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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6호] 사시사철 맛깔난 굴밥이 있는 곳
온갖 체력을 다 그러모아도 기운이 달리는 마감 무렵이면, 종종 회사 식구들과 황가네 굴밥으로 향했다. 바다내음 나는 굴이 소복하게 담긴 따끈한 굴밥과, 함께 차려진 맛깔난 반찬을 뚝딱 비우고 나면 일순간 건강한 기운이 샘솟는 듯했다. 여기저기서 굴 수확 소식이 들려오는 겨울의 초입, 다시 황가네 굴밥으로 발걸음 했다.
닷가 먹거리는 제철을 맞는다. 그중에서도 단 하나의 식재료만 꼽으라면 단연 굴이다. 찬 바람이 불고, 식당들이 앞다투어 문밖에 ‘굴 요리 개시’를 알릴 때 비로소 겨울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한다.
굴은 어떻게 요리해 먹어도 맛있지만, 굴 고유의 맛을 담백하게 즐기려면 역시 굴밥이다. 굴밥은 햅쌀에 제철 굴을 듬뿍 올려 밥을 짓는 게 기본이다. 요리법이 요란스럽지 않지만 재료의 훌륭함만으로 소박한 한끼에도 호사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제철 별미다. 굴이 많이 나는 바닷가 지역에서는 겨울철이 되면 간장 하나만 놓고도 남부럽지 않게 굴밥을 즐긴다고 한다. 굴밥이라고 하면 서산 간월도 굴밥과 통영 굴밥이 유명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보령, 서산, 태안 등 서해안과 통영(남해안)은 국내 주요 굴 생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흥동에 있는 ‘황가네 굴밥’은 대전 원도심에서 맛있는 굴밥을 먹을 수 있어 더 귀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인근에서 거의 유일한 굴밥 전문점이기도 하지만,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사시사철 싱싱한 굴로 지은 산뜻하고 정갈한 굴밥을 맛볼 수 있다. 때문에 계절을 가리지 않고 점심시간 즈음이면 든든한 한끼를 찾아오는 직장인들로 늘 붐빈다.
굴밥, 굴보쌈, 굴전 등 여러 메뉴가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단연 굴밥이다. 따끈한 뚝배기에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나오는 굴밥은 소복한 굴과 함께 당근채, 무나물, 부추, 날치알 등 색색의 재료가 더해져 술을 뜨기 전부터 군침이 고인다. 가지런히 놓인 재료들을 아까운 마음으로 슥슥 비비다 보면 뚝배기 바닥에 깔린 들기름 향이 고소하게 퍼진다. 그대로 한술을 뜨면 바다내음 나는 굴향이 들기름향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스민다.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담백한 감칠맛을 느낄 수 있지만, 기호에 따라 양념장을 곁들인다. 양조간장에 양파, 쪽파를 송송 썰어 넣어 만든 별스러울 것 없는 양념장은 굴밥의 맛을 한층 돋군다. 황인숙 사장은 “봄철이 되면 양념장에 달래도 곁들인다.”라고 귀띔한다.
매일 만드는, 입맛 당기는 밑반찬
“2003년 3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쭉 여기서 장사했어요. 이 집은 남편 생후 백일 기념으로 시아버지가 시어머니한테 사준 거니까 못해도 60년은 훨씬 넘었겠죠. 여기에 세를 놓았는데 당시 안 나가기도 하고, 집안에 사업도 어려웠던 참에 제가 음식하는 걸 좋아하니까 한 번 해보자 해서 시작한 거예요. 아는 사람이 굴밥집을 하고 있어서 배워서 시작했어요. 저희 엄마가 워낙 음식 솜씨가 좋았는데 어렸을 때부터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가 있어선지 어렵지 않게 자리잡은 것 같아요. 제 고향이요? 대전 토박이예요.”
‘황가네 굴밥’은 황인숙 사장의 성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굴밥은 지인에게 배워온 레시피에 솜씨 좋은 그답게 몇 가지 변화를 줬다. ‘음식은 맛뿐만 아니라 색감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색색의 재료를 골고루 곁들였다. 주요리인 굴밥 못지 않게 어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밑반찬도 황인숙 사장의 야무진 솜씨다. 한입 깨물면 시원함마저 느껴지는 아삭이고추 된장무침, 짭조름한 김장아찌, 깔끔한 물김치 등 굴밥과 제법 잘 어울리는 반찬들은 매일매일 만들어 낸다.
“굴은 도매상을 통해서 통영굴을 매일 새벽에 받아 써요. 여름철에는 아무래도 굴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급랭시킨 굴을 받아서 쓰기 때문에 안심하고 드셔도 돼요. 레시피는 예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아요. 한 번 드셔본 분들에게 알려지다 보니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오시는 분들은 거의 단골이죠.”
황가네 굴밥은 11시에 문을 열자마자 손님을 맞이하기 시작해 오후 2시가 되어갈 무렵 숨을 돌린다. 저녁에는 재료가 떨어지면 일찍 문 닫을 때도 있기에 발걸음을 서둘러야 한다.
글 사진 엄보람
황가네 굴밥 : 대전 중구 보문로262번길 28
매일 오전 11시부터~오후 8시
토, 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