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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8호] 하나씩, 도시에 점을 찍는다
지난 7월, 새로운 공간 두 곳이 문을 열었습니다. 성격은 다르지만, ‘공연’이라는 큰 목적 하나는 같습니다. 두 곳 모두 어느 한 사람이 감당하거나 책임질 만큼 작은 공간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에 의해 그 색을 명확하게 드러낼 곳이기도 하고요.
새로운 공간이 생길 때마다 더 신선한 일을, 더 대단한 일을 해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곳만의 색을 품고, 조금씩 선명한 색으로 점을 찍어주길 바라는 것이지요. 그들이 찍은 점이 하나씩 모여 그림 한 점을 남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도시도 그들도 오랜 시간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도시는 그들이 찍는 점의 캔버스 정도로만 기능하면 됩니다. 등 떠밀지 말고, 자연스럽게 도시와 합을 이룰 수 있도록 조금만 기다려주면 될 것입니다. 도시라는 캔버스 위에 찍힌 점들이 더 선명하게 제 색을 발현하고,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는 데 부족함없이 자리하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공간이 더 선명하게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이제, 믹스페이스가 자리한 그 길
옛 대전극장통, 우리는 오랜 시간 그 골목을 그렇게 불렀다. 대전극장이 사라지고 수년이 지났어도 그 거리의 이름은 옛 대전극장통이었다. 대전극장은 그곳이 자리할 때의 명성도 요란했고,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렇게 추억 속으로 건너가야만 자리할 것 같았던 옛 대전극장 자리에 ‘공연장’이 들어섰다.
공간은 ‘점’에 의해 이름불리기도 한다
지난 2012년부터 개관 준비를 시작한 믹스페이스는 2014년 7월, 두 번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공식 개관일은 아니었지만,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연장을 공개한 날이었다.
“준비한 지는 햇수로 3년 정도 됐네요. 제가 1년 정도 먼저 준비를 시작했고, 이강국 공연사업팀장이 작년 7월에 합류했고요. 시간이 좀 걸렸어요. 이 건물이 워낙 법적인 문제가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그것부터 정리해야 했거든요. 8개월가량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죠. 이제 위에 있는 건물들과 지하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요. 지하만큼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곳이 된 거죠.”
믹스페이스 강윤서 총괄운영팀장의 이야기다. 공사를 시작하려는데, 그간 밀린 전기세를 내라는 고지서가 날아오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1년 동안 문제가 될 만한 것을 해결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공연장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데 다시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대중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점점 느는데, 대중음악을 즐기기에 적합한 공연장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믹스페이스는 대중음악을 즐기는 데 적절한 공연장을 꿈꾸며 시작했다. 믹스페이스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믹스홀은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팀과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스탠딩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전국에 안 다녀 본 공연장이 없었습니다. 한국에는 스탠딩 공연장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데다가 대부분 수도권에 밀집해 있죠. 지역에도 이런 공연장이 있으면, 지역 뮤지션과 공연 예술계에 선순환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나씩 공간에 손길을 준다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로 175번길 25 홍명프리존 지하 1, 2, 3층이 믹스페이스가 자리 잡은 공간이다. 스탠딩 형태와 좌석 형태로 활용가능한 ‘믹스홀’, 스탠딩 형태로는 800여 명, 좌석 형태로는 450여 명의 관객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50여 명 정도를 수용하는 소극장 형태의 공연장인 ‘믹스테이지’, 카페와 함께 옥상처럼 쓸 수 있는 ‘어반라운지’ 등 믹스페이스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다양하다.
“다양한 공연장에 다니며 참고한 것은 있지만, 믹스페이스는 믹스페이스만의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지역의 공연장을 따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환경이나 조건이 이곳과 맞지 않는 면이 분명 있으니까요. 이곳에서만 만들 수 있는 공연장을 꿈꾸지만, 공연장이기 때문에 갖추어야 할 분명한 원칙은 갖추려고 노력했어요.”
믹스페이스 이강국 공연사업팀장의 이야기다. 그들이 생각한 원칙 첫 번째는 ‘소리’다.
소리를 전달하는 기계를 선택하는 것에 또 6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관객과 뮤지션 모두 만족할 만한 소리를 위해 신중을 기했다. 좋은 소리는 공연장의 ‘기본’이라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무대에 서는 사람을 위한 배려를 꼼꼼히 챙겼다. 대기실마다 개별 화장실은 물론 샤워시설을 갖추었다. 무대에서도 무대 밖에서도 공연자들이 배려받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했다. 공연을 보는 관객을 위한 배려도 곳곳에 보인다. 가장 큰 공연장인 ‘믹스홀’은 스탠딩 공연장이지만, 키가 작은 사람도 공연하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바닥을 계단 형식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앞자리를 놓친 사람도, 먼발치에서 공연을 즐기는 사람도 무대에 선 뮤지션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무대 중간에 설치한 ‘바’는 여성을 위한 작은 배려다. 공연을 보다 지친 여성들이 기댈 수 있도록 여성의 평균 키를 고려했다.
“물론 저희보다 좋은 공연장도 많아요. 저희 역시 ‘최고 좋은 공연장’이라고 내세우고 싶지도 않고요. 그냥 어느 정도 기준을 두고, 그것까지는 해보자는 욕심으로 만들었어요. 아직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요. 공연을 두어 번 치르고 나니 부족한 점이 보여서 자꾸 욕심이 생기네요. 앞으로 더 보완해야죠.”
(위) 출연자 대기실 (아래)공연장 입구
믹스홀
강윤서 총괄운영팀장 이강국 공연사업팀장
조금씩 변화를 품는 길
공연장을 두고 품는 꿈도 많다. 비틀즈의 앨범을 녹음한 스튜디오로 잘 알려진 영국 런던의 ‘에비 로드 스튜디오’처럼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공간을 꿈꿔본다. 지역 뮤지션이 방앗간처럼 드나들고, 공연예술계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만나 뭔가를 만드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조금씩 퍼지는 변화의 물결이 이곳에서 시작하기를 바란다. 물론 공연장의 역할을 핵심으로 둔다. 어떤 뮤지션이라도 공연하고 싶은 공연장이 믹스페이스가 추구하는 공간의 모습이다.
“멀리 보고, 오래가려면 결국 지역 뮤지션의 도움 없이는 힘들 거예요. 대전에 있기 때문에 지역 뮤지션은 되도록 배려하려고 해요. 이용하는 데 있어서 혜택을 조금씩 드리는 거죠. 이곳을 기점으로 한 커뮤니티가 활발해졌으면 좋겠고요. 편안하고,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컴컴해지면 어둠 때문에 발길을 들여놓기 무서웠던 골목이 변화를 시작했다. ‘공연장 하나가….’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겠지만, 바꾸어 말하면 공연장 하나가 변화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이다. 강윤서 팀장은 두 번의 공연을 치르며 거리의 변화를 조금씩 느낀다.
“예전에 여기가 서울 명동 같은 곳이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대전에서 대전극장이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그렇고요. 제가 아는 여기 옛 모습은 그게 전부예요. 저는 대전사람이 아니라서 이 골목에 어떤 향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 골목의 지금만 봤어요. 지금은 게임장이 많고, 저녁이면 다 불 꺼지고…. 조용하고 삭막하잖아요. 근데 바뀔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공연 있는 날, 공연장 정리하고 나오면 분위기부터 다르거든요. 공사가 한창이었던 때에 좀 연세 드신 분이 구경하고 싶다면서 내려오셨던 적이 있어요. 지하를 천천히 둘러보시면서 여기가 대전극장 있던 자리가 맞느냐면서 기절할 뻔했다고 하시는 거예요. 일단 지하부터 시작해서 골목이 천천히 변했으면 좋겠어요. 가까운 시점에 뭔가를 해내려고 조급하게 굴지는 않을 거예요. 멀리 봐야죠. 젊은 사람이 좀 드나들고, 자리 잡으면 변화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장르를 막론하고, 모두가 모였다
혼자보다는 함께의 힘을 믿는다.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인이 한데 모였다. 모두 함께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자는 이상을 품고, 지난 3월, 대한문화예술발전포럼(이하 대문발포)이 출범했다. 대문발포는 “전통문화와 순수예술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지적활동과 대중예술, 레저, 여가활동, 패션, 애니메이션, 영상매체까지 넓은 문화영역을 포함한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창의적인 활동을 하며, 더 많은 사람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장을 만들어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는 단체다.”라고 자신들을 설명한다. 함께 하는 사람, 같은 꿈을 품은 사람을 모았다. 현재 대문발포 회원은 300여 명, 이중 임원진을 빼고 꾸준한 활동을 하는 일반 회원은 30~40여 명 정도다. 이들이 지난 7월 ‘복합문화공간 스카이홀(이하 스카이홀)’이라는 공간을 마련했다.
장르불문, 문화예술의 거점을 꿈꾼다
스카이홀은 대전 중구 중앙로 138번길 25 코리아나빌딩 8층이다. 120여 평 규모로 좀 더 폭넓은 문화예술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92년 겨울, 대학 1학년 때부터 거리 공연을 했어요. 파랑새뮤지션이라는 이름이었죠. 주말마다 목척교 아래 공원에서 공연하곤 했죠. 그땐 ‘버스킹’이라는 말이 있을 때도 아니었어요. 그렇게 98년도까지 거리 공연을 했는데, 처음엔 홍명상가 주변 상인들이 시끄럽다고 반대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공연 때문에 사람이 모이니까 상인들도 함께 즐겼어요.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았고, 그것 때문에 보람이 있었죠. 98년까지 주말이면 나와서 공연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갔어요. 서울에서 일하다 다시 대전에 내려왔죠. 물론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나아지긴 했죠. 그래도 아직 예술가들이 예술만 해서 먹고 살기는 어렵잖아요. 이들 이전에 어느 정도 활동했던 음악 세대의 선배로서 대전의 문화를 바꿔보자고 다짐했죠. 공연장르 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대문발포 홍정기 회장의 이야기다. 이들은 스카이홀이라는 거점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일단 한 달에 한 번씩 유료공연을 기획한다. 평상시에는 간단한 브런치를 할 수 있는 카페 형태로 운영할 예정이다. “좀 더 탄탄한 기획으로 펼칠 수 있는 공연을 이곳에서 했으면 한다.”라며 대문발포 부회장이자 프리버드 라이브클럽의 서동훈 대표가 이야기를 잇는다.
“일상적으로 예술이 일어나는 공간을 꿈꿔요. 예술이 어렵다는 편견도 예술이 꼭 격식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도 깨고 싶어요. 이 공간은 시험무대지만, 나중에는 도시 전체가 그렇게 일상적으로 예술을 즐기는 곳이었으면 해요. 물론 제가 생각하는 게 바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거란 것도 인지하고 있죠. 그런데 저는 뭔가 미비하더라도 보여주면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펼칠 예정이에요. 그게 뭐가 되었든 시작하고, 진행하면서 보완하고…. 그렇게 이 공간을 꾸려나갈 예정이에요.”
홍정기 회장 서동훈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