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04호][문학동네]분홍색 외투와 수족관
분홍색 외투를 입은 수많은 할머니들이
나의 몸속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이제는 추억이 된 몸속의 흐느낌들이
검은 하늘 가득 분홍색을 죽죽 칠해나간다
값싼 외투에 깃들어 있는 석유 냄새처럼
비명의 냄새를 풍기는 흐느낌
(신기섭, 「분홍색 흐느낌」 부분, 『분홍색 흐느낌』, 문학동네, 2006)
신기섭 시인은 시집 한 권을 남기고 스물여섯 되던 해, 눈이 많이 오던 날 출장길에서 차 사고로 죽었다. 시에서 할머니 손에 자란 시인은 할머니가 죽고, 할머니의 분홍색 외투를 태우고 있다. 「분홍색 흐느낌」 외에도 가난한 시절의 기억은 그의 시집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는 감히 가난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엄살을 피워도 어쩌면 ‘가난’에 대한 진정한 경험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날이 추워지는데, 목척교 한쪽에 얼굴을 가리고 누워 있는 노숙인. 그들의 추위를 우리는 다만 추측만 할 뿐이다.
이 시집을 읽는데 문득 한 친구가 떠오른다. 대학교 때 야학에서 만난 준현. 준현은 나랑 동갑이었다. 동갑인데 어쭙잖게도 내가 선생님이고 준현이 학생이었다. 청각장애를 지닌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준현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야학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한쪽 눈꺼풀이 다른 눈에 비해 약간 짜부라져 보이고, 천진하게 쇳소리를 내며 웃었고, 오락실 노래방에서 동전을 넣고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크라잉넛의 <서커스 매직 유랑단>, 수업 시작 전에 잠깐 들른 오락실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마도 야학을 그만둔 뒤, 어느 날이었을 거다. 몇몇 야학 선생님들과 병문안을 갔다. 준현의 아버지가 위암으로 입원을 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야위었다. 커다랗고 검은 두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모습은 생생하다.
병원의 음험함보다 이제 막 시작된 봄날, 거리의 화사한 빛이 더 기억에 남는 걸 보면 그때 죽음은 내게 요원한 것이었나 보다. 그저 여럿이 어울려 거리를 걷는 게 신났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한참이 지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에 갔다. 그 장례식장에서 나는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
“왜 안 울어? 많이 울 줄 알았는데.”
고작해야 스무 살 언저리, 그 나이에 맞이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나는 눈곱만큼도 모르면서 그 친구 앞에서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 준현은 헛웃음을 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겨울이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녀석도 올해는 서른셋이 되었을 거다. 추워지는 겨울, 때로 우리가 전혀 모르는 세계나 이웃이 있다는 건 다행인가, 불행인가. 그들은 또 우리와 얼마나 닮아 있고, 또 얼마나 다른가. 서로 붙어 있으나 칸이 나누어진 수족관처럼 이쪽과 저쪽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그러니 바로 옆의 세계를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시집을 읽는데 문득 한 친구가 떠오른다. 대학교 때 야학에서 만난 준현. 준현은 나랑 동갑이었다. 동갑인데 어쭙잖게도 내가 선생님이고 준현이 학생이었다. 청각장애를 지닌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준현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야학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한쪽 눈꺼풀이 다른 눈에 비해 약간 짜부라져 보이고, 천진하게 쇳소리를 내며 웃었고, 오락실 노래방에서 동전을 넣고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크라잉넛의 <서커스 매직 유랑단>, 수업 시작 전에 잠깐 들른 오락실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마도 야학을 그만둔 뒤, 어느 날이었을 거다. 몇몇 야학 선생님들과 병문안을 갔다. 준현의 아버지가 위암으로 입원을 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야위었다. 커다랗고 검은 두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모습은 생생하다.
병원의 음험함보다 이제 막 시작된 봄날, 거리의 화사한 빛이 더 기억에 남는 걸 보면 그때 죽음은 내게 요원한 것이었나 보다. 그저 여럿이 어울려 거리를 걷는 게 신났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한참이 지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에 갔다. 그 장례식장에서 나는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
“왜 안 울어? 많이 울 줄 알았는데.”
고작해야 스무 살 언저리, 그 나이에 맞이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나는 눈곱만큼도 모르면서 그 친구 앞에서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 준현은 헛웃음을 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겨울이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녀석도 올해는 서른셋이 되었을 거다. 추워지는 겨울, 때로 우리가 전혀 모르는 세계나 이웃이 있다는 건 다행인가, 불행인가. 그들은 또 우리와 얼마나 닮아 있고, 또 얼마나 다른가. 서로 붙어 있으나 칸이 나누어진 수족관처럼 이쪽과 저쪽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그러니 바로 옆의 세계를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글 사진 이혜정 일러스트 원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