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8호] 1박 2일 청년을 위한 대전여행

얼마 전, SNS에서 대전 관련 웃픈(웃기면서 슬픈) 글을 하나 봤다. “대전이 얼마나 살기 좋으냐면 자연재해도 없고, 사고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지만, 실제로 대전 시민 중 많은 사람이 이와 비슷하게 생각한다.

(사)대전문화유산울림에서 용감한 기획을 했다.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대전에서 1박 2일 여행을 준비한 것이다. 그것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대전에서 1박 2일이나 할 게 있어?’라고 반신반의하며 참가한 대학생 여덟 명. 이들과 함께한 뜨거운 1박 2일 이야기를 전한다.

노루벌 다리에 앉아 한 컷
마을에서 만난 이야기

7월 24일 아침 9시, 서부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에 젊은 청년들이 모였다. ‘1박 2일 청년을 위한 대전여행’ 참가자들이다. 비 온다던 예보와 달리 하늘이 맑았다. 그래서 그런지 청년들 표정도 밝다. (사)대전문화유산울림 안여종 대표가 힘차게 시작을 알렸다.

“대전 지역 대학생과 청년들이 대전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 산과 하천, 그리고 문화 현장을 찾아가는 1박 2일 대전여행을 기획했습니다.”

9시 40분, 드디어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평촌동이 종점인 대전 외각버스 26번에 청년들이 올라탔다.

  

  

“방학 때 할 게 없어서 찾아보다가 우연히 참가하게 됐어요. 원래 서울 사람이거든요. 대전에 가볼만한 곳이 어디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런 기회가 있어서 엄청 설레요.” (김영빈 카이스트 2)

“대학에서 맞는 첫 여름방학이거든요. 의미 있는 여행 해보고 싶어서 참여했어요. 기대가 많이 되요.” (김정운 한남대 1)

  

  

웃고 떠드는 사이, 시골길을 굽이굽이 돌아 도착한 곳은 평촌동 증촌마을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마을 입구를 지키는 커다란 느티나무였다.

  

  

“어느 마을이나 이렇게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 입구를 지킵니다. 마을에서 느티나무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수령은 얼마나 됐는지, 또 마을에 전해져오는 이야기는 어떤 게 있을지 각자 알아보는 시간 갖겠습니다.” (안여종 대표)

  

  

소제동 골목을 걷고 있는 청년들

  

  

안여종 대표는 여행 시작 전부터 청년들에게 주도적으로 여행에 참여하길 권했다. 내가 여행하는 것이고, 내가 주체라는 것이다. 청년들은 각자 마을에 흩어져 이야기를 수집했다. 마을 어르신에게 궁금한 것을 여쭙고, 마을 곳곳에 놓인 안내판을 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증촌마을에서 나와 만난 것은 오제왜개연꽃 군락지였다. 갑천을 따라 노랗게 퍼져 있었다. 그 주변에 서식하는 흰뺨검둥오리와 황로, 왜가리 등도 살펴봤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쉽게 접하는 야생 동물이 뭘까요? 바로 새입니다. 근데 각자 알고 있는 새 종류가 몇 가지나 되는지 생각해보세요. 아마 열 종이 안 될 겁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새는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고, 무엇이 특징인지를 알아보는 것도 자신이 사는 지역에 관심 갖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안여종 대표)

  

  

자연에게 듣는 이야기

점심을 먹고 이동한 곳은 굽이치는 갑천을 따라 넓게 펼쳐진 흑석동 노루벌이었다.

“저 앞에 있는 산이 노루를 닮아서 노루산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 벌판을 노루벌이라고 합니다. 눈을 감고 물소리를 들어보세요. 도심 하천과 달리 이곳은 자연하천이기 때문에 물 흐르는 소리가 더 잘 들립니다.” (안여종 대표)

노루벌에서 나와 갑천변을 따라 이동한 곳은 대전에서 가장 먼저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괴곡동 느티나무였다.

“그동안 대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자연유산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광역시 중에서는 드문 일이었죠. 더욱이 대전에 천연기념물센터까지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 때문에 대전에도 천연기념물이 하나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있었고, 울림을 비롯해 여러 시민단체와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작년에 이 괴곡동 느티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수 있었습니다.” (안여종 대표)

바쁜 오전 일정으로 다소 지쳤던 청년들은 700년 된 커다란 괴곡동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몸을 뉘었다. 천국이 부럽지 않은 나무 그늘, 청년들은 어느새 단잠에 빠졌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이사동 송씨 문중 집장촌이었다.

“대전 자원 중 전국을 압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이곳, 이사동 송씨 문중 집장촌입니다. 보문산 남쪽 자락을 따라 은진 송씨 문중 묘소 1,017기가 집중해 있죠. 그간 주목받지 못하다가 최근 장례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옮기며 오히려 부각되고 있죠. 대전시에서도 이곳을 장례문화 체험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곳의 가치와 대전시의 계획에 대해서도 한 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산자락을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진 묘소, 청년들은 다들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고인돌부터 시작해 인류는 전통적으로 매장 문화였잖아요. 대전만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문화유산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정말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김재헌 한남대 1)

첫날 마지막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대동 하늘공원이었다. 하늘공원에서 청년들은 대전 전경을 바라보며 대전을 둘러싼 산과 하천을 짚어봤다. 자연을 걷고, 자연에 기대어보고, 자연에 귀 기울이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고민해본 시간, 대전 여행 첫날은 그렇게 마무리했다.

  

  

중앙시장 탐방 중인 청년들

  

  

비래동 고인돌 앞에서

  

  

오재왜개연꽃 군락지를 관찰하고 있는 청년들

  

  

사람을 통해 만난 세상

둘째 날 첫 번째 여행지는 중촌동 구 대전형무소 기념 평화공원이었다. 그곳에서는 망루와 우물을 만날 수 있었다. 대전형무소는 독립투사를 수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제강점기 때 생겼다. 6ㆍ25 한국전쟁 당시에는 좌우익 인사 수천 명이 학살된, 아픔이 서린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민족적 비극을 되돌아보고자 현재는 망루를 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다.

“제가 중앙고를 졸업했는데, 바로 학교 근처인데도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어요. 그동안 너무 학업에만 신경 쓴 게 아닌가 싶어요. 앞으로는 주변을 둘러보고 지역에 관심 기울이면서 살고 싶어요.” (염승엽 충북대 1)

다음 여행지는 읍내동이었다. 청년들은 읍내동에서 비석과 돌장승, 굴다리 따라 꾸며놓은 설치미술 작품 등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읍내동에는 굴다리가 모두 8개나 있습니다. 독특한 공간이죠. 이곳에서는 매년 10월,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한 굴다리 축제가 열립니다. 마을 축제인데도 1,000명 넘게 방문하죠.” (안여종 대표)

오후에는 소제동과 중앙시장을 돌아다녔다. 소제동에서는 50년 째 이용원을 운영하는 대창이용원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듣고, 관사촌 일대 골목골목을 걸었다. 중앙시장에서는 37년 전통의 문화빵 할아버지도 만나고, 중앙시장을 대표하는 순대도 맛봤다.

대전여행 마지막 일정으로 대흥동에서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대흥동에서 문화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시간이었다. 각각 조를 짜 풀뿌리여성마을숲 민양운 공동대표, 사회적자본지원센터 박지현 지원국장, 월간 토마토 이용원 편집국장, 도시여행자 김준태 대표를 만났다. 청년들은 이들에게 살아가는 이야기, 꿈꾸는 세상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저는 민양운 대표님을 만났는데, 이번 여행 일정 중 가장 뜻 깊은 시간이었어요. 특히 기준을 두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라던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김재헌 한남대 1)

  

  

대전에 관심 갖는 계기되길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대전을 1박 2일 동안 바쁘게 돌아다닌 청년들. 그들은 이번 여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했을까? 마지막으로 다함께 모인자리에서 청년들은 저마다 여행 소감을 전했다.

“친구들과 여행했다면 별 감흥이 없었을 텐데, 이렇게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을 둘러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김영빈 카이스트 2)

“대전 곳곳에 숨어있는 정취를 알게 돼서 좋았어요. 또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굉장히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염승엽 충북대 1)

“흔히 대전하면 둔산동 같은 번화가를 떠올리는데, 이렇게 대전 시골마을을 둘러보니까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김재헌 한남대 1)

“저에게 이번 여행은 인생의 전환점 같은 계기였어요. 1박 2일 동안 정말 많은 땀을 흘렸는데, 그 땀에 비례할 만큼 가치 있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해요.” (정화진 충남대 3)

  

  

안여종 대표는 여행 중간 이런 말을 했다. 젊은 청년들이 아르바이트와 취업, 미래에 관한 고민에만 매몰되어 있는데, 조금만 여유 갖고, 지역 문제에도 관심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러한 문제에 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때때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1박 2일 청년을 위한 대전여행’은 대전의 요소요소, 거의 모든 곳을 둘러본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청년들이 보다 더 대전에 관심 갖고, 애정 갖길 바라본다. 나아가 그 애정으로 지역 문제를 고민하고, 의견을 표출하길 기대해본다. 대전 청년들이여, 일어나라!

  

  

소제동 대창이용원


글 사진 송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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