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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7호] 너와 나 사이 대전대학교 CONNECT전
6월 4일 지방선거로 온 동네가 시끌시끌 거리던 날이었다. 수업이 없는 학교는 유난히 조용했다. 선선한 바람이 공간을 들락날락거린다. 공간 한 귀퉁이에 언어가 다른 ‘너와 내’가 모였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너는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살짝 겁먹은 것 같기도 하고, 의문스러운 눈빛인가? 호기심인가? 헛갈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언어가 다른 우리 사이에 익숙지 않은 영어가 오간다.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늘 너와 나 사이 가득 들어찰 그것에 관해 짤막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공간 한구석에 삼각형 모양으로 기둥 세 개를 세웠다. 기둥 표면은 울룩불룩 무언가가 튀어나와 있다. 알록달록 색깔도, 질감도, 모양도 천차만별 다른 실이 한 움큼 놓여있다. 그 옆으로 알아볼 수 없는 꼬부랑 글씨와 낯선 우표가 붙은 봉투 몇 장이 보인다.
쭈뼛쭈뼛 실을 잡고 어색한 폼으로 기둥 앞에 섰다. 실을 한 기둥에 묶고 옆 기둥에 연결한다. 어색하던 시간도 잠시. 시간이 흐르자 흥얼흥얼 콧노래가 들린다. 깔깔깔 웃음소리도 들린다. 세 기둥 사이 실이 점점 복잡하게 연결되자 함께 작업하는 우리의 팔과 다리도 같이 뒤섞였다. 잠깐 자리를 비켜주고, 잠시 기다려주는 배려가 이어진다. 어색했던 사이에 농담이 오간다. 뒤엉킨 실을 보고 거미줄 같다느니, 뱀 같다느니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남정애 작가와 동남아시아 교환학생
동남아시아국가연합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10개국에서 온 스무 명 학생이 대전대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박창호 교수는 곧 자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위해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여러 곳에 자문을 구하던 중 이응노 미술관의 한 학예사로부터 작은 예술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제안과 함께 대전에서 활동하는 남정애 작가를 소개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스무 명 학생 이야기를 들은 남정애 작가는 자신의 작업 재료인 ‘실’과 잘 어울리는, 뜻 깊은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 글로벌라운지에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실과 기둥을 이용해 설치미술의 형태로 작업을 진행했다,
남정애 작가는 학생들에게 자기 나라 실을 구해 주길 부탁했다. 실이라기 보단 끈이라고 불러야 할 것도 여럿 눈에 띈다. 태국에서 온 앰 씨는 실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왜 실이 필요한지, 엄마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어려웠어요. 결국에는 여동생에게 다시 부탁했죠. 바느질을 자주 하는 동생이 다행히도 이것저것 실을 많이 보내줬어요.”
Connect는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작품 제목이다. 각각 다른 나라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실은 연결,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재료다. 또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메세지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한 작업을 남정애 작가가 조금 정리하고 다듬어 작품을 완성했다.
“바닥에 실을 늘어뜨려 수평으로 뻗어 나가는 나무뿌리를 형상화했어요. 기둥을 연결하는 실은 여러 갈래로 뻗은 나뭇가지를 의미하고요. 나뭇가지는 모두 따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뿌리를 가지는 거죠, 우리는 모두 다른 나라에 살고 있지만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걸 이렇게 표현해 봤어요.”
작품 주변에 학생들이 이번 작업을 위해 만든 동영상을 재생했다. 각 나라의 무역과 교류를 주제로 한 동영상이다. 작품은 약 2주간 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 글로벌라운지에서 전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