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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5호] 돼지 사골 베이스에 배추가 한가득 '배추 짬뽕'
호박을 비롯한 채소 사이로 먹기 좋게 토막 낸 오징어와 새우가 보인다. 채소 중 단연 많은 양을 차지한 건 배추다. 일명 배추 짬뽕으로 알려진 대영원 짬뽕이다.
이 집 짬뽕은 칼칼하고 거친 느낌이 아니다. 한없이 부드럽고 시원하다. 한때 유행했던 체인점에서 선보인 짬뽕 맛과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다. 비슷한 건 국물 맛을 내는 핵심 재료가 ‘돼지 사골’이라는 것이다. 혀를 감돌아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국물은 위장에 닿아서도 얌전하다. 매운맛에 멱살을 잡힌 기분이 아니다. 돼지 사골로 국물 맛을 낸 상태에서 매운맛에 욕심을 내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다. 육수의 부드러움 위에 얹힌 자극적인 매운맛이 매력일 수도 있지만, 자칫 맥락 없는 맛으로 전락할 위험도 크다.
짬뽕 면은 수타면 느낌을 준다. 모양새가 아무리 보아도 기계면인데, 수타면 느낌이 나는 것이 신기했다. 확인하니 반죽 과정을 손으로 한단다. 수타면도 반죽은 기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독특하게도 반죽을 손으로 한 후 기계로 면을 뽑는다. 손으로 치댄 반죽의 느낌이 기계를 통과하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 입안에서 씹히는 느낌이 아주 좋다.
지금까지 엄청나게 많은 짬뽕을 먹어 보았지만, 전혀 다른 ‘종’을 만난 기분이다. 짬뽕 위에 올라간 고명에 절대다수를 차지한 ‘배추’ 때문이다. 배추김치가 아니라 그냥 배추다. 먹기 좋게 자른 배추는 결정적인 순간에 짬뽕 국물에 들어가 맛을 더한다. 배추와 돼지고기는 이래저래 궁합이 잘 맞는 모양이다. 수육을 어린 배추에 싸 먹거나 배춧국에 된장과 함께 돼지고기를 넣어도 맛이 구수하다. 배춧값이 유난히 비쌌던 올가을 짬뽕에 들어갈 배추를 사 대기 벅찼지만, 결코 양을 줄이지 않았다. 그건 대영원 30년 단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근데, 어떻게 짬뽕에 배추를 넣을 생각 하셨어요?” “경상북도에서는 많이들 넣어. 우리가 처음 중국집을 연 것이 김천이었잖아.”
경험은 사고를 규정한다. 대영원만의 특별한 노하우라는 얘기를 들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들었다. 점심시간을 조금 빗겨 찾아갔지만 대영원은 여전히 분주함이 남아 있었다. 배추짬뽕을 먹고 탕수육까지 모두 먹은 후에야 식당 안의 분주함이 문을 열고 밖으로 사라졌다. 이곳 탕수육도 제법 유명하다. 어렸을 때 먹었던 딱 그 맛이다. 찍먹과 부먹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소스는 처음부터 부어 나온다. 돼지고기에서 올라올 수 있는 잡냄새도 잘 잡았다.
대영원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73년 김천이다. 그곳에서 동남반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대전에 온 건 1985년 즈음이다. 주방을 맡은 이대영 요리사는 1980년대 리비아에 세 번이나 다녀왔다. 그 사이에는 중국집도 문을 닫았다. 그 기간 대영원 김인선 대표는 대전상고 아이들 밥을 챙겨주었다. 두 명을 뽑는 한 기업체의 리비아 파견 요리사에 400명이 몰려들 정도로 치열했다. 이대영 요리사는 그 경쟁을 뚫었다. 김인선 대표는 “아무나 못 가!”라며 간단하지만 묵직한 자랑을 내놓는다. 그렇다. 김인선 씨와 이대영 요리사는 부부다. 대영원이라는 중국집 이름은 이대영 요리사 이름에서 따왔다.
김천에서 중국집을 개업하고 대전으로 옮겨 왔을 때는 성남 2동에 문을 열었다가 가양아파트 후문에서도 잠깐 영업을 했고 지금 자리로 옮긴 건 1990년대 초반이었다. 옛날에는 그냥 단층에 비가 새는 슬레이트 지붕이었다. 그 좁고 허름한 중국집에 점심시간이면 길게 줄이 늘어설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여전히 단골 중에는 당시 대영원의 낡고 세월이 쌓인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건물을 새로 지었다.
처음에 잠깐 배달을 했지만, 지금은 아예 배달 주문을 받지 않는다. 음식을 담아 갈 그릇을 가져오면 포장을 해 준다. 테이블 앉아 주문한 음식을 먹으며 옆에 플라스틱 통을 놓아둔 손님이 여럿, 눈에 들어온다. 참고할 것은 점심시간 이곳에서 볶음밥을 먹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유는 ‘짬뽕밥’ 때문이다. 볶음밥을 내다 보면 자칫 짬뽕밥에 내줄 밥이 부족할 수 있다. 대영원의 중심 메뉴는 역시 배추짬뽕이다. 그래도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조금 한가하고 낯이 익은 손님은 볶음밥을 먹을 수도 있는데, 그 맛이 제법 좋은 모양이다.
찬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지금 대영원의 배추짬뽕을 먹을 때다.
대전광역시 동구 동대전로 248번길 69 | T.042.673.3733
글 사진 이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