렉션도 퀵 팬(빠른 좌우 움직임)이 많았잖아요.
방학남 그렇죠. 그래서 이번에 짐벌(흔들림에 고정되는 그립장비)을 선택한 건 맞았던 것 같아요. 다른 현장에선 짐벌을 쓸 컷이 아닌데 쓴 적이 많았거든요.
탄방남 짐벌은 맞았어요.
방학남 저는 이번에 사람 많이 없이도 할 수 있겠구나 느꼈어요. 그럴 바에야 벌리지 말고 내실 있게 힘들어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탄방남 저는 인원이 적으니까 서대전역 촬영 때 조감독한테 한계가 왔구나 느꼈어요.
홍은녀 그때 체력적으로 힘들었죠. 계속 에스컬레이터로 짐을 옮겨야 했고. 촬감님께 상황을 전달하면서 진행해야 하는데, 레일 너머에 계시고 나는 이쪽대로 신경이 쓰이고.
방학남 저는 수색동 촬영이 힘들었어요.
홍은녀 날 새고 오셔서.
탄방남 아침에 일하고 와서 밤새고 다음날 다시 Day 촬영했죠.
홍은녀 저 그때 촬감님의 얼굴색을 잊을 수가 없어요. 진짜 하얗게 떠서.
탄방남 그래서 내가 짜장면 사다 줬잖아요.
방학남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짜장은 그런 데서 먹어야 돼. 만화방이나 야외 같은 데서 먹어야지 집에서 먹으면 맛없어요.
탄방남 근데 진짜 운이 많이 따라 준 거예요. 날씨도 그렇고 좋은 스텝, 배우들도 그렇고.
방학남 저도 촬영팀 많이 뽑아봤는데, 이번 스텝들처럼 센스 있는 친구들 많이 못 봤어요. 백업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예전 필름 로딩하는 거랑 똑같이 엄청 중요한 거죠. 근데 너무 잘하는 거예요. 내가 이야기 한 걸 다하고 이미 다른 걸 하고 있으니까요. 이번에 다 너무 좋은 사람들만 있었고, 감사하죠.
홍은녀 촬감님의 인덕으로.
방학남 내가 그렇게 바른 인간은 아니었는데…
탄방남 저번엔 본인이 잘 살았다고 느꼈다면서요.
방학남 그건 맞는데…
탄방남 이제 후반(편집,색보정,믹싱 등)에서 여섯 개의 에피소드 사이를 어떻게 마감하느냐가 중요할 수 있어요. 소제목과 크레딧 사이가 관건이에요.
방학남 어떤 지점일진 모르겠지만, 서로 연결이 돼있다는 느낌을 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현장에서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촬영자로서.
홍은녀 두 분이서 한 번도 안 싸우셨잖아요. 서로 잘 맞았던 거죠.
탄방남 난 원래 촬영감독이랑 안 싸워요. 하면서 안 좋아도 웃으면서 보내고 다음부터 같이 안하죠.
방학남 가감 없이 말해 봐요.
탄방남 나는 촬영감독이나 조감독이 키 스텝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각자가 일인자여야되는 거죠. 주도적이어야 하고. 때로 감독 보다 더 나은 대안을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해요. 그러니까 촬영감독 포지션은 우리가무작정 챙겨 줘야 하는 위치가 아니에요. 영화현장은 각자에게 어떤 리스크라도 생길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리스크를 누가 어떻게 감당했는지 결국 모두가 알아요. 그 순간에 그렇게 선택했다는 것은 자신이 주체적인 위치라는 거죠. 각자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동시에 주장할 수 있어야 해요. 촬감님 저 처음 만났을 때 그런 이야기 했어요. 독립영화 찍고 나서 나한테 남는 거 하나도 없더라고.
방학남 맞아요, 그랬어요.
탄방남 나는 그걸 좀 보상해 주고 싶었어요. 좋은선례를 남기고 싶었어요. 이번엔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마음 맞는 사람들이면 적은 인원으로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고.
방학남 이 작품에서 처음 희열을 느낀 건 광화문촬영 때였어요. 너무 재밌었고 그 느낌들이 좋았어요. 내가 내 껄 보여 주고 싶은 게 아니라, 연출을 보여 주고 배우들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물론 내 욕심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에서
최상의 그림을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죠.
탄방남 촬영 쪽은 알아서 다 운용하시니까 우리는 크게 신경을 안 써도 됐어요.
방학남 신경 안 쓰게 하는 게 맞죠.
탄방남 근데 컷이 나눠지면 신경을 쓰게 되잖아요 근데 원 테이크니까 이번에 나는 연기연출만 하면 됐죠.
방학남 이제 저는 일반관객의 반응이 궁금해요. 우리 영화가 롱테이크 흑백영화지만, 그 두 부분만으로도 되게 많은 도전을 해 본거죠. 그걸 요즘 관객은 어떻게 수용하고 바라보는지 궁금해요.
홍은녀 이제 시작한지 두 달 넘었네요.
방학남 처음 자리에 비하면 많이 편해진 것 같지않아요? 그때는 훨씬 경직되어있었는데.
탄방남 그렇죠. 촬영감독이랑 감독이 만나는 자리였으니까.
방학남 지금 과정을 다 봤고, 서로를 조금 더 알고 있고.
홍은녀 밤샘을 하면서.
방학남 밤샘이야 뭐 평생 할 건데요. 나는 배우 단체 사진은 찍었는데, 스텝 단체 사진이 없어서 좀 아쉽더라고요.
홍은녀 감독님, 단체 사진 같이 찍자고 하시지 그랬어요.
방학남 우리 셋이라도 한번 찍을까요, 마지막 촬영 끝나면.
탄방남 그래요, 그럼 그때 한번 찍읍시다.
글 이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