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2호] 살기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산거지_서구가장동들말1,2길

가장동에는 옛날 ‘들말’과 ‘대추마루’라는 마을이 있었다. 대추마루는 들말 앞으로 펼쳐진 마을로 대추나무가 무성했다 하여 그리 불렀다. 들말은 ‘들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지금 가장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곳이다. 들말은 과거 넓은 들에서 생산한 곡식을 창고에 많이 가둔 마을이라는 뜻으로 ‘가둔이’라고도 불렀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며 더할 가(加) 자에 감출 장(藏) 자를 써서 ‘가장골’이라는 지명이 되었다 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조선 초기부터 가장동리(佳壯洞里)라고 하여 한자표기를 달리 하였고, 그 지명이 지금에 이른다. 한편 과거 ‘들말’이었던 곳에는 지금도 도로명으로 ‘들말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가장네거리를 기준으로 남쪽으로 삼각형 모양을 한 블록이며, 동네는 들말1길에서 들말6길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있다. 가장네거리 정류장에 내려서 바로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들말2길이다. 

                      

                
여름이 온 들말

“쏴아아아”
큰 길을 등지고 들말2길 골목으로 접어들자 떼 지어 우는 매미 소리가 귓청을 세게 울린다. 누군가에게는 귀찮을지도 모르는 그 소리가 한여름의 절정을 알리는 반가운 신호 같다. ‘넓은 들이라면 역시 여름이 제철이지 않을까.’ 넉넉했던 들의 흔적이 남아있을 리야 없지만, 이 마을이 간직했던 넉넉한 기운이라도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기대감과 함께 마을에 들어섰다. 


들말2길은 가장동의 남쪽, 변동의 경계까지 이어져 있다. 골목을 죽 따라가다 보면 들말공원을 끼고 돌아 들말1길과 들말4길이 실타래처럼 이어진다. 골목 초입에는 드문드문 작은 식당, 어린이집, 오래된 미용실, 문 닫은 세탁소 등이 자리 잡았다. 한가로운 오전 시간의 정적을 깨고 보리밥집 오토바이가 힘차게 골목을 떠나고, 족히 20년은 되었을 법한 미용실은 아침 일찍 문을 활짝 열어 둔 채 주인은 온데간데 없다. 그 옆 어린이집 담 너머에서는 꼬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온다. 


길의 중간쯤 마을의 구심점인 듯 자리잡은 들말공원을 중심으로, 들말1길부터 들말6길까지가 사방으로 연결된 모양이다. 동네는 대체적으로 빈 데 없이 주택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고, 들말공원은 작지만 단정하게 펼쳐져 있다. 부족하지 않을 만큼 늘어선 나무 그늘 밑에는 땀을 식히고 있는 주민 두어 명이 보인다. 그 옆, 공원 한 편 들말4길과 접한 곳에 ‘가장들말경로당’이 공원을 마당 삼아 자리 잡았다. 

                       

                      

맨 들판이고 논배미였지

“여기는 전체가 다 들말이었어. 그냥 다 들말이었어. 여기가 다 논이었고, 그때도 살기 좋았어. 사람도 많이 살았지. 내가 열여덟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살았으니까. 다 죽고 내가 여기 제일 고참이여.”
경로당에는 할머니 예닐곱 명이 서로 이렇다 할 대화도 없이 흩어져 앉았다. 그중 동네에서 제일 고참이라는 89세 김씨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살기 좋아서 계속 살았다기 보다는 그냥 살게 돼서 있은 거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는 몇 마디를 하고선 달리 할 말도 없다는 듯 입을 닫는다. 한 편 건너편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81세 박씨 할머니가 “옛날엔 사람이 별로 없었지.”라며 김씨 할머니의 말을 고친다.
“어려서부터 여기서 컸어. 맨 들판이고 논배미였지. 이짝저짝으로는 다 개울이었고. 집은 많지도 않고 초가집만 몇 채 있었어. 개와집도 없었어. 이렇게 집이 많이 생긴지는 얼마 안 됐어. 가장동은 시가 되면서 붙은 이름이고 여기는 들말이었어. 그때나 지금이나 조용하고 살기는 좋아.”


자세한 얘기를 들으려 바짝 붙어 앉아 질문을 던지자 박씨 할머니는 “옛날 노인들이나 알지 지금은 ‘신식 노인’들만 남아서 잘 몰라.”라며 손을 내젓는다.
“할아버지들한테 물어봐. 우리는 아는 것도 없고 말을 할 줄 몰라.”

                 

                    

대전에서 상당히 시내에 속했죠

가장들말경로당 앞쪽으로 난 삼거리에는 아람슈퍼와 대지슈퍼가 비스듬하게 마주보고 섰다. 슈퍼 앞으로 놓인 평상에 앉아 있자니 어디선가 막걸리 냄새가 물씬 풍긴다. ‘대전원막걸리’를 컨테이너 한가득 실은 트럭이 삼거리에 차를 멈추고, 슈퍼 안으로 분주히 막걸리 상자를 나른다. 이 근방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대지슈퍼는 지금의 주인 아주머니가 1988년부터 인수받아 운영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서울에서 살다 처음 대전에 오게 된 때를 회상했다. “처음 대전역에 내렸더니 광장이 되게 넓고 트여서 ‘와 좋다’ 했죠. 버스에 앉을 자리도 많았고요. 서울은 어디나 복잡한데 정말 살기 좋다 싶었죠.”


주인 아주머니는 천동에 살다 1988년도에 가장동에 집을 사서 이사를 왔다. 둔산에 신도시가 생기기 전에는 이곳이 아주 시내에 속하는 소위 ‘뜨는 동네’였다는 게 주인 아주머니의 설명이다. 둔산동이 흥한 이후로는 변두리가 됐지만 당시로는 비싼 시세를 치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도 오랫동안 대대로 자리잡고 사는 사람이 많았어요. 박씨, 노씨… 집성촌으로 터 잡고 모여 사는 사람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텃세도 좀 있었는데, 곧 적응하고 살았죠. 지금도 오래 터 잡고 산 사람이 더 많아요. 거의 다 연세 드신 분들이에요. 여기가 아파트촌보다는 정도 넘치고 좋아요. 사람 사는 동네 같아요.”


대부분 낮은 주택으로 이루어진 들말 동네에서 고개를 들면, 건너편 동네에 삐죽이 솟은 아파트가 보인다. 북쪽으로는 래미안아파트가, 서쪽으로는 맑은아침아파트가 둘러싼다. ‘도마변동1주택재개발’ 구역에 속하는 들말 동네도 머지 않아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내년 봄쯤에는 사업 시행이 떨어질 거예요. 그때 되면 우리도 분양권 사서 이사해야죠.”
슈퍼를 나와 골목을 돌아들자, ’사업시행 인허가절차를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리는 현수막이 골목길을 가로질러 펄럭이고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주택가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적이 드문 고요한 풍경 속에서도 정다움이 느껴지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무척이나 쾌청한 날씨 덕분이었을까. 혹은 정말 여름이 제철인 ‘들말’이어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 사진 엄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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