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88호] 도어북스 박지선 대표
저도 처음엔 가게를 열고, 무언가를 판매하는 공간을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2년 전쯤에 월간 토마토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퇴직연금 상담을 받는데, “나중에 뭐하고 싶으냐?”라는 질문을 받았거든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곰곰이 생각하는데, 그냥…. 50~60대일 때 동네에서 작은 서점을 하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토마토에 다니기 전까지는 문화예술 활동이 대전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거든요. 보통 문화예술 쪽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보면 대게 지역에 남지 않고 서울을 바라보고 가잖아요.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남아서 하는 것을 보니 기특한 마음도 들고, 이런 친구들이 모여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처음엔 그냥 막연하기만 했죠.
그러다 문화예술교육사 수업을 들었어요. 일하면서 품었던 꿈을, 배우면서 구체화한 것 같아요. 친오빠와 함께 그 수업을 들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가 그래도 예술을 통해서 우리가 이렇게 곧게 자라지 않았느냐는 이야기였어요. 어릴 때부터 성당에 다니면서 연극을 하고, 악기 다루는 것을 배웠거든요. 수업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성당에서 보고, 배웠던 예술이 자라면서 제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더라고요. 그럼요. 예술의 힘을 믿죠. 내가 만드는 공간에서도 많은 사람이 그런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힘든 게 ‘결정’이었어요. 공간을 결정하는 것부터 안에 들여놓을 소품 하나하나까지…. 일단 공간의 성격은 정한 후였어요. ‘독립출판물 서점’이었죠. 독립출판물을 가지고, 서점만 하는 곳이 전국에 몇 곳 없더라고요. 그런 공간이 하나 있으면 했어요. 꾸준히 독립출판물을 발행하는 사람들이 판매할 곳이 더 늘면, 좋잖아요. 독립출판을 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여건도 맞고, 마음에도 드는 곳을 찾았는데, 준비하면서도 계속 오락가락했어요. ‘내가 이걸 해도 되나?’, ‘할 수 있을까?’, 이런 유의 질문을 끊임없이 했죠. 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참 신기해요. 좌절하려는 순간마다 누군가 도와줬어요. 일단 부모님이 믿어주셨어요. 서울에 있는 오빠도 주말마다 내려와서 도와줬고요. 여동생은 이곳을 함께 운영해주고요. 또 동네 분들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주변 상가 대부분 20~30년 정도 꾸준히 장사해온 분들이요. 젊은 사람이 들어와서 뭘 한다고 하니까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마음을 써주세요. 저희 간판 달아주셨던 사장님도 그렇고, 열쇠 해주신 사장님도 그렇고, 고마운 분이 많았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 이 공간이 저 혼자 만든 곳이 아니더라고요. 많은 분이 도와주셨고, 그래서 만들 수 있었던 공간이었어요.
단순히 서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쉬고, 영감을 받았으면 해요. 자라면서 제가 받았던 영향이나 공간을 마련하면서 받은 도움을 많이 돌려드리고 싶어요.
이 동네 사는 아이인 것 같은데, 매일 이 앞에 와서 빼꼼 인사를 하고 가요. 아직 한 번도 들어오지는 않았고요. 누가 쳐다보고 있지 않아도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지나가거든요. 그런데 그 아이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었어요. 그 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이 공간에 들어오는 거예요. 책도 한 번씩 들춰보다 나가고. 하나씩 이 공간에서 추억을 쌓는 거예요. 그렇게 한 번씩 오던 이곳에 어떤 날부터인가 발길이 뜸해지는데, 그러다 몇십 년이 지난 후에 좋은 어른이 돼서 다시 오는 거죠. 저는 그때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고요. 그 아이가 다시 와서 예전에 그 꼬마라고 인사하는 거예요. 뿌듯할 것 같아요. 오래 하고 싶어요. 여기에서 오래 있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