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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7호] 공주에 가다
충남 공주시에는 금강 남쪽 웅진동과 중동, 중학동과 옥룡동 일대를 ‘강남 원도심’이라 부른다. 네 개 동네는 서로 경계를 맞대고 있어 정확히 구분 짓기 어렵다. 금강과 인접한 큰 동네를 웅진동, 산성시장 지나 중동 사거리부터를 중동이라 본다. 중동 위로 학교가 많이 밀집한 곳이 중학동이고 국고개를 조금 지나면 옥룡동이 나온다.
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 땅과 북쪽 땅은 희비를 달리했다. 해방 직후부터 소위 잘나가는 동네였던 강남 원도심은 서울 명동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땅값이 비쌌다. 영원할 것 같던 강남의 화려함이 서서히 빛을 바랬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강남에서 강북으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김갑순이라고 알아? 몰라? 충청감사 뒷일 봐주던 사람인디 여기 중동 일대가 다 그 사람 논이었어. 그때는 다 논이었지. 이렇게 건물도 없었어.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는 100년 좀 못된 일이제. 그 후로 자식들이 땅을 조금씩 팔아먹었지. 그래서 지금은 여기 땅이 임자가 다 달라. 여기서 35년 살았지. 원래 카센타는 아니고 식당을 한 15년 허다가 여기가 주차공간이 없잖여. 차 댈 데가 없으니까 사람이 안 오드라고. 그래서 카센타로 바꿨어. 여기? 유명했지 그래도 90년대 초까지는 장사도 잘 되고 사람도 많이 오갔지. 요 동네에서 저기 공산성 밑 대로변에 미나리 많이 키우던 디 ‘미나리깡’이라고 부르는 디 거기로 상권이 옮겨갔지. 그러다 강 건너 신관동으로 넘어간 거고.”
중동 147번지 지현카센터 사장님
“중동147하믄 다 알지. 여기 일대가 다 147번지여. 가게도 많고, 사람도 많고 그렸는디 지금은 다 나이 먹은 노인네들 뿐이여. 내가 칠십여덟인디 여기서 5~60년 살았다고. 망한다고 말하고 망하나 그냥 하나둘씩 떠나는 거지. 집값? 많이 떨어졌어.”
중동147번지 골목에서 만난 할머니
“도청 앞에서 15년, 지금 이 자리에서 20년 장사하고 있어. 중동은 서울 명동이나 똑같지. 저기 아래 사거리가 사람이 바글바글 했다니께. 우리 가게 바로 옆 큰 건물 보이제? 옛날에 ‘칠성당’이라고 가비(커피)팔고, 아이스께기 팔고 그러던 디였어. 그 건너편에는 ‘태극당’있었고. 그 주변으로 양장점이 줄지어 있었지. 사거리 아래 국민은행 자리가 옛날 차부여. ‘삼흥여객’ 터미널도 있었고. 지금은 다 신관(신관동)으로 가브렀는디 옛날에는 여기가 최고였어.”
중동 147번지 대일 수선 사장님
강남 웅진동에 있는 공주 옛 터미널에 내려 대로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산성시장, 중앙 사거리를 지나 죽 대로변이 이어진다. 도로 양쪽으로 화장품 가게니 옷가게니 없는 것 없이 가게가 들어찼다. 대전 으능정이 거리보다야 한산하지만, 유동인구도 제법 눈에 띈다.
대로변 바로 뒤 좁은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골목에 들어서자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화려했던 중동 147번지 일대 골목골목은 세월을 비켜간 것처럼 보였다. 그리 넓지도 않은 골목에 빽빽이 건물이 들어섰다. 높아 봐야 3~4층, 대부분이 1~2층 건물이다. 벗겨진 페인트칠, 모음 하나가 뜯겨나간 간판, 언제 적 가게인지 모를 ‘쌀 상회’라고 적힌 가게도 보이고 아직도 운영하는 ‘욕실완비 온화여인숙’도 보인다. 언제 주저앉을지 모를 오래된 건물 여기저기에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있다. 그 세월을 함께 보낸 노인 여럿이 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골목을 채우는 건물마다 빈 점포가 하나쯤은 보이는 것 같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세간살이며, 가게 물품이 텅 빈 공간에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다. 사람을 따라 가게도 함께 터를 옮겼다. 다 돌아봐야 20분이 채 안 걸리는 작은 골목길은 그때 그 시절, 사람이 많이 오가던 때를 증명이라도 하듯 번잡스럽기 그지없다.
오후 네 시가 넘자 교복 입은 아이들이 거리로 쏟아진다. 남색 교복을 입은 아이, 흰색 교복을 입은 아이. 제각각 다른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조잘거리며 거리를 누빈다.
중동 147골목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골목은 호서극장과 여관 뒤에 자리 잡은 으슥한 뒷골목이다. 이곳에 방직공장이 몇 개 있었다. 한때는 공장 여공들이 많이 들락거리던 곳이었다. 강남 원도심이 빛을 바래던 시기와 맞물려 사람이 하나둘 골목을 떠났다. 빈집이 많아지고 골목이 폐허처럼 변했다.
쓰레기로 가득한 골목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사람이 바로 골목길재생협의회 석미경 대표다. 3년 전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방치된 집을 이 골목에서 발견했다. 한옥 구조를 가진 집이 마음에 들었다. 2013년 가을, 석미경 대표는 이 집에 차 마시고 공부할 수 있는 차 문화 공간 ‘루치아의 뜰’을 만들었다.
가게 앞 후미진 뒷골목은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가득했다. 매일 청소해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골목은 지저분했고, 여전히 음침했다. 석미경 대표는 가게 앞 골목길에 꽃을 심기 시작했다. 작은 화단을 꾸미고, 사진을 걸었다. 그렇게 조금씩 골목을 밝혔다. 가득하던 쓰레기가 줄어들고 밝아진 골목에 사람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도시재생이라는 큰 목적은 없었다. 그냥 작고 오래된 것에 애정을 갖고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이 하나둘 모이다 보니 제법 많은 이가 모였다. 큰 액수의 돈은 아니지만, 호주머니 돈을 모아 같은 해 ‘공주 골목길재생협의회’를 만들었다.
“사실 ‘재생’이라는 낱말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아요. 그냥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에요. 거창한 목표나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작고 오래된 것들이 버려지듯 방치된 것에 늘 아쉬움을 느꼈어요. 시에서 하는 원도심 사업처럼 거대하지는 않아요. 그냥 조금씩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죠. 쓰레기 치우고, 화단 심고, 사진 걸고 뭐 그런 거요.”
지난 5월 회원들과 골목길을 돌며 찍은 사진으로 골목길 사진전을 열었다. 골목 한켠에 방치된 방직공장을 갤러리 삼아 사진을 걸었다.
“방직공장 청소하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회원들이 다 쓸고 닦고 했어요. 관람객이 한 1천 명 조금 넘게 온 것 같아요. 사진 보고, 골목을 돌면서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방직공장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도 옛날 생각 나서 좋다고 하시고. 다들 그렇게 작고 사소한 것에 애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알록달록 색연필로 그린 골목 지도가 눈에 띈다. 2주에 한 번 진행하는 ‘골목 산책’ 때 쓰려고 직접 만들었다. 골목 산책로는 하숙집이 많던 하숙촌 길, 산성찬호 길, 근대문화유산 길 세 길로 나뉜다. 그 속에 골목과 어울리는 이야기를 함께 넣었다.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골목 산책’에 동행할 수 있다.
함께 만든 골목길 산책로 사업을 충청남도 도시균형발전 사업에 응모했다. 결과가 좋았다. 덕분에 지원금을 받게 됐다. 지원금으로 하숙촌 길에 하숙집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도시재생이요?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거 같아요. 그 속에 미학을 담고, 주민들의 문화 의식을 높이고 그런 거 아닐까요?”
1960년대 이후 도시 외곽 개발이 진행되면서 강 넘어 강북 신관동에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개발이 가속화되고 아파트며 상점, 대형영화관이 들어섰다. 2009년에는 강남 옥룡동에 있던 공주대학교가 신관동으로 이전했다. 강남에 밀집해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강북으로 터를 옮겼다.
말만 무성하던 ‘원도심 살리기’는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었다. 간헐적으로 이뤄지는 ‘간판 정비사업’은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추락하는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주민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3년 전 공주를 역사 도시로 만들고자 시작한 공주 고도(古都)육성 아카데미 회원을 중심으로 2013년 10월 57명의 주민이 모였다. 충북대학교 전문가와 함께 도시재생아카데미를 시작했다.
도시재생 관련 강의를 듣고 재생 방향을 논의했다. 일찍이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한 전주와 창원을 방문해 직접 보고 들으며 공부했다. 그렇게 강남 원도심을 살리기 위한 사업계획을 하나씩 만들었다. 동시에 ‘공주 도시재생 주민협의회’를 만들었다.
그동안 만든 사업을 한데 모아 ‘백제왕도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야기길 만들기’라는 사업계획서를 만들었다. 이 계획서로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선도사업’에 응모해 당선됐다.
“공주에 구석기 시대부터 백제, 고려 시대까지 역사와 흔적이 시루떡처럼 겹겹이 쌓여있어요. 강남 원도심에도 그 흔적이 꽤 남아있고요. 또 근대건물도 많잖아요. 역사와 문화, 예술로 강남 원도심을 살려보자 생각했어요.”
공주 도시재생 주민협의회 한승희 부회장은 역사와 예술로 사람 사는 곳다운 동네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도시재생선도사업 계획은 크게 ‘백제역사 플랫폼 조성사업’, ‘웅진로 문화예술가로 조성사업’, ‘국고개 근대문화거리 조성사업’ 세 가지로 나뉜다. 역사와 문화예술을 결합해 이야기를 만들고, 빈 점포를 가득 채우는 사업을 생각 중이다.
“도시재생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거예요. 돈이 많다고 도시재생 될 것 같아요? 좋은 건물 짓고, 거리 정비한다고 사람이 올 것 같으면 진작 그렇게 했죠. 건물은 필요 없어요. 여기 원도심에 빈 점포가 얼마나 많은데요. 이제는 빈 점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해요. ‘강남에 오면 영화보다 더 재밌는 것이 많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거죠. 여기 강남에 학교가 열네 개나 있어요. 애들이 학교 끝나고 놀만 한 것을 만들어주고 여기서 놀고, 먹게 해야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게도 생기고 상권이 살아나는 거예요.”
올해 9월부터 시작해 4년에 걸쳐 사업을 진행한다. 주민들은 각각 팀을 나눠 관과 함께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수많은 논의와 협의 과정이 필요할 거라고 한승희 사무국장은 말했다.
“재미있으니까 해요. 주민들과 함께 하나씩 만들고 바뀌어 나가는 모습이 마냥 뿌듯하고 좋아요. 잘 해 봐야죠. 사람 사는 곳은 사람 사는 곳다워야 해요.”
강남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여러 주민자치 조직이 모였다. 골목길재생협의회도 도시재생 주민협의회와 함께 사업을 진행한다. 이 밖에도 국고개 주민협의회, 강남발전협의회, 공주시 이야기가게, 고도육성 아카데미 수료생이 기본 조직으로 함께 움직인다. 거기에 공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하나로 묶이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일던 도시재생사업이 주민끼리 또 주민과 관이 서로 네트워크를 이루며 이루어질 예정이다.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설치해 이를 거점으로 관과 여러 주민자치 조직이 모이고, 소통하며 지속적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4년간 약 100억 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올해는 그중 일부인 20억 원으로 사업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