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8호] 대전시립미술관 피카소와 천재화가들 전

 
01. DESIRE 이상을 꿈꾸며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목욕하는 여인 The Small bather>. 32.7x25.1. Oil on canvas. 1826

  

  

필립스컬렉션 소장품 85점이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시민을 만났다. 이번 전시는 대전MBC가 창사 50주년을 기념해 대전시립미술관, 충청투데이와 함께 마련했다. 워싱턴DC에 자리한 필립스컬렉션은 1921년 말 ‘필립스 기념 갤러리’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시작한다. 1908년 대학 졸업 후 뉴욕에서 미술비평가로 활동하던 던컨 필립스는 취미로 회화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생을 마감한 아버지와 형을 기리며, 필립스컬렉션을 기획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2천여 점 가까운 현대미술 작품을 수집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필립스컬렉션의 소장품은 3천여 점에 달한다.

필립스컬렉션 수석 큐레이터인 수잔 버나드 프랭크는 지난 7월 1일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던컨 필립스는 그가 소장한 작품을 많은 이가 볼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라며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한국에 와 전시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부터 외젠 들라크루아, 오노레 도미에,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모리스 루이스까지 1800년대부터 2000년대 작품 85점을 다섯 개 부문으로 나누어 전시했다. ‘01. DESIRE 이상을 꿈꾸며’, ‘DESIRE 선구자가 되다’, ‘02. LOOK 피카소와 입체주의’, ’03. FEEL 색채의 향연’, ‘FEEL 향기로운 추상’, 다섯 개 방에서는 신고전주의부터 입체주의까지 서양미술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도록 전시장을 꾸몄다.

더 아름다운 세상과 사람을 화폭에 담기 원했던 화가들은 완벽하고, 이상적인 것을 캔버스에 그렸다. 이번 섹션에서는 1820년대부터 1860년대까지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작품을 두루 살필 수 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당대를 살았던 작가들이 어떤 이상을 꿈꾸고, 무엇을 동경했는지 보여준다.”라고 이 섹션을 소개한다.

신고전주의 대표화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는 이상적인 누드화를 그리기 위해 여인의 몸을 왜곡해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목욕하는 여인>도 여인의 몸을 더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허리를 좀 더 길게 하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뒷모습을 그렸다. 그는 <터키탕>,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등의 작품에서도 목욕하는 여인의 뒷모습을 그렸다. 작품마다 오른쪽으로 얼굴을 살짝 비튼 여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살짝만 보이는 얼굴 때문에 신비감이 더한다. 목선부터 이어지는 둥근 선으로 이루어진 몸에 목부터 어깨까지 살짝 드리운 빛을 표현했다.

이외에도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의 <회개하는 성 베드로>, 오노레 도미에의 <봉기>도 감상할 수 있다. 던컨 필립스는 <봉기>를 오노레 도미에의 회화 중 가장 아꼈다고 한다. 오노레 도미에는 평생 화가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봉기>에는 하얀 터번을 쓴 여인이 오른손을 번쩍 들고, 무언가를 외치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 차림새로 화폭 안에 담긴 사람의 생활을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 던컨 필립스는 종종 이 작품을 “컬렉션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 DESIRE 선구자가 되다

에두아르 마네. <스페인 발레 Spanish Ballet>. 60.1x90.5. Oil on canvas. 1862

  

  

‘선구자’란 어떤 일이나 사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앞선 사람을 뜻하는 낱말이다. 이번 섹션에서는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중요한 회화운동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을 그린다. 사물 그대로가 아니라 그로부터 풍겨온 인상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표현한다.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와 빈센트 반 고흐 등의 작품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오베르의 집>은 반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파리 북쪽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머물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그는 70일 동안 오베르에 살며 77점의 유화와 30점의 드로잉을 그렸다. <오베르의 집>은 1890년 자살하기 몇 주 전, 오베르에서 그린 풍경화다. 노란색, 녹색, 검은색으로 표현한 밀밭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바람은 한쪽으로만 부는 것이 아닌 듯하다. 밀밭을 휘감는 바람이 화폭에 담겼다.

클로드 모네의 <베퇴이유로 가는 길>, 에두아르 마네의 <스페인 발레>, 에드가 드가의 <스트레칭하는 무용수들>과 함께 피에르 보나르의 다양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피에르 보나르는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이 붙은 작가다. “색은 언제나 존재하며, 색은 빛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필립스 컬렉션은 피에르 보나르의 작품 여럿을 소장했다. 비교적 초창기 작품인 <서커스 곡마사>부터 <활기찬 거리>, <초봄>, <어린이와 고양이>, <체리가 담긴 그릇>, <리비에라>, <누드>까지 일곱 점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피에르 보나르는 자신의 부인 마르트 부르쟁을 뮤즈로 그녀의 일상을 주로 그렸다. 평소 그녀는 목욕하는 것을 즐겨 몇 시간이고 목욕하던 습관이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그녀가 목욕하는 장면이 다른 구도, 다른 모습으로 많이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의 작품 <누드>로 그가 사랑했던 여인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다.

  

  

02. LOOK 피카소와 입체주의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은 세 번째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1900년대 초기 입체주의 양식 작품이 이번 섹션에 담겼다. 파블로 피카소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이었던 입체주의의 효시로 그의 작품은 ‘청색시대’, ‘장미시대’를 지나 다양한 실험 끝에 입체주의로 변모한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받았던 작품 <푸른 방>은 피카소의 청색시대에 그려진 작품이다. 그의 작업실로 보이는 이 방은 우울한 기운이 맴돈다. 이 작품이 주목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푸른 방 아래 ‘나비넥타이를 맨 남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 뒤에 숨은 남자의 모습을 적외선 촬영한 것을 함께 보여준다.

<푸른 방> 그림 아래 숨겨진 남자의 모습은 1954년, 한 복원 전문가에 의해 처음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당시 그것을 밝힐 기술이 부족했다. 이후 1990년대에 X선 분석을 통해 그림표면 밑에 흐릿한 이미지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때까지도 초상화인지 불분명했으나 2008년, 첨단 적외선 영상 기술로 이 이미지가 ‘수염이 난 남자의 초상’임이 드러났다. 파블로 피카소가 왜 그림 위에 덧그렸는지에 관한 질문에 필립스컬렉션 수잔 버나드 프랭크 수석 큐레이터는 “피카소는 항상 넘치는 아이디어를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당시 열아홉 살이던 피카소는 후원자를 찾아 그림을 그리던 가난한 화가였습니다. 아이디어가 샘솟을 때마다 캔버스를 살 수 없었기에 작품 위에 작품을 덧그린 작품이 종종 보입니다. ‘인생’, ‘다림질하는 여인’ 등 주로 1900년부터 1904년 사이 작품들에서 나타납니다.”

<푸른 방> 이외에도 <투우>, <초록 모자를 쓴 여인>까지 파블로 피카소의 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외에도 조르주 브라크, 루이 마르쿠시 등의 작품을 통해 입체주의 양식의 흐름을 볼 수 있다.

  

  

루이 마르쿠시. <추상 Abstraction>. 33x41. Oil on canvas. 1930

  

  

바실리 칸딘스키. <가을Ⅱ AutumnⅡ>. 60.6x82.6. Oil on canvas. 1912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엘레나 포볼로즈키 Elena Povolozky>. 64.8x48.6. Oil on canvas. 1917

  

  

03. FEEL 색채의 향연

‘푸른 기사’라는 이름의 ‘청기사파’는 1909년에 결성한 그룹이다. 바실리 칸딘스키가 핵심인물이며,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짧은 기간 활동했으나 미술사에 견고히 자리 잡았다. 네 번째 섹션에는 19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청기사파, 야수파 등 색채를 강렬하게 추구한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들이 말하는 ‘색채’란 인상주의자들이 말하는 빛과 대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 색 자체의 본성과 그 효과를 표현한 것이다.

통행요금 징수원으로 일요일마다 그림을 그리며, ’일요일 화가’로 널리 알려진 앙리 루소의 <노트르담>이 보인다. 캔버스 위의 작품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고, 정갈하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색채는 건반, 눈은 화음,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다. 예술가는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건반 하나하나를 누르는 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색채를 중시했다. 선명한 색채로 추상표현을 이룬 바실리 칸딘스키의 <가을II>와 함께 라울 뒤피의 <화가의 아틀리에>, <조인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엘레나 포볼로즈키>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청아한 푸른 기운이 가득한 라울 뒤피의 <화가의 아틀리에>는 실제 라울 뒤피의 작업실이다. 그는 1909년부터 195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작업실을 사용했다. 회화뿐만 아니라 무대장치 디자인, 도자기 제작 등 장식미술 분야로 활동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라울 뒤피는 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나 여가를 보내는 우아한 사람들을 그렸다. 그는 “나의 눈은 태어날 때부터 추한 것을 지우도록 되어 있다.”라고 말했으며, 작가이자 미술품 컬렉터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뒤피의 작품, 그것은 쾌락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잭슨 폴록. <구성 Composition>. 44.5x65.4. Acrylic on unprimed canvas. c.1938-41

  

  

클로드 모네. <베퇴이유로 가는 길 The Road to Vétheui>. 59.4x72.7. Oil on canvas. 1879

  

  

- FEEL 향기로운 추상

20세기 전반부터 발전한 추상화는 전통적으로 이어온 현실 묘사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에 관한 기대와 혼란을 직관적이고,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대상을 해체하고, 점, 선, 면, 색채로 화가 자신의 내면에서 끌어올린 이미지를 캔버스에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번 섹션에서는 1900년대 중반부터 비교적 최근 작품까지 만날 수 있다.

마루에 캔버스를 펴고, 그림물감을 쏟으며 그리는 ‘드리핑 페인팅’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잭슨 폴락의 초기작 <구성>과 그와 함께 높은 평가를 받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던컨 필립스는 1950년대부터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에 빠졌다. 필립스컬렉션에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만을 위한 ‘로스코의 방’도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작품 한 점이 전시되었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김환기의 작품<27-11-70>도 볼 수 있다. 그는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를 되뇌며, 캔버스에 수없이 많은 점을 찍었다고 한다. ‘저녁에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로 시작하는 김광섭의 시는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끝난다.

  

  

전시관람 TIP

작품 보호를 위해 전시장 곳곳에서 매서운 추위를 느낄 수 있으니 겉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휴관일 없이 계속된다. 관람 시간은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일곱 시까지며, 매주 수요일은 오후 아홉 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대전시립미술관 | 대전 서구 만년동 396 | 042.483.3763


이수연 사진제공 대전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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