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1호] 둥지 튼 왜가리 옹색한 나무 위에

머리글

선화초등학교에 자라는 히말라야시다는 유독 키가 컸다. 매일 보는 대전여자중학교 운동장의 히말라야시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지치기를 해서 관리해 줬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이렇게 키만 컸어요. 자칫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넘어갈 수도 있어요.”

                 
옥상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 학교 관계자가 말했다. 히말라야시다는 선화초등학교 본관 앞에 일렬로 늘어서서 자란다. 초등학생처럼 빼짝 말라 키만 껑충하다. 그 마른 몸으로 여러 새 식구까지 품고 있으니 피곤함이 더하다. 본관 옥상에 올라서니 새 식구들이 보인다. 지난 4~5월 알을 깨고 나온 새끼들은 제법 컸다. 옅은 깃털 색이 아니었다면 새끼인 줄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다. 모두 한곳을 바라보며 목을 죽 빼고 있다. 먹이를 구하러 간 어미를 기다리고 있음이 틀림없다. 대전천 쪽에서 날아온 왜가리가 거친 날개짓을 하며 둥지 주위를 선회한다. 새끼들은 소리를 질러 어미를 부른다.

                      
“작년에도 두세 마리 본 것 같기는 한데, 새끼를 낳거나 하지 않아서 별 관심이 없었지요. 올해는 너무 많이 날아와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나무 맨 꼭대기에는 푸른빛과 회색빛이 감도는 왜가리가 주로 둥지를 틀었고 그 아래로 흰색의 쇠백로가 둥지를 틀었다. 개체수는 백로보다 왜가리가 절대적으로 많다. 터줏대감일 까치는 나무 가지 사이를 총총 건너다니며 호들갑스런 모습이다. 새로운 이웃이 반가운 것인지, 낯선 풍경이 영 불편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때가 되어 왜가리와 백로가 모두 떠나 버리면 까치도 많이 헛헛할지 모르겠다.


가까이에서 본 왜가리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기괴한 울음소리를 냈다. 옥상에서 내려가 나무 밑으로 가 보았다. 시장 어물전에서 맡았던 비릿한 냄새가 났고 나무 아래에는 떨어뜨린 것인지 버린 것인지 모를 물고기가 수북하다. 생각보다 왜가리와 쇠백로가 물고 온 물고기가 제법 크다.

올봄에 선화초등학교(교장 이민)에 날아든 왜가리와 쇠백로 등 백로류는 모두 60마리 정도였다. 나무와 학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였다. 결국 학교 측에서 선택한 방법은 전지작업이었다. 적당한 전지작업을 통해 개체수를 인위적으로 줄였다. 추측건대 남선공원을 비롯한 다른 서식지가 인위적으로 차단되면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전천 옆 선화초등학교는 좋은 선택지였다. 옹색한 나무 몇 그루뿐이지만 그마저도 아쉬운 상황이었음에 틀림없다.


백로류가 서식하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해 민원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떨어진 먹이와 새똥이 풍기는 좋지 않은 냄새와 소음, 나무 생장에 미치는 영향 등. 이 때문에 아예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나무를 베거나 짧게 전지작업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서식지를 없앤다.


선화초등학교는 이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전충남녹색연합(공동대표 이동규, 김은정)과 ‘백로류 서식처 보호 및 생태교육’ 협약을 지난 6월 8일 체결했다. 6월 14일에는 이 학교 5학년과 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생태교육을 진행했다.
“저희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도 그렇게 가까이에서 자세히 왜가리나 백로를 관찰한 적이 없잖아요. 신기해하면서 재밌어하기도 하고요. 고개를 들어 나무 위에 새를 쳐다보는 횟수가 아무래도 늘었지요.”


이 학교 송해선 교감이 전했다. 이제 문제는 7~8월이다. 새끼도 완전히 자라 이소를 준비하는 시기란다. 먹이 활동도 왕성해지고 그만큼 소리도 더 지를 것이 분명하다. 냄새도 심해지고 똥도 많이 싼다.
그렇게 이소 준비를 하다가 9월이면 베트남과 홍콩 등으로 날아간단다. 다행스럽게도 학교는 방학이라서 아이들이 겪는 불편은 좀 덜할 수 있다. 근데 이 공간에는 대전동부교육지원청이 함께 있다. 그 시기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이런저런 불편을 끼칠 수밖에 없다.


“동부교육지원청에 백로류 보호 및 서식처 보전이 갖는 가치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고 해요. 앞으로 후속 작업을 통해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지요.”
대전충남녹색연합 김성중 팀장이 말했다. 내년에 왜가리와 백로가 다시 선화초등학교에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단, 불편한 것은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왜가리와 쇠백로가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아예 나무를 벌목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올 가을 즈음에 전지작업을 통해서 한 나무에 두 가구 정도가 살 수 있도록 개체수를 조절하려고 해요.”
이 학교 송해선 교감이 밝힌 대책이다. 가구 수로는 10여 가구가 될 것이고 개체 수로는 30마리 안쪽이다. 아울러 올해처럼 대전충남녹색연합과 함께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런 결정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대전충남녹색연합에 따르면 대전 3대 하천은 환경이 무척 좋아졌고 백로류가 찾아드는 것 역시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이들이 서식할 수 있는 서식처가 점점 사라지면서 전체적인 생태계 균형이 무너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도심 속 숲에 이들이 둥지를 틀면서 민원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벌목이라는 극단적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청주 서원대학도 올봄에 같은 문제를 겪었지만 청주시, 환경단체와 협의체를 구성해 서식처를 보호하면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고 한다.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고 방음시설을 강화하고 아예 ‘백로생태공원 조성’ 논의도 오가는 모양이다.


백로류가 떠돌이 신세가 되지 않도록 하천, 숲,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생태환경을 만들어 주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대전충남녹색연합과 선화초등학교의 생각이다.
선화초등학교는 대표적인 도심 속 작은 학교다. 한때 무척 컸던 학교지만 지금은 학생수가 많이 줄어 올해 3월 기준, 학년당 두 학급씩 모두 150여 명이 공부한다. 남는 공간에는 동부교육지원청이 입주해 함께 공간을 사용한다. 그리고 왜가리와 쇠백로도 공간에 비집고 들어앉았다. 삶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빼짝 마르고 키만 껑충한 나무에 새끼를 낳고 기를 둥지를 틀 때는 녀석들도 고민이 많았을 게다.


이 도시에 결핍은 인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선화초등학교에 날아든 백로류는 우리에게 이 도시가 지닌 ‘결핍’을 인식하고 이제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도록 질문을 던진 것인지도 모른다. 


글 사진 이름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