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8호] 카일린의 일본 문화 탐방기

한여름이 되면 일본에서는 더위와의 한바탕 전쟁이 시작됩니다. 대학생 시절, 조금이라도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역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학교까지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갔는데 더위를 잘 타지 않는 저도 ‘너무 더워! 꽥!’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정도로 맹더위랍니다. 우리나라보다 습도가 높아서 불쾌지수까지 크게 올라가지요. 에어컨, 선풍기 등 전자기기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기분까지 시원해지는 음식이나 생활 속 소소한 소품 또한 큰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나라에 여름의 디저트 하면 팥빙수가 있듯이 일본에는 ‘카키고오리’가 있답니다.
카키고오리
일본에서 여름 음식 하면 바로 실국수입니다.

가늘고 찰랑찰랑한 면발을 후루룩하고 들이키며 캬~ 하고 탄성을 뱉으면 더위가 싹 물러가는 듯한 기분입니다. 간장에 담가 먹는 메밀국수처럼 소면이 여름의 대표적인 음식이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7월 7일의 ‘타나바타’라고 하는 명절 덕분이지요. 이날 소면을 먹는 습관도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칠석으로 알려진 이 날에는 상점가에서 화려한 축제가 열리곤 합니다. 왜 소면이냐 하는 것에 대해선 건강 기원, 연애 성공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소면이 고운 실과 닮아서 직녀처럼 베틀 짜기를 잘하게 되기를 기원한다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팥은 물론이고 과일, 젤리에 떡으로 토핑하는 팥빙수와 달리 카키고오리는 곱게 간 얼음과 화려한 색깔의 시럽만 뿌려서 먹는 것입니다. 제가 일본에서 처음 카키고오리를 먹은 건 가수를 꿈꾸며 연예기획사 기숙사에 살던 시절이에요. 기숙사를 관리하고 식사를 만들어주시는 아저씨가 계셨는데, 너무 덥다고 투덜거리자 “잠깐 기다려!” 하시더니 직접 카키고오리를 만들어주셨어요. 새하얀 얼음이 고봉으로 쌓인 그릇을 두 개 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소스를 두 종류 가져오셨어요. 형광 초록빛의 멜론 맛 시럽과 형광 핑크빛의 딸기 맛 시럽이었어요. 멜론 맛을 듬뿍 뿌려 먹고 나니 머리에서 눈 깜짝할 새에 더위가 물러갔습니다. 혓바닥도 초록빛으로 변했지요!

  

  

소리에도 시원함이 있을까요?

시원한 곳에 가거나 차가운 음식을 먹는 건 우리에게도 익숙한 더위 나기의 방법인데 일본에는 한술 더 떠서 소리를 이용해 더위를 나기도 해요.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소리도 시원하고 흐르는 냇물의 소리도 시원하지만, 일본인이 생각하는 시원한 소리는 바로 실로폰처럼 울리는 ‘후우링(風鈴)’ 소리입니다. 바람이라는 단어와 종이라는 단어를 합쳐 후우링이라 읽는데요. 직역하면 ‘바람 종’이 됩니다. 금속이나 유리로 된 컵 같은 것에 작은 금속이 실로 매달려 있는데, 그 실은 밑까지 쭉 길게 나와서 책갈피 같은 종이에 이어져 있습니다. 그 종이 덕분에 바람이 불면 안에 있는 금속이 잘 움직여서 ‘띠링 띠링’ 하고 시원한 소리가 나는 거예요. 지붕 끝이나 창문 가에 이 후우링을 달아놓으면 그 소리가 꼭 물컵 안의 얼음이 움직이는 소리 같기도 해서 온갖 상상만으로 기분이 시원해진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여름나기 하면 빠뜨리지 않고 떠올리는 것이 바로 불꽃놀이입니다.

불꽃놀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과 8월, 일본 전 지역에서는 1년 동안 준비한 불꽃놀이 행사가 시작됩니다. 규모가 큰 불꽃놀이 행사에서는 8만 발이 넘는 불꽃을 쏘아 올려요. 영화 스크린보다도 더 큰 하늘에 펑펑 시원하게 터지는 불꽃놀이. 그리고 오색 빛으로 수놓은 듯 빛나는 하늘을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 며칠 전부터 돗자리를 깔아놓고 노숙하는 사람도 많지요. 제 친구들도 강가의 좋은 자리에서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일주일 동안 서로 번갈아가며 노숙했어요. 저는 운 좋게 행사 당일 초대받아서 아무런 수고 없이 일등석에서 불꽃놀이를 감상했습니다. 불꽃놀이가 시작하기 세 시간 전에 행사장과 가까운 역에 도착했지만, 전철에서 나가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일본의 전통 의상 유카타를 입은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저와 제 친구들은 편안한 복장으로 돗자리 위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군것질하며 불꽃놀이가 시작하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평소엔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가더니 기다리는 시간만큼은 참 느리지요. 그렇게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듣게 된 불꽃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그 후 눈 깜빡할 틈도 주지 않고 아름답게 뻥 뻥 터지는 불꽃놀이는 그해 저의 여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물들여주었습니다.

  

  

아직 여름이 물러가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일본의 일기예보는 매일 “오늘은 어제보다 더 덥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더위 덕분에 만나게 되는 다양한 여름 나기 문화와 음식이 있으니 마냥 싫지만은 않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생일선물로 예쁜 양산까지 받은 덕분에 외출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여름을 마음껏 즐기며 좀 이르지만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게 될 것을 기다립니다.


글 사진 박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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