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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4호] 시간을 붙잡는 사람들_전보경, 추교은 씨
1.두 사람을 만나다
대전 곳곳을 걸어다니다 보면 유리창에 붙은 추교은 씨의 선팅 글씨와 그림을 볼 수 있다. 상호 이름은 물결처럼 흐르는 글씨가 되고 그 옆에는 공간과 어울리는 그림이 함께 있다. 걸어다닐 때마다 종종 만나는 그의 흔적이 반가웠다. 어느날 독립출판서점 도어북스의 박지선 대표가 그가 직접 ‘도어북스’라는 글씨를 작업하고 있는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 연락처를 물었으나 알 수 없었다. 개인 연락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추교은 씨가 언제 어디에서 작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직접 찾아가 이야기 나눈 게 지난해 2월, 추위가 가시지 않은 겨울날이었다. 그 이야기는 월간 토마토 3월호에 실렸다.
시간이 흘러 다시 찾아온 겨울에 추교은 씨를 우연히 만났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는 “앞으로도 나 잊으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 그 쓸쓸한 한 마디가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이제 시트 선팅을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글씨를 쓸 거라고 말했었다.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에서 고집스럽게 방망이를 깎던 노인처럼, 그는 빠르게 바뀌어가는 세상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묵묵하게 서 있었다.
그후 어느날, 묵묵하게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킨 사람들을 찾는 사람을 만났다.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레지던스 입주 작가로 대전에 머물던 전보경 씨였다. 그녀는 북카페 이데에 찾아와 기사를 봤다며 추교은 씨의 연락처를 물어 왔다. 연락할 개인 번호가 없다는 말에 아쉽게 돌아간 그녀 또한, 테미 근처 한 란제리점에서 소식을 듣고 우연처럼 추교은 씨를 만났다고 했다. 개인전 《세이렌의 노래》에서 전보경 씨는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를 풀었고 버려진 물건들을 다시 주목했다. 그리고 전시장 한쪽을 추교은 씨에게 내주었다. 전보경 씨는 추교은 씨를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부탁드렸다고 했다. 8월 31일, 그는 전시장 한 면에 노란 시트지를 붙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붙였다. 긴 과정은 하나의 퍼포먼스였고 자리를 찾은 사람들은 그의 작업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지난해 2월에 만난 추교은 씨, 추운 날 오랜 시간 밖에서 작업했다.
추교은, 전보경 씨 두 사람을 다시 만났다. 예술이라는 게 대체 뭣이기에 사람이 새롭게 만나고 헤어질까. 직접 이야기 듣고 싶었다. 추교은 씨는 “다 똑같지 뭐.” 하고 별스럽지 않다는 듯 말했고 전보경 씨는 나긋나긋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에 관해 말했다. 이야기를 끝내고는 서로 다시 만나자며, 건강해야 한다고 인사를 주고 받았다. “나중에 서울 오면 꼭 전화해야 돼.” 전보경 씨의 다정한 반말에 추교은 씨는 그냥 웃기만 했다.
2.사라지지 않는 사람 작업
작업/전보경 | 대전에 4년 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비교해 많은 것이 사라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4년 후에 방문한다면 그때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사라져가는 걸 기록해 보고 싶었어요. 여러 곳을 다니다가 사라져 가는 직종에 종사하는 분을 많이 만났어요. 수작업 양복점, 수석 가게, 고물상에도 갔었죠. 특히 고물상은 서울에는 거의 없는 거라 놀랐어요. 그런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대전이 저장고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추교은 갈대가 바람에 흔들릴지라도 / Eventhough the reads rustle in the wind, 2016
그 와중에 토마토 기사를 읽고 할아버지를 발견하게 됐어요. 제가 작업에 시트지를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컴퓨터 커팅만 해 봤지, 손으로 글자 쓰고 형태 만드는 건 처음 봤거든요. 할아버지를 잡지 않으면 영영 못 만나겠다 싶어서 수소문했는데 아무도 연락처를 몰랐어요. 테미 근처 란제리점 간판을 할아버지가 하셨거든요. 거기 가서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종종 지나간다고 하시더라고요. 지나가시면 연락 좀 달라고 해서 극적으로 만나게 됐어요.
전시 공간을 보여드리고 여기에 할아버지 작품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했어요. 공간을 보고 뭐가 떠오르시는지 물었죠. 사람들을 반기는 듯한 색감이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할아버지가 노란색이 좋겠다고 하셨어요. 노란색은 강렬하지도 않고 밋밋하지도 않으면서 화사한 느낌이 들겠다고요. 이것 말고는 할아버지께 전적으로 맡겼어요. 할아버지가 하는 일이 의뢰를 받아서 하는 거잖아요. 할아버지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궁금했어요. 할아버지가 유년시절 얘기를 많이 하시고 가족, 오래된 동네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가장 아름답게 기억했던 순간을 그리신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작업하시는 걸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어요. 할아버지 존재를 조금 더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시트 커팅을 손으로 하는 걸 직접 볼 기회는 거의 없잖아요. 항상 결과물만 보지 과정은 못 보잖아요.
갈대가 흔들리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흔들리지 그러니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은 중요해 갈대는 흔들리면서 그대로 있잖아 / 추교은 | 란제리 아주머니가 누가 날 찾는다고 얘기를 하더라고. 내가 뭐라고 나를 찾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난 사람도 아닌데 뭘 찾나.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게 됐어요. 전시장에서 작업은 처음 해 보는데 원래 하는 일이나 그 일이나 비슷해서 힘들지는 않았어요. 요짝은 이렇게 들어가고, 저짝은 저렇게 들어가면 낫겄다고 생각해서 꽃잎을 붙여 놓고 생각했어요. 그림은 시골집 풍경이에요. 아담하게 보이고 심란하지도 않고 안정감 있는 그림을 그렸어요. 문구는 다른 사람이 볼 때 뜻이 깊이 있게끔 정해서 쓴 거예요. 둘이 대화 중에 만든 거예요.
추사 김정희 글씨를 보면 우리보다 월등하다는 걸 느껴요. 추사 김정희 글씨를 본 적이 있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유치원생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하는 일이 옛날과 비교하면 유치원생이 첫걸음 떼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내가 하는 게 여러 사람한테 도움이 되겄다는 마음으로 했던 거죠. 옛날 생각 하면서 했어요. 옛날에는 글씨를 거꾸로 썼거든요. 도장 파듯 거꾸로요. 글씨를 밖에 붙이면 사람들이 떼니까 안쪽에 붙이느라고 거꾸로 썼죠. 거꾸로 쓰는 게 인제 힘든 일은 아니지만, 예전엔 힘들게 배웠죠. 지금은 거꾸로 쓰지도 않으니까 옛날에 거꾸로 썼던 게 추억으로 남았죠.
아름다움 / 전보경 | 할아버지는 보통 분과는 다르게 끝없이 자기 서체를 개발하려고 노력하시는 분이에요. 컴퓨터는 노력하지 않아도 무한정 뽑아낼 수 있지만, 할아버지 글씨체는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거고 그걸 위해서 노력한다는 게 좋았어요. 보통 시트 선팅을 광고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렇게 안 느끼셨어요. 잘해 놓은 글씨가 하나 있었는데 누가 와서 돌로 깼다고, 자기 작업이 없어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잖아요. 돈 받아서 하는 일이 아닌 거죠. 내가 자신감을 갖고 만든 작업이고 누가 많이 봐 줬으면 하는 의도가 있는 거죠. 매일 예술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할아버지 글씨가 어떤 미적인 부분에서 심금을 울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찾는 거고요. 그 미가 무엇이라고 구축된 교육 내에서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심장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거 같아요. 할아버지가 몇 번 더 오셔서 작업을 고치셨어요. 그런 게 예술가적 태도라고 생각했고 감동 받았어요. 제가 없을 때도 ‘나 이거 붙이고 갈게.’ 하면서 왔다 가시고요. 계속 오셔서 생각하면서 보시더라고요. 애정이 없으면 다시 가서 하지 않잖아요. 작업에 애정이 있으셔서 계속 와서 봐 주시고 그런 것 같았어요.
전보경 배움의 관계 / The relationship of learning, 2016
저는 할아버지를 만나서 너무 좋죠. 얼마나 찾았는데요. 우리가 생각했던 예술이라는 고정관념을 확장하고 싶었어요. 주변에 정말 많은 예술가가 있는데 우리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어요. 항상 책을 보고 배웠으니까요. 대전에 이렇게 좋은 작품이 널려 있는데 사람들이 모르는 게 안타까워서 알리고 싶었어요.
이번 전시 작업 하면서 사라져 가는 업종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사람들이 필요 없다고 내다 버리거나 재개발 때문에 버려진 물건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었어요. 제일 중요한 키워드는 균형이었고요. 사물들이 결국은 위태로운 상태에 있지만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설치한 영상은 물건 주우러 돌아다니면서 찍은 풍경이에요. 나이 든 분 중에는 스스로 퇴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사람들이 흔히 오래된 집들은 철거하고 아파트 지어야 하고 좁은 골목은 대로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이 반짝이는 보석 같았어요. 프로젝터 앞에 봉황 발을 걸어 놓고 영상에 봉황을 투사시켰어요. 봉황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 있는 거잖아요. 저는 봉황이 실제로 있지는 않지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라지는 것들이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전보경 도시 토템 시리즈 / Urban-Totem series, 2016
할아버지와 같이 작업한 거 말고 전시 이벤트 중 돌장승 여행이 하나 더 있었어요. 사람들과 장승을 보러 다녔어요. 장승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거라면, 할아버지는 시트 커팅을 마지막으로 지키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전시 작업 하면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공부를 해서 알아 온 아름다움과 전혀 날것의 아름다움 사이에서 어떻게 내가 균형을 맞춰야 될까 고민점이 많았어요. 할아버지가 저한테는 제가 모르는 세상을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선생님이었어요. 근데 할아버지는 ‘아니야, 내가 뭘 알아. 몰라.’ 이렇게 말씀하셨죠.
저는 작업할 때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이에요. 제 작업은 뭔가를 딱 내놓는 게 아니라 배움의 과정의 결과물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가더라도 배우는 과정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겨울에 베를린에 가서 그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 같아요.
참 괜찮다는 이름 석 자 / 추교은 | 시트 선팅을 수작업으로 하는 사람이 더러 있긴 있어요. 그런데 우리 때 끝나면 굿바이예요. 옛날엔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배우려고 온 사람이 있었는데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고 얘기했거든요. 은행나무를 겨울에 캐 갖고 심으려고 보면 과정이 힘든 것처럼, 힘든 과정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했는데 너무 힘들게 느껴졌는지 그냥 갔죠.
앞으로 후세에도 이런 일을 하는 분이 있다면 좋은데 과연 그런 분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요. 별건 아니지만 소소한 거라도 다 사랑할 줄 알고 아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35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글자체가 많이 변했어요. 초기에는 정자로 자 대고 썼어요. 새로운 글씨체를 연구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돼. 글자를 변형하고 바꾼다는 게 한마디로 얘기해서 초보자가 시골에 들어가서 농사 짓는 거랑 같아요. 보통 어려운 게 아니죠. 사람이 크게는 안 돼도 이 아저씨는 참 괜찮다고 이름 석 자 남기고 싶죠.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해 봐야지. 경기도 쪽으로 가 볼까 생각도 해요. 옛날에도 경기도에서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쪽으로 가볼까 생각 중이고 아직 결정된 건 없어요. 옛날에도 얘기했듯이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글씨를 쓰고 싶은데 어렵더라고. 응용을 많이 해 보려고 해도 쉬운 게 아니더라고. 과연 이루어질라나. 난 어렵다고 봐요. 잘 안돼. 항상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떨 때는 다리가 우득우득해요. 그 전에는 그런 소리 안 났는데. 한 달 전인가 몸이 아팠었어요. 몸이 아파서 열흘간을 그냥 쉬었지. 그 뒤로는 아예 일을 조금씩 해야되겄다고 생각했어요. 짐을 너무 많이 갖고 다니면 안되겄더라고요. 그런데 몸이 조금씩 회복되니까 많이 갖고 다니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힘닿는 데까지 해 봐야죠.
이번 작업은 뭔가 사람이 다시 한번 새 출발 하는 도전정신이랄까. 그런 게 들었던 계기였지. 서서히 전진하는 거죠, 뭐.
글 성수진 사진 성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