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7호]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언니들도 다 재주가 많은데, 결국 안마사밖에 되지 못해. 시각장애인을 상처받게 하는 우리나라가 정말 문제야.”
노동주 감독의 영화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에서 시각장애인인 임한나, 박제윤 양이 나누는 대화의 한 장면이다. 라디오 DJ가 꿈이라는 임한나 양과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박제윤 양이 나란히 앉아 하는 이야기는 가슴을 콕 찌른다. 이 영화를 찍은 노동주 감독 역시 시각장애인이다. 노동주 감독은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지원받아 영화를 만들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데뷔했다. 노 감독은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가 자신을 믿어 주어서,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지난 6월 17일,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4층 다목적홀에서 노동주 감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개관 전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준비한 ‘시민과 함께하는 미디어 톡톡’ 무대였다. 그에게 ‘시청자미디어센터’라는 공간은 꿈을 찾아준 동반자였다.

배우는 미디어, 내가 만드는 미디어

라디오체험스튜디오

   

  

TV체험관

  

  

방송제작스튜디오

  

  

녹음실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발굴한 노동주 감독처럼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도 미디어 소외계층이 꿈을 펼치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시각장애인이나 다문화 가정 등이 이곳을 통해 미디어를 누리고, 미디어 소비자의 권리를 누리도록 하는 것 역시 센터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홍미애 센터장의 이야기다.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는 방송법 제90조의2에 의해 설립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설립하고,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위탁 운영하며, 대전광역시가 지원한다.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설립에는 전파의 주인인 시민에게 미디어 접근권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다. 1970년대 이후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는 시민이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미디어 액세스권’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시청자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것을 수동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전파의 주인은 시청자인데, 주인은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고 ‘종놈’이 주는 것만 입을 벌리고 받아먹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떠 먹여주는 것이 편하기는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먹는지 알지도 못하고 먹는 꼴이 된다. 몸에 좋은지, 나쁜지, 맛은 있는지, 없는지 따질 겨를도 없이 미디어가 쏟아내고, 던져 넣는 것을 흡수한다. 우리는 어느새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것에 관한 문제 인식이 ‘미디어 액세스권’이다.

미디어 엑세스권이란 대중의 정확한 판단을 위해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기회를 더 많이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자나 일반인도 텔레비전이나 방송을 이용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것이 곧 언론자유의 궁극적인 신장을 보장한다. 하지만 언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대중 매체를 통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시청자미디어센터와 같은 기관에서 시민에게 미디어를 교육하고, 직접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제작에 필요한 기계를 다루는 것부터 미디어 제작 방법 등 다양한 교육을 시민이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이 잘 이루어진다면, 시청자미디어센터를 통해 제작한 미디어가 퍼블릭 액세스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탈 수도 있다. 퍼블릭 액세스 방송이란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방송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아직 한국에는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 KBS 열린 채널이 있다.

  

  

다양한 시청자와 함께 만드는 미디어센터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이하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도 더 많은 시민이 미디어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많은 시민’ 중에서 미디어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장애인, 다문화가정, 노인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만들어 진행할 예정이다. 미디어를 통한 자기표현이 늘어나면서 누구나 손안에 하나씩, 자신만의 미디어를 들고 다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들이 ‘미디어’라는 매체에서 소외당하지 않도록 시청자미디어센터가 기능한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드나들기 쉽게 문턱을 없애고, 시·청각 장애인이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돕는 장비를 마련했다. 한 예로 ‘찾아가는 미디어 활동’도 있다. 개관 전 장애인학교에 찾아가 베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한 적이 있다. 베리어프리 영화란 청각 장애인을 위해 영화의 소소한 장면까지 자막으로 넣어주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영화 장면 해설을 녹음한 영화를 말한다. 시청자미디어센터라는 공간을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찾아가는 미디어 활동’ 또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진행할 예정이다.

미디어 소외계층뿐만 아니다. 마을 미디어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할 지 모르겠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맞춤형 미디어 교육’은 기관이나 단체, 학교 등을 대상으로 그들이 원하는 교육을 원하는 시간에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외에도 동영상, 라디오,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 활용, 영상 편집 등 매월 다양한 시민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시민과 함께 만드는 미디어 센터

교육 프로그램 이외에도 1층 체험관에서 라디오DJ, TV 아나운서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개관 전이지만, 다양한 연령의 시민이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아 체험프로그램을 즐겼다. 시민은 미디어를 더 친근하게 느끼고, 아이들은 꿈꾸는 것을 구체화할 장을 마련한다. 그 밖에 시청자 제작 방송프로그램 지원, 각종 방송제작 설비 이용 지원, 시청자의 방송참여 및 권익증진을 위한 사업 등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위탁받은 사업을 한다. 2005년 부산, 2007년 광주에 이어 2014년 대전, 강원, 인천 세 개 지역의 시청자미디어센터가 문을 연다. 대전은 7월 16일 개관을 확정했다.

개관을 앞둔 시청자미디어센터에 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먼저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시청자’를 배려하지 않은 장소 선택이다. 시청자미디어센터는 대전시 유성구 대덕대로512번길 20 대전CT센터 1층과 4층에 자리한다. 자동차가 없으면 선뜻 걸음 하기 힘든 장소다.

“멀리 보았을 때, 이곳이 하나의 거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이곳에 영화산업진흥원이 있고, 드라마타운이 곧 생길 것이고요. 지하철 2호선이 생기면, 교통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기관이 모여 있으니 영상산업의 거점으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 밖에도 시청자미디어센터는 개관 전부터 운영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홍미애 센터장은 “앞으로 1~2년간은 자리 잡는 단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다른 지역 시청자 미디어센터와 달리 대전이라는 지역 환경을 고려해 실질적으로 지역민을 위하고, 지역과 함께 가는 좋은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또 대전뿐만 아니라 가까운 세종부터 충남, 충북까지 아울러 거점이 되는 미디어센터로 자리 잡도록 기반을 잘 닦아야 할 것입니다.”

  

  

홍미애 센터장

  

  

시청자와 함께, 시청자의 곁에 있는 미디어

미디어를 비판 없이 수용하고 받아들이기만 할 때에는 사람을 잠식하는 괴물로 자리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획일화된 가치를 만드는 데 ‘미디어’도 큰 몫을 했다. 획일화된 관심과 가치를 조금씩 돌리는 것, 내 주변을 돌아보고, 나와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지역에 생기는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역할 중 하나다.

지역에서 시청자미디어센터가 곧게 자리 잡는다면, 지역 방송에서 ‘108동 아주머니들’이 모여 만든 방송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메아리로 그칠 줄 알았던 ‘내 이야기’를 공영방송에서도 볼 수 있게 된다. 시청자가 마땅히 자신이 누릴 권리를 누리도록 돕는 곳, 관이 아니라 시청자를 보고 걸어야 하는 곳, 대전에 시청자미디어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수연 사진 송주홍,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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