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7호] 이공갤러리 개관 15주년 기념전

‘이공갤러리(관장 전형원)’가 올해 개관 15주년을 맞는다.

이공갤러리는 15주년 기념 전으로 <당대의 어법 전 當代의 語法 展>을 마련했다. 7월 1일부터 7월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오세열, 김동유, 권종환, 안치인, 오윤석, 이재규, 이지현, 하태범, 함명수 작가가 참여한다.

이공갤러리 전형원 관장은 “작가의 내면, 철학, 사회의식에서 구축된 의미를 작가가 어떻게 자신만의 특징적인 미술언어로 형상화 하는지를 살피는 전시다.”라며 “개성 있고 독창적인 자신만의 표현 어법을 가지는 작가 아홉 명이 참여한다.”라고 설명했다. <편집자 주>

김동유
  
  
하태범
  
  
이재규
  
  

오세열의 작업은 주로 그의 개인사에서 출발한다. 유년시절 기억과 소소한 기쁨들, 작고 사소한 것들에 보냈던 애틋한 시선이나 시간의 흔적 같은 것이다. 물론 그가 독실한 신앙인으로 사는 만큼 믿음이나 형제애가 담긴 작업을 만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그의 이야기는 애초부터 큰 성공이나 거대 담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곧 자신이 다루고 있는 물감이란 매체와 그 지지대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가 오세열이 다루는 질료는 그만의 특유의 톤으로 번역되면서 그 절절한 느낌이 더해진다.

권종환은 솜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자신의 심상(心狀)을 투영한 듯 한 그의 작업은 관자로서는 개념이 아니라 생생한 체험에 가깝다. 우리 주변 환경이나 사물이 그의 손을 거쳐 부드러운 솜의 세계로 치환되는 동안 우리는 곧바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감과 동시에 시각적 사유를 경험한다. ‘천재는 사물의 본성을 바꾸는 사람’이라고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는 말했다던가?

김동유가 자신의 화폭으로 불러오는 유명한 인물들의 시대는 곧바로 우리가 살고, 우리 부모님이 살아낸 시대다. 그러기에 그 유명인의 드러난 삶이 비록 그 실체와는 다르더라도 우리가 살아낸 시절과 겹쳐지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작가 김동유의 화폭 저편 안쪽에 숨겨져 있는 욕망과 허무와 죽음, 존재와 부재, 생과 사의 논제는 그의 작품을 대하는 또 다른 관점이 되기도 한다.

안치인은 회화, 설치, 미디어, 퍼포먼스를 모두 아우르는 토탈 아티스트다. 아니 장르간 벽을 허물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탈 장르 예술가라 해야 더 어울릴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자연의 힘과 생명력, 그 속에 흐르는 기운이며 이것으로 하여 인간 생명력 또한 탄생한다는 개념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만의 화법과 활달한 필치로 특징적인 화면을 만들어내면서 그의 개념을 전달한다.

오윤석의 작업을 보노라면 유구한 세월을 살아온 현재 인류의 사유 환경과 존재 방식을 일깨우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가 행하고 있는 경전과 같은 글귀의 베껴 쓰기, 오리기로 대변되는 외롭고 고독한 수행은 바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층시킨 다차원의 철학과 종교이론을 깨달을 수 있었던 인류의 모습과도 흡사하게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그 텍스트의 구체적인 내용은 뒤로하고 그가 오려낸 문자 형태, 전체적인 마티에르, 공간, 그림자를 머금은 순수한 미술품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재규는 기계적인 메카니즘에서 나옴직한 간결한 기하학적 구성에 다채롭고 절제된 색채를 가하여 평면 작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 작업 자체로도 순수미술로서의 완결성을 가질 수 있지만 그는 이 같은 소통구조에 자신의 발언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지현의 작업을 단순한 재료 터치라 표현하기 보다는 지난한 노동 과정이 빚어낸 결정물이라고 해야 더 적절할 것 같다. 성경책이나 잡지나 신문이 갖는 매체적 특성을 완전히 소거하지 않으면서 소재가 전해주는 물성을 함께 경험하게 하는 그의 작업은 최근 소재와 방법론을 달리해 셔츠 형태로 옮겨와 있음을 선 보인다.

하태범의 작업은 언론 매체가 생산한 사회적 쟁점이 될 만한 고발성 사진을 바탕으로 사건의 현장을 재현·설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채색이 배제된 재현물을 다시 사진으로 옮기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일련의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업은 기 드보르(Guy Debord)가 구경거리 사회(Soceity of the spectacle)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일상이 된 충격적인 현장과 그것을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 우리들 자신을 함께 응시하는 위치에서 전개되고 있다. 

함명수는 현대도시의 욕망과 그 덧없음을 은유하고 있는 작가다. 그의 그림은 그만의 특유한 기법 때문에 면발 풍경, 속칭 국수가닥 풍경으로 불린다. 그의 회화가 면발풍경으로 불리기까지 전체를 휘감은 골격위에 수없이 칠해지고 중첩된 붓 터치가 발산하고 있는 것은 유쾌함이며 쇼크이고 관자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전형원 사진 이공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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