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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2호] 그냥 거기 있었다 _ 성인용품점 방문 후기
하나, 둘, 셋. 심호흡하고 문을 열었다. 빨간 셀로판 너머는 어두웠다. 자그마한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자그마한 TV보다 더 작은 벽걸이 에어컨이 털털 소리를 내며 힘없이 돌아갔다. 간이침대인지 소파인지 모를 곳에 누워 뉴스를 보던 아저씨가 급히 모자를 눌러쓰고 바지를 추켜올리며 일어섰다. 호기심과 의심이 반쯤 섞인 눈빛이었다. 그러면서도 실내조명은 켜줬다. 그제야 실내에 진열된 성인용품이 눈에 들어왔다. 남성 성기를 본떠 만든 여성자위기구가 먼저 보였다. 그 디테일한 묘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취재하러 왔다는 말에 아저씨는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하루에 많으면 열 명, 평균 너덧 명이 성인용품 사러 온다고 했다. 가뜩이나 여름은 비수기여서 손님 한 명이 아쉬운 마당에 갑작스러운 기자의 방문이 반가울 리 없었다. 그럼에도 아저씨는 찬찬히 둘러보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무심하지만 적의는 아니었다.
성인용품점 내부는 한눈에 다 들어올 만큼 좁았다. 벽을 따라 선반이 쭉 늘어서 있고, 그 위에 다양한 종류의 성인용품이 있었다. 모양과 크기와 재질과 그걸 감싸는 포장지의 색깔과 디자인에서 편차가 컸다. 어수선하면서 화려했다. 그럼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툭툭 가리키며 그것들을 분류해 줬다.
아저씨 설명에 따르면 성인용품은 크게 남성용품과 여성용품으로 나뉘었다. 매장 내 구성과 매출 비율은 대략 3대 7이라고 했다. 실제로 남성용품은 한쪽 구석에만 있을 뿐, 선반 대부분은 여성자위기구와 란제리가 차지했다.
아저씨는 남성용품과 여성용품이 어떻게 다른지도 설명해 줬다. 우선 남성용품은 콘돔과 링, 자위기구로 나뉜다. 링은 쉽게 설명해 남성 성기에 끼우는 반지다. 쇠, 금, 실리콘은 물론, 낙타 눈썹으로도 만든다. 남성자위기구는 보통 실리콘으로 만든다. 간단한 핸드형부터 ‘리얼돌’이라고 부르는 것까지 그 종류가 굉장히 다양했다. 리얼돌은 워낙 고가여서 주문이 들어오면 가져온단다.
여성용품은 젤, 자위기구, 란제리 및 코스튬으로 나뉜다. 아저씨가 말하는 성인용품점의 핵심 아이템은 여성자위기구였다. 성인용품점 매출의 절대적인 역할을 차지한단다. 여성자위기구는 진동형과 삽입형, 복합형으로 나뉘는데 그 역할에 따라 딜도, 페어리, 쥐스팟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리는 듯했다. 모양은 대체로 남성 성기와 닮아 있었다.
이제 그만하자며 아저씨는 간이침대인지 소파인지 모를 곳으로 돌아가 앉았다. 나이도 이름도 묻지 말라고 했다. 60대 초반이라는 말만 했다. 자신도 젊었을 때는 직장생활을 했었다고 덧붙였다. IMF가 터지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단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7년 전에 성인용품점을 시작했다. 왜 하필 성인용품점이었는지는 묻지 말라고 했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위해 장사하는 건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 하느냐고 되물었다.
꿈
며칠 뒤, 일반적인 성인용품점과는 꽤 다른 성인용품점을 발견했다. 외관도 셀로판으로 가려놓지 않고, 내부 인테리어도 펜시숍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매장 중앙에는 커다란 곰 인형이 앉아 있었다. 분위기는 분명 다른데 판매하는 용품의 종류나 내부 구조는 비슷했다. 다만, 디퓨저와 향수를 팔고 있어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젊은 청년이 반겼다. 스물여덟 살이라고 했다. 전략기획본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청년은 성인용품점이라는 말 대신 성인멀티숍이라는 말을 썼다. 성인용품이라는 말 대신 섹스토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이 요즘의 트렌드라고 했다. 대전에 약 50곳의 성인용품점이 있는데 이 중 두어 곳이 자신의 매장처럼 오픈돼 있으며, 전국적으로도 오픈형 성인용품점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청년에 따르면 성인용품점 찾는 이용객 성비는 남성 7, 여성 3이었다. 연령대는 남성 40~60대, 여성 40~50대가 많단다. 매장이 오픈형이다 보니 최근에는 20~30대나 커플들도 종종 찾는다고 했다. 이용객 중 남성이 많은 이유와 20~30대 이용객이 많지 않은 이유에 관해 청년은 아저씨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보조기구’라는 개념이다. 인간의 성적 욕망은 끝이 없는데 반해 인간의 몸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보조기구를 쓰는 거고,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주로 남성, 그중에서 40~60대라는 거다. 남성들이 여성자위기구를 사 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했다. 성인용품점의 본질과 트렌드에 관해 이야기하는 청년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청년은 대한민국의 성 문화가 과도기에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존에는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는데, 각종 매체를 통해 서구의 개방적인 성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거다. 이런 시기에 성인용품점에 관한 인식과 문화가 음지에 머물러 있으면 굳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청년은 성인용품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유쾌한 성 문화를 주도해보고 싶다는 말도 했다.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짧은후기
인간은 섹스를 한다. 먹고 자고 싸는 것만큼이나 인간에게 성욕은 기본적인 욕구다.
먹을 걸 사고팔기 위해 마트나 음식점이 있는 것처럼 성인용품점도 우리의 원활한 섹스 라이프를 위해 그냥 거기 있는 거다. 동네 조만한 슈퍼마켓 주인이 가족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이나 성인용품점 아저씨도 가장으로서 역할에 충실해 보였다.
음식점도 원산지를 속이거나 위생상 문제로 관련법을 어기면 처벌받는다. 법적으로 문제만 없다면 일식을 팔든 중식을 팔든 자유다. 성인용품점도 그렇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성인용품점 관련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학교보건법 제6조(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에서의 금지행위 등)’에 따라 학교 경계선이나 학교설립예정지 경계선으로부터 200m 이내에서 성인용품 판매는 금지한다. 두 번째는 ‘약사법 제5장 의약품등의 제조 및 수입 등 제3절 의약품등의 판매업’ 등에 따라 성인용품점의 유사 발기부전치료제 판매를 금지한다. 이런 법만 잘 지킨다면 성인용품점도 문제될 건 없다.
성인용품점을 취재하기 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엄숙주의에 관해 몇 마디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고백하자면 가벼운 호기심도 반쯤 있었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며 여러 성인용품점에서 취재를 거절당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방어적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그 또한 선입견이었다. 그들은 그저 무책임한 호기심이 불쾌했던 거 같다. 기자의 섣부른 가치판단이나 선입견, 무책임한 호기심과 무관하게 성인용품점은 충분히 치열하고 진지했다.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고, 누군가에겐 그 자체로 꿈인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