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5호]지붕을건너다니는고양이

허나 이 꿈은
내 마음은 깨어지고 말겠지
고양이 울음처럼
깨어나지 않는다고
누군가 말해주었네
돌아오지 않는다고
모두가 모두에게
   
이 모든 날
온몸 떨며 통과한
한낱 꿈처럼
   
   
(김연희, 〈이 꿈〉 전문,
《엄마 시집》, 꾸뽀몸모, 2013)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낮은 집들 지붕 위를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건너가고 있다. 방수 천을 덮어 벽돌로 눌러놓은 지붕들은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 낡았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했다. 오래된 집들과 길, 키 큰 플라타너스들이 있는 풍경이 순식간에 바뀔 예정이다.

     
〈춘몽〉이라는 장률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이라서인지 변화를 앞둔 그 오랜 풍경이 예사롭지 않았다. 재개발 중인 수색이라는 동네와, 이미 개발이 완료된 DMC라는 공간의 대비에서 큰 인상을 받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장률 감독의 말대로, 한쪽은 과거인 듯, 또 다른 한쪽은 미래인 듯 그렇게 도시의 공간은 쉽사리 갈려져 존재한다. 마치 이승과 저승, 현실과 꿈처럼 그 경계는 분명하다.  

            
영화 〈춘몽〉에서 한 아름다운 여자를 바라보던 세 사람의 시선이 그녀의 죽음으로 동시에 갈 곳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그녀의 꿈과 삶과 고통이 한순간에 깨어져 사라져 버리던 것처럼 시 〈이 꿈〉은 순간 피어올랐다 사라져 버리는 인생을 짧게 노래한다. 
어쩌면 고양이가 건너다닌 건, 지붕이 아니라 이쪽의 생과 저쪽의 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집 《엄마 시집》은 김연희 시인이 직접 발행인으로 출간한 책이기도 하다. 그녀는 벌써 세 번째 시집을 짓고 만들어, 독립서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첫 번째 시집은 첫 아이를 낳아 기를 무렵에 나왔고, 세 번째 시집은 둘째 아이가 ‘이성’이라는 걸 가지기 시작할 무렵에 나왔다. (세 번째 시집 《영원한 빛 속에 슈팅》 표지에는 손을 예쁘게 모아 쥔 그녀의 둘째 아이가 등장한다.) 첫 번째 시집 〈지은이 말〉에 “아이가 자람과 동시에 세계는 더 복잡해지고 아름다워지고 뜨거워지고 차가워졌다.”라고 써 놓은 것처럼 그녀는 아이를 키우며 세 권의 시집을 내는 동안 더 짙어졌다.

                    
“후욱― 바람을 불면/생후 7개월 된/선율이는 윗입술을/쪽쪽 빨아대며/혀를 날름거리며/바람 맛을 봅니다(〈바람 맛〉)” 신선한 생명력이 가득한 시가 있는가 하면, 이에 대비되는 죽음이 그려진 시도 있다. “할머니, 내 할머니/어데가 급히 아프셨나/간호원이 손에서 피 뽑는데/그 피가 내 손에도 묻어서/나는 할머니 피 묻은/내 두 손바닥 바라보며/병원 계단에 쪼그리고/서럽게도 울었다(〈피 손바닥〉)” 유년 시절의 기억도 시집 곳곳에 보인다. “그 새벽에 맨발로 뛰쳐나가서/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우리 엄마 죽어요/외쳤던 것이다 그랬더니/정말로 사람들이 하나둘씩/그 밤중에 옷을 입고 급하게/집 밖으로 나와주었다(〈불빛〉)” 

                 
《엄마 시집》은 아이의 탄생으로 더욱 선명해진 죽음과 숨 돌릴 틈 없는 일상, 그리고 과거의 기억들이 아이가 내뿜는 숨처럼 간결한 시어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이 꿈〉이라는 시가 더 돌올하게 눈에 든다. 돌아오지 않는 꿈에 대한 아픔이 담박한 표현 속에, “고양이 울음”이라는 하나의 청각적 이미지와 함께 살아난다. 모든 것이 한순간 깨어지고 사라진다. 불안과 고통에 찬 고양이의 울음소리만이 지난 시간의 잔영을 남긴다. 

                      
세 번째 시집 《영원한 빛 속에 슈팅》에도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과 그 틈에서 번쩍 떠오르는 달관의 순간이 그려진다. “돌아와 부스럭대던 그는/주로 과자를 먹으며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그런 그가 어디에 있는가/닫힌 창문 너머로 무음으로/흔들거리는 나뭇가지들(〈돌아와 부스럭대는〉)”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내는 부스럭대는 소리를 남편의 기척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내 친구/내 가장 친한 친구// 내 오줌소리를 알아듣고/어서 와 옆에 누우라고(〈아이들은 내 친구〉)” 고단한 육아 중에도 아이들에게 위안 받는 순간이 있다. 육아에 지친 그녀를 일으켜 세우는 건 그 누구도 아닌 그녀 내면의 목소리이다. “너무 가라앉아 버렸다/너무 가라앉아 버렸다/어쩌자고/여기까지 와버렸을까/끝없이 가라앉는다/아 나의 이 삶에/땅바닥이란 없구나/나는 그토록 원하던/그토록 원하던 대로/날아가고 있구나/날아가고 있었구나(〈너무 가라앉아 버렸다〉)” 가라앉아 가고 있는 가운데, 바닥이 없음을 깨닫고 그녀는 바닥으로, 날아오른다. 시가 지닌 전환의 힘이다. 고양이처럼 가볍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간다. 

                       


글 그림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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