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8호] 청도 삼평리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 전국순회

“밀양도 가고, 강원도도 가고, 서울 국회도 간다. 안 가는데 천지 읎다.”
일흔이 훌쩍 넘은 ‘할매’들이 전국 투쟁 현장을 돌고 있다. 전라북도 전주 버스 투쟁 현장을 시작으로 강원도 홍천 골프장 건설 반대시위 현장, 서울에서 열린 녹색당 여성정치워크숍과 밀양기록프로젝트 ‘밀양을 살다.’ 전시회장을 거쳐 대전 대흥동에 할매들이 상륙했다. 7월 18일 금요일 대전 중구 대흥동 ‘대전평화여성회’ 사무실에서 ‘청도 삼평리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에서 반대운동을 하는 네 명의 할머니들을 만났다.
345kV 송전탑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는 밀양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2009년부터 청도군 각북면과 풍각면에 속한 작은 마을 이곳저곳에 송전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신고리 원전에서 생성한 전력을 이송하기 위해서인데, 현재 청도군에 서른아홉 개 송전탑이 있고 그중 일곱 개가 삼평리에 서 있다.  

신고리 원전에서 생성한 전력은 밀양에 세운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를 통해 경상남도 창녕군에 있는 북경남변전소로 이송한다. 이송한 전력을 변전소에서 345kV로 감압한 뒤 두 개 경로로 나눠 다시 이송하는데 그중 한 경로가 삼평리 마을을 지난다.

삼평리 마을에 서 있는 일곱 개 송전탑 중 마을을 관통하는 송전탑은 세 개, 22호~24호기이다. 이미 22호기와 24호기는 공사가 완료됐고 마지막 남은 23호기도 공사가 거의 진행된 상황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제출된 주민의견서와 2006년 ‘했었다는’ 유령 같은 주민설명회는 3년이 지난 2009년에서야 알게 됐다. 그때부터 할매들은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청도 삼평리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를 결성한게 작년이에요. 2009년부터 5년 동안 청도군에 서른아홉 개 송전탑이 세워졌는데 마을 주민 말고는 아무도 몰랐죠. 대책위가 없는 5년 동안 할머니들 홀로 반대 운동을 벌이신 거예요.”

대구환경운동연합, 청도 삼평리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 이보나 상황실장은 23호기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과 현재 삼평리 상황을 차분히 설명했다.

“6월 11일 밀양 행정대집행이 끝나고 한전에서 삼양리 송전탑 건설 대체집행을 신청했어요. 7월 25일 이와 관련한 재판이 있는데, 재판에서 한전이 승소하면 바로 23호기 송전탑 공사를 시작할 거예요. 23호기가 95% 정도 지어졌어요. 거의 완성된 거나 다름없죠. 이런 삼평리 상황을 많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국 투쟁 현장을 방문해 삼평리 상황도 알리고 응원도 함께하기로 한 거예요.”

23호기 송전탑을 세우지 못하면 이미 지은 서른아홉 개 송전탑은 무용지물이 된다. 단 한 대이지만 삼평리 할머니들에게 이 한 대는 매우 중요하다.

  

  

삼평리와 할머니

현재 청도 삼평리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에서 반대 운동을 벌이는 할머니는 총 열 명. 그중 네 명이 대전을 방문했다. 멍멍트리오의 신 나는 오프닝 공연이 끝나고 이번 만남을 성사시킨 산호여인숙 서은덕 씨가 할머니 네 명을 소개했다. 자글자글 주름이 가득한 얼굴, 가슴팍에 할매 슈퍼우먼을 달고 할머니 네 명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말이 없던 할머니들은 어색함이 풀리자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무 살에 시집와가 수십 년을 살았던 곳 아입니꺼. 그동안 일군 논이며 밭이며 전부 못쓰게 안됐습니꺼. 등치 산만한 아들이 와가 다치는지도 모리고 잡아끄는데. 아프다고 노라꼬 해도 들은 척도 안 해예. 우리 다 죽을 뻔 했슴니더. 경찰은 보고도 몬 본 척 도와주지도 않고. 한전 직원들은 하는 말마다 다 거짓깔이고. 포크리 밑에 드러누버삐고 캤는데도 소용이 없데요. 얼매나 속이 답답했는지,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더는 나지 않는 눈물 대신 할머니들은 웃으며 이야기를 전한다. 피해가 없다는 말에 그런 줄만 알았다. 한전 직원이 준 음식을 다 먹어 버렸다며 마치 제 탓 인양 ‘먹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하며 말을 이었다.

2~3인용 텐트를 도로가에 치고 돌아가며 밤을 지새운 이야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한전 직원과 무서운 포크레인 때문에 늘 노심초사했던 하루하루. 계속되는 이야기에 많은 이가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할머니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우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기는 도시에서 다 쓰는데 왜 조용히 살고 있던 우리가 그 피해를 다 입어야 하냐는 할머니의 말. 무책임한 우리 모습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7월 22일 구미 스타케미칼 투쟁 현장을 마지막으로 삼평리 할머니의 전국 순회는 막을 내린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해볼 데까지 해봐야 안 하겠습니까?”


박한슬 사진 정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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