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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4호]소설 문학을 읽는 즐거움-책들의 그림자
지난 주말, 서울 학술대회에 참석했다가 수줍게 내미는 손에 들린 한 권의 책을 보았다.
『책들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는 연구자이고, 여러 권의 책을 낸 재능 넘치는 분이 책을 쓰고 있다기에 기대가 컸는데 드디어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온 것이다.
나는 반갑게 책을 훑어보았다. 『책들의 그림자』라는 시적인 제목이 우선 마음에 들었고, 뽐내거나 큰 목소리로 외치기보다는 그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한 잿빛 표지 디자인도 좋았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서둘러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내가 여태까지 만난 서평리뷰 책이라든가, 독서 에세이들과는 다른 맛과 향을 가진 책이었다. 각장마다 두세 권의 책에 대한 감상이나 리뷰를 적어 놓은, 요즘 자주 만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책과는 거리가 멀어서 처음엔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책을 계속 읽어 나가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 문학 에세이가 가진 독특하고 개성적인 맛에 취하게 되었다.
이 책은 문학을 사랑하여 문학을 전공했고, 그리고 오랫동안 문학을 강의하고 연구해 온 저자가 가진 문학에 대한 지극한 사랑 고백이며, 문학 언어만이 표현할 수 있고 드러낼 수 있는 아름다움과 향기에 대한 친절한 안내이다. “일상 언어에서 배제된 현상, 혹은 느낌들에 대한 언어의 표현에서 오는 강렬함”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애틋한 열망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또 독자들이 사랑하며 읽었을 만한 수많은 텍스트들과 캐릭터들, 그들의 삶과 특별한 순간들에 대한 섬세하고 깊은 독해가 있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과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과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과 이언 매큐언의 『속죄』,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파스칼 키냐르의 『떠도는 그림자들』 등등.
저자는 이 책에서 그저 이 작품들을 각기 별도로 다루는 것이 아니다. 각 소설의 등장인물이 각기 특별한 순간이나 삶의 경험 속에서 서로 교차하며 만나고, 대화를 나누게 하고, 그 속에서 독자들이 새로운 해석과 통찰을 발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룬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마치 이 한 권의 책이 소설이라도 되는 양, 각 장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만나고 헤어지고 고민하며 문학이라는 특별한 시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하여 작품들과 등장인물들의 떠들썩하거나 고독하거나, 행불행을 겪어 가는 인생길을 통해 우리 독자들은 존재의 이면을, 삶의 시난고난한 모습들을, 내가 누구인지를 새삼 돌아보며 만나게 된다.
마치 뛰어난 태피스트리 예술가가 멋지게 손을 놀려 씨줄과 날줄을 잘 엮은 끝에 한 장의 아름다운 태피스트리 작품을 만들어 내듯이.
“이 책에서 다루는 다수의 인물들은 불행에 빠져 있다. 시대적 상황에서든, 타의든, 자의든, 불행을 당하고 불행을 끼친 인물들이다. 그 불행은 그들을 존재론적인 고독에 빠지게 만들고,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전환점에 발을 디디게 한다. 예측하듯이 삶의 전환점이 항상 희망적인 것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더욱 불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불행은 행복의 곁에서 그늘지고 축축하고 음산한 것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것으로서의 기승전결의 형태를 가지며 다른 장소, 다른 사유, 다른 언어를 생성한다.
아마데우와 루드빅, 조지, 찰스, 한나, 브리오니는 각기 다른 형태의 불행을 겪지만, 그것은 행복 앞에 고개 숙여야 하는 재앙 같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선택의 순간에 이런저런 선택을 했으며, 그 선택에 의해 전혀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다른 언어를 자신의 삶에 들여 놓는다. 그 언어들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이 아니다. 사전에서 엄연히 존재하지만 사용되기까지는 잠자고 있는 그런 언어들이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조지가 말한 ‘그날’ 이 올 때까지는 계속 싸울 것이다. 『댈러웨이 부인』에서 셉티머스가 창밖으로 몸을 던져 자살을 한 순간에도 파티는 계속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143-145쪽)”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독서가 진행되는 시간 속에서는 실제 인물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존재가 되고, 독자는 바로 ‘그들’이 되어 삶의 모험을 떠난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사랑하고, 고통이나 불행, 좌절을 겪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음을 맞기도 하지만, 우리 독자는 여전히 텍스트 바깥에서, 살아있는 채로, 그 모든 경험을 하고 난 후 독서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거듭난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후 만나는 삶과 세계는 전과는 사뭇 다른 것이 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문학독서의 경험이다.
“나는 읽던 책을 덮는다. 오랜만에 오래오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책표지의 바깥, 현실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돌아왔다.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다. 한 달여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여행 전 몸에 배어 당연했던 것은 이질적인 것으로 변해 있다. 방안의 사물들은
내 손에서 빠져나간 모래알들과 같다. 사물들은 마치 자신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낯선 감정들을 몰아내려 하다가 사물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독서 후에 일어나는 이런 “낯섦”의 경험은 단지 저자의 것만이 아니다. 나의 것이기도 하고, 문학작품을 읽는 모든 독자가 늘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의 매혹에 빠져 밤을 홀딱 샌 후, 벅찬 가슴으로 동터 오는 새벽을 맞이해 본 경험, 그 현기증 나는 경험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일일 터이다.
독서의 경험, 물이 촉촉히 스며든 모래가 햇빛에 반짝이듯.
무엇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문학작품을 읽는 경험이 그저 지식이나 교양을 쌓기 위한 지적인 작업이 아니라, 순진무구한 놀이임을, 누구나 거기에 풍덩 빠져 세상과 시간과 심지어 자신마저 잃어버릴 정도로 멋진 놀이의 경험임을 고백하는 데서 나는 진정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수학이 싫고 영어가 좋아 영문과를 택한 한 학생이 문학에 대한 사랑을 발견하지 못해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며 방황하던 끝에 고학년이 된 어느 순간 이후로, 이제 “문학작품을 읽으면 어느샌가 물이 촉촉이 스며든 모래가 햇빛에 반짝거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는 저자가 가르친 한 제자의 고백담은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문학독서 경험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래, 소설로 예를 들자면, 이야기가 풍부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소설은 추상적인 개념으로는 절대로 포착할 수 없는 삶과 존재, 세계의 내밀하고 미묘하며 구체적인 면들을 포착하여 드러내 준다.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아주 구체적이고 전체적인 것인데, 소설만이 그러한 구체성과 전체성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문체와 플롯이라는 양식을 통해 예술이 줄 수 있는 감성적인 쾌감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문학은 저자의 말처럼 “문학은 바로 유리창 안의 거울에 비친 나를 비춰 보게 되는 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문학은 삶의 순간을 포착하고 미미한 것들을 소환해 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관념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비슷비슷한 하루의 반복은 그저 의미없는 것이 아니다. 표상된 외면을 찢고 들여다볼 때 거대한 새로움이 있다. 문학은 우리의 머릿속에 짧게 스쳐 지나가는 단상이나 눈앞에 빠르게 지나가는 파편적인 모습들을 정밀하고 미묘하게 묘사해 내서 결코 인식할 수 없었던 시간에 대한, 현상에 대한, 기억에 대한 문을 열어 놓는 것이다.(25쪽)”
세상의 모든 재미있는 놀이가 그렇듯 문학도 문학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즐거움을 독자에게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모든 독자가 거기에 단박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독서의 참된 즐거움을 향유하기 위해선 때론 고독과 인내, 모험심도 필요하다. 모든 아름답고 귀한 것엔 노력이 따르는 법일 터이니.
“학교 과제나 학습을 위한 의무적인 독서를 제외하고 순전한 놀이로 책을 읽게 되는 계기를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골프도, 스키도, 승마도 그런 놀이의 하나이다. 이런 놀이에도 학습과 비용,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고도 배워야 할 방법과 규칙이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독서가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독서야말로 습관이며 숙련이 필요한 활동이다. 독서의 기쁨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여행을 해 본 사람만이 여행의 기쁨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기쁨은 안락함이 아니다. 오히려 모험에 가까운 험난한 여정이다”
글 김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