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6호]시대를 사는 한 사람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누군가들의 이름이 꼭 들렸다. 무기력한 자조가, 분노의 탄식이 어느 틈인가를 비집고 새어 나왔다. 그런 때, 양충모 작가는 미룸갤러리에서 ‘삶의 찌꺼기에서 태어난 오브제들’이라는 이름의 전시 문을 열었다. 높이가 높아 앉을 수 없는 하얀 의자, <하얀 왕국>이라는 작품은 현재 시국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허상과 허구에 불과한 권력, 욕망으로 점철된 권위가 높다란 의자 위에 놓여 있다. 누구도 허락한 적 없는 왕좌를 만들어 앉은 누군가를 조롱하는 ‘하얀 왕국’이다. 사태를 정확히 예감한 것은 아니지만, 권력의 속성이 드러나는 방식은 비슷하기 마련이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뉘우침이라고는 없이. 양충모 작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대에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묻는다.

          

시대

지난 여름, 양충모 작가는 고행을 자처했다. 직접 몸으로 부딪혀 사회를 알고 싶었다. 그동안 부족했던 점, 잘못한 점을 떠올리며 우리 사는 곳곳을 헤매고 다녔다. 강가, 호숫가, 들판을 걷고 걸었다. 수풀을 헤치며 걷기도 했고 인적 드문 황량한 둑길을 걷기도 했다. 그늘 한 점 없는 곳을 기약 없이 걷고 또 걸었다. 걷는 것 자체가 양충모 작가에게는 개인적인 퍼포먼스였다. 자신을 철저하게 돌아보는, 용기를 내어 만든 기회였다. 

밖에서는 평온하고 아름답게 보였던 산하에 직접 들어가 보니 사람들의 욕망이 와 닿았다. 평소 환경 운동에 관심을 두고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었는데, 직접 본 우리 산하의 모습은 참담했다. 그렇게 걷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다른 이들이 ‘쓰레기’라고 부르는, 무신경하게 버린 것들이었다. 보는 눈이 없을 때 몰래 풀숲에 내다 버려진, 생명을 다한 사물들이었다. 양충모 작가는 그런 사물들에 다시 눈길을 주고 손길을 불어넣었다. 

“버려진 것들이,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로 태어나는 거예요. 작업을 위해 사물을 주우러 떠난 것은 아니었어요. 내가 찾고 싶다고 찾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 맘을 버려 놓을 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어요. 눈에 띄었을 때 주워서 간직하고 있다가 작품에 반영하기도 하는 거죠.”

무작정 걸으며 버려진 것들을 발견하는 행위는 환경을 보는 일이었다. 언젠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환경 오염을 인식하는 일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다시 생각하고 더 나아가 정치 권력의 맥락까지 생각해 보는 계기였다. 현재의 사태도, 작은 쓰레기 하나에서부터 풀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양충모 작가는 이러한 생각을 작업으로 풀어냈다. 

“제 시각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더위 속에서도 고행을 한 거예요. 부족하지만 버려진 것을 통해 시대 상황을 인식하고 시대정신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어요. 작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예요. 직접 설명하지 않더라도 작품은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한다고 봅니다. 작품으로 생각을 나누는 거죠.”

                         

                         

자유

《삶의 찌꺼기에서 태어난 오브제들》에는 올해 작업한 작품 세 점을 포함해 지지난해와 지난해 작품을 함께 전시했다. 단순한 사물에 불과했던, 누군가에게서는 이미 그 쓰임을 다했던 것들이 작가의 손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관객은 양충모 작가 손에서 새로 태어난 작품들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피식 웃게 되기도 한다.

소변기를 이용한 <모든 것에 대한 재해석>은 마르셀 뒤샹의 <샘>(1917)을 패러디했다. 어느 다리 밑 쓰레기 더미에서 옛 소변기를 주워, 100여 년 전 뒤샹의 철학을 재해석했다. 소변기 속 바닥은 빨간 페인트를 칠했고 그 위로 동물의 해골을 놓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의 욕망을 되묻고 풍자하는 작품이다.

<모든 것에 대한 재해석>

“남자들은 술 한 잔 마시면 화장실에 가서 욕을 하지요. 저 강아지는 비록 해골로 소변기 안에 있지만 우리에게 다시, 당신들은 뭐냐고 질문합니다. 개보다도 못하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또, 정력에 좋다면 뭐든 잡아먹는 인간들에게, 그래서 네 정력은 얼마나 좋냐고 묻기도 합니다.”

<사월의 절규>앞

<사월의 절규>뒤

<사월의 절규>는 세월호 사건으로 먹먹했던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어린 영혼들의 울부짖음, 가족과 국민이 느끼는 안타까움과 절규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1년이 걸린 작업이다. 고민하고 색을 입혔다 비비고 지우고 하면서 오랜 시간을 들였다. 
이렇듯 양충모 작가는 한 시대를 살며 사회 속에서 느끼는 온갖 상념을 작업으로 푼다. 작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다. 

“살아 있는 존재에만 시대정신이 있을 뿐이에요. 내가 생명을 다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죠. 그래서 시대정신은 산 자들의 몫이에요. 지금 더불어 사는 우리가 발언하고 나누고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미미하고 부족하지만 내 나름대로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내 메시지를 갖고 시대 상황을 고민하고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양충모 작가는 다양한 작업으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캔버스에 물감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이번 전시에서처럼 다양한 오브제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다.

“시대를 표현하려면 재료를 초월해야 합니다. 어느 한 곳에 메이면 스스로를 가두게 돼요. 끊임없이 공부하고 수행해야 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게 될지 몰라요. 상상을 많이 합니다. ‘마지막 퍼포먼스’라는 제목으로 구상하는 퍼포먼스가 있어요. 작품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불을 붙여 그 속으로 제가 들어가는 퍼포먼스예요. 내 최후까지 다 불사른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양충모 작가는 올해 예순넷이다. 그동안 작업으로 이끌어 왔던 하나의 가치는 바로 ‘자유’다. 자유롭고 싶어 사유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걸어갈 것이다. 

“얼마나 산다고 구애받고 절절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더 젊게 파격적으로 모두 쏟아붓고 가야죠. 나이가 들수록 더 파격적으로 작업하고 싶어요. 작가는 자유를 봐야 하고 고독해야 해요. 그것이 작가의 힘이에요.” 

                   


글 사진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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