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6호]'저들'은 왜 파리를 겨냥했는가?

다시 유럽으로 가보자. 2015년 발생한 파리 테러와 벨기에 브뤼셀, 니스 테러는 세계인에게 경악감을 주었다. 그런데 이 두 테러가 보여 주는 공통점은 반서구를 외치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소행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 둘 다 마그레브(Maghreb, ‘해가 지는 쪽, 즉 서쪽’이라는 의미의 아랍어이다) 이민자 출신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실제 테러의 주범들은 알제리와 모로코, 튀니지계 이민자 후손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각각 프랑스와 벨기에에 가 있는 데에는 지난 호에서 설명한 대로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이민자 2, 3세대는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기댈 곳이 없고,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다 보니 외로운 늑대들로 성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국적으로 갖고 있는 프랑스로부터 외면받고 사회적 불만 세력으로 늘 가장자리에 있게 되었다. 시리아에 본거지를 둔 ‘다에쉬’, 즉 IS나 마그레브 지역의 알카에다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특히 IS가 영토와 국가 개념을 확고히 주창하고 있으므로 갈 곳 없고 의지할 곳 없는 마그레브 출신 이민자가 쉽게 기대게 되는 것이다.

파리 이민자역사 박물관에 소개된 이민자의 유입 과정과 
파리 시내 이민자들 구역, 2016.08.20. 필자 촬영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점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슬람은 ‘테러’ 혹은 ‘테러집단’이라는 공식이다.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IS나 알카에다는 종교단체가 아니다. 다른 대부분 종교와 마찬가지로 세계 인구의 16억 명이 믿고 있는 이슬람도 평화와 안정을 추구한다. IS와 알카에다는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극단주의자들이다. 7세기 초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건설했을 때와 같이 오늘날 이슬람 사회와 국가를 설립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이 시기의 이슬람 국가체제, 이슬람 공동체(아랍어로는 ‘Ummah’라고 한다)를 오늘날 재현해내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의 세계 체제를 거부하고 종교와 율법으로 다스리는 국가 체제를 꿈꾼다. 더불어 이들의 방법론은 극단적이다. 자신들의 해석에 따른 종교적 교리를 따르지 않으면 죽여도 무방하다고 믿는다. 자신들과 다른 종교적 유적지를 파괴하거나 심지어 서구식의 복장을 한 사람은 죽여도 된다고 보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자신들의 이념에 따른 테러나 폭력이 정당한 수단이라고 믿기도 한다. 같은 무슬림이라도 자신들의 교리에 맞지 않게 생활하면 살해해도 된다는 논리를 갖는 이유이다. 이들은 이슬람과 대립되는 종교 기독교, 서구 기독교 국가 대부분이 채택한 자본주의는 이슬람 국가 건설을 위한 장애물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 심지어 한국까지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미국의 대리 국가라거나 미국 다음으로 해외에 선교사를 많이 파견하는 국가로 특히 이슬람 국가에서는 경계 1순위 국가이다.

                          

파리 테러나 니스 테러에서 보았듯이 자살폭탄 테러리스트의 ‘지하드(성전)’는 상당히 왜곡되었다. 이슬람의 ‘지하드’는 공격적인 개념이 아니다. 꾸란에서도 “저들이 먼저 너희와 싸움을 걸어 온다면 살해하라. 이것이 신앙을 억압하는 저들의 대가”라고 쓰여 있다. 외부의 침입과 점령으로부터 이슬람의 땅을 방어하기 위해 전투에 임하라는 것이다. 지하드를 하는 데 있어서도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민간인을 살상하거나 그들의 재산을 유린하는 일은 이슬람에서는 금하고 있다. 파리나 브뤼셀, 니스 테러에서 보는 테러와 같이 사람을 죽이고 자살을 한다는 것은 이슬람교에서 금지되어 있다. 인간의 목숨은 알라만이 관장할 뿐 개인의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알카에다, IS 등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꾸란의 일부 구절을 확대하여 해석하거나 왜곡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 무슬림과 대화해 보면 대부분이 알카에다나 IS와 같은 테러집단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비이슬람적 행위라고 격한 비난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슬람 극단테러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조직일 뿐이다. 이슬람교는 폭력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파리와 니스 테러 등을 단지 이슬람교의 문제로 볼 것인가? 21세기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중대한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서구 언론이 밝히는 배후 세력에 IS 혹은 알카에다가 있다는 것은 그들의 주장일 뿐이다. 필자는 오랜 시간을 무슬림과 살아가면서, 혹은 그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이민자들과 대화를 통해 또 그들이 살아가며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서 프랑스에서 발생하는 테러가 단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만의 문제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북아프리카 지역의 테러를 직접 목격하면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오랫동안 직시해 왔지만, 실제와는 다른 측면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이슬람교든 기독교든 21세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종교가 가진 여러 문제는 사회를 극단화시키고 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최근 한국의 경우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 보수주의 기독교가 한국사회에서 이념적 대결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의 대한민국 국정 통치과정을 통해 이미 잘 드러나고 있다.

                        

누구나 들어와 공부하고 쉬는 이슬람 중등학교와 이슬람대학교 전경. 이곳에서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일상이 하나임을 늘 다짐한다. 2016.08.15. 필자 촬영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미국도 마찬가지이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자본주의의 극단적 형태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 당연히 이로 인해 소외당하고 있는 사람이 많고, 이들 중 상당수는 대부분 젊은이와 이민자 2~3세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 현재의 시스템으로 극복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극단적 이념 혹은 종교적 성향에 빠지고, 인터넷과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IS의 선전 전략에 쉽게 빠져들고 있다. 현재도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 심지어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까지 IS에 가담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이슬람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관련 사이트가 얼마나 난무하고 있는지를 SNS 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IS나 알카에다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으로 쉽게 테러 방법을 내려받아 집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 이 말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사회와 국가에 대해 불만이 생기면 테러와 범죄로 쉽게 전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테러 예방도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리나 니스 테러와 같은 유사 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심각한 수준의 테러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극단적 대립과 갈등, 정치권 부패, 부의 불균형 등 젊은이들을 분노케 할 수 있는 잠재적 요소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제 2, 제 3의 ‘김 군’은 도처에 잠재해 있다. 파리 테러든, 니스 테러든 테러는 예방되어야 하고 척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테러 세력이 단순히 이슬람 조직이라는 고정된 우리의 시각을 수정해야 한다. 종교적 시각만으로 극단 이슬람 세력이 저지르는 행동으로 이해하면 극과 극의 대립적 갈등과 구조를 양산할 뿐이다. 필자가 만난 무슬림들은 적어도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며 이슬람 극단주의를 혐오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기독교를 비롯한 타 종교에 관대했다. 그들은 인종과 지역에 대한 구별 없이 누구와도 공존하고자 한다.

                          

향후 한국 사회에도 많은 무슬림이 들어와 같이 살게 될 것이다. 파리 테러 영향으로 우리도 이들과 공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늘 이슬람을 대립된 적의 개념으로 보게 되지는 않을까. 평화와 공존을 외치는 21세기 사회에서 우리는 더 극단적 경향을 띠는 사회로 치닫고 있다. 종교적 이해 이전에 각 국가와 시대의 정치·경제적 환경과 맥락을 이해하려는 시각이 그 어느 때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파리 테러가 발생한 프랑스를,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을, 그리고 많은 지역과 국가에서 극단적인 대립을 펴온 20세기적 사고로는 21세기 사회를 살며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파리 테러 문제는 극단적으로 대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겨 주고 다양하게 이해하고 공존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메시지를 남겨 주고 있다. 프랑스인에게서 일어난 이 문제는 단순히 프랑스 내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의 문제임과 동시에 남과 북의 극단적 대치 형국을 이루는 한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모든 이의 슬기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다가오는 2017년은 전 세계가 더 평화롭고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길 바라면서 연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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