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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1호] 편안한 낯섦 아트스페이스 장
지난 5월 21일, 시민미디어마당사회적협동조합이 주최한 대흥동 일일 취재 프로그램인 ‘기자인사이드-대흥동을 읽다’가 진행됐다. 프로그램 참가자 기사 중 한 편을 월간 토마토에 싣는다. 시민미디어마당은 미디어정책연구, 미디어 교육을 통해 시민이 중심이 된 미디어생태계를 추구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우연히 가게 된 대흥동 ‘아트스페이스 장’.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초록색 대문이 있는 70년대식 주택이 보인다. 이곳이 아트스페이스 장임을 알리는 특별한 입구는 없었다.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자 함께 간 친구는 괜찮다며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고 나서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마당을 지나 미닫이 현관문을 여니 집 안에서 하얀색 진돗개가 갑자기 나타나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고 건물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저 이곳이 낯설었다. 내가 처음으로 본 아트스페이스 장이다.
문화예술확장공간,
아트스페이스 장(art space 長)
2014년에 문을 연 아트스페이스 장은 시각 예술 창작·전시 공간이자 회의장소 대관, 독립 영화 상영 등을 진행하는 문화 예술 확장 공간이다. 원래는 주거공간이었던 곳을 김경량 관장이 수리해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재생시켰다. 아트스페이스 장의 ‘장’은 마당 장(場) 자로, 마당처럼 열려 있는 공간을 뜻한다. 사람들이 마당에서 문화 예술 활동을 자유롭게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시각예술, 모임, 영화상영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만들어진 아트스페이스 장은 가정집 그대로의 형태다. 초기의 이 공간은 내부 수리를 거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고 후미진 곳에 있어 위치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경량 관장은 가능성을 읽어 냈다.
“그 당시에는 큰 규모의 집을 얻기에 자급력이 없었어요. 그러던 중 이 공간이 인지도가 떨어지고 낡은 집이어도 창작 공간으로는 괜찮을 거라 판단했죠. 또 예술적인 재생을 원했기에 이곳을 선택했어요.”
아트스페이스 장은 2층 슬래브 가옥에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통합되어 뼈대는 양식이지만 내부와 가구는 전형적인 한옥의 구조를 띠고 있다. 내부는 옛날식 방 세 개와 현대화된 부엌과 욕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욕실은 좁고 욕조가 없었다. 2층의 탁 트인 옥상과 70년대 한국의 생활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집안 구조는 편안한 인상을 준다.
내부에서 김경량 관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트스페이스 장에 들어설 때 처음 인사를 건넸던 진돗개가 다가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이름은 씨알이에요. 유영모, 함석헌의 씨알 사상에서 이름을 땄어요. 씨알이는 아트스페이스 장의 마스코트나 다름없어요. 순하고 착한 편이라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큰 개를 묶어 두지 않으니까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본의 아니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하죠. 씨알이를 키우시면서 ‘미안해요, 죄송해요.’를 입에 달고 살아요.”
아트스페이스 장에서 대흥동을 읽다
아트스페이스 장은 이곳이 위치한 대흥동과도 관련이 있었다. 김경량 관장은 공간 이야기뿐만 아니라 대흥동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학창시절 화랑을 돌아다니며 도장을 찍는 미술 숙제를 하기 위해서 대흥동에 처음 왔었어요. 80년대 대흥동은 대전의 중심으로, 사람들은 ‘시내’라고 불렀죠. 90년대가 되면서 유명한 재즈카페나 멋있는 모던 카페가 즐비하면서 대흥동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대흥동 카페를 모티브로 한 사업을 하기 위해 서울에서도 찾아올 정도였죠. 그렇게 젊은 사람들이 주가 되던 대흥동이 어느새 구도심이 되고, 자본과 사람들이 둔산동으로 집중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거죠. 그렇게 대흥동이 젊은 사람들이 오지 않는 곳이 되었어요. 사람들 머릿속에서 ‘대흥동은 시내다.’라는 개념 역시 사라졌고요. 그러면서 ‘대흥동은 옛날 집들,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이 지키고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새롭게 생겼어요.”
대흥동의 변화를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대흥동에서 아트스페이스 장을 운영하며 사람들이 문화 예술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경량 관장에게 인사를 하고 아트스페이스 장을 나오면서, 마치 연휴에 외갓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편안한 낯섦이 아트스페이스 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다.
아트스페이스 장은 문화예술 그리고 대흥동의 가치를 온몸으로 지키려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기를 기다리는 곳이었다.
글 장은경, 전영기 사진 성수진
아트스페이스 장 대전 중구 대흥로121번길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