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8호] 한남대학교 예술문화학과 팽재훈 학생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이 시나리오 한번 읽어 보실래요?”라며 그는 노트북을 들이밀었다. 한남대학교 예술문화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팽재훈 학생을 처음 만난 건 지난 6월 대전·충남 독립영화상영회장에서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영화를 찍었다는 그는 그 후로 한참을 돌아 겨우 제 길을 찾았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교 때부터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없었다. 막연히 영화가 좋았고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어린 소년은 자신의 꿈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두려웠고, 용기가 없었다. 그는 정해진 수순을 밟듯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대학은 왜 가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수업시간에는 주로 만화책을 보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학교를 빠져나와 문화동, 대흥동 일대를 무작정 걸었다.

“고2 야간자율학습 시간이었어요. 자다 깼는데 저 빼고 다들 뭔가 열심히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뭐든 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기보다 이미지를 그린 거죠. 머릿속에 담아뒀던 장면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그렸어요.”

수능시험이 끝나고 이모가 주신 15만 원으로 작은 캠코더를 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린 이미지를 하나씩 영상으로 구현해 나갔다. 두 달에 걸쳐 7분짜리 단편영화를 완성했다. 그렇게 그의 첫 영화 <나는 다니고 싶다.>가 탄생했다. 영화를 ‘인디포럼’이라는 독립영화제에 출품했다. 운 좋게 ‘신작전’ 부문에 진출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인디포럼 ‘신작전’ 진출은 3년 동안 방황하며 힘들어했던 저에게 주는 선물이었어요. 영화를 놓지 않게 한 계기이기도 하고요.”

그는 영화과에 진학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대전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에 진학했다.

  

  

영화를 만들다

방황의 시간은 계속됐다. 대전대학교에서 생활은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났다. 수업도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때 대전독립영화협회 민병훈 사무국장을 만났다. 조금씩 영화를 접하기 시작했다. 군 제대 후에는 비영리 문화예술 매개공간 ‘Space SSEE’에서 전시도 돕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 수업 대신 대전 시민아카데미에서 인문학 수업을 들으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

부모님과 많은 갈등 끝에 한남대학교 예술문화학과 편입을 허락받아 올해 3월부터 한남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이제 겨우 시작이에요. 여전히 불안해요. 예술문화학과지 영화과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저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거예요.”

이렇게 열심히 학교생활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그는 말한다. 1학기 성적도 제법 잘 나왔다. 그는 그렇게 한 걸음씩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시나리오는 꾸준히 쓰고 있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일곱 개쯤 돼요. 마음에 드는 건 없지만요(웃음). 매주 만나는 친구들이 있는데 같이 영화보고 이야기하고 그래요. 두 친구도 영화과는 아닌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해요. 그래서 이야기가 더 잘 통하나 봐요.”

두 친구와 함께 공동제작으로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함께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하며 재미있게 단편 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그는 말한다.

“대전에 영화 만드는 젊은 친구들이 없어요. 그 점이 항상 아쉬워요.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고 부딪치며 얻을 수 있는 게 많을 텐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뭔가 결과물이 있어야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모일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친구들과 공동제작을 계획하는 거에요.”

영화를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긴 시간. 그는 한참을 돌아 겨우 제 길을 찾았다.

“두려움이 또 다시 제 앞을 막아도 이제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영화 계속 해야죠.”


글 사진 박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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