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1호] 조금씩 분명히 바뀌어야 할 문제

우리 사회에 ‘문제’라는 명사를 붙여 해결 지점을 찾으려고 담론을 형성하는 계층이 몇 있다. ‘노인’, ‘청년’, ‘외국인’, ‘청소년’ 등이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특정 시기에 좀 더 집중적으로 논의가 펼쳐지는 계층이 다르다.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도록 단절 지점을 형성하며 문제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관심, 언론의 관심에 따라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경향성을 보이기는 한다. 그런 측면에서 ‘청소년’은 어느 순간, 관심의 두께가 무척 엷어진 느낌이다. 간혹 미디어에서 성적을 비관하거나 심한 따돌림으로 목숨을 끊으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반짝 관심이 쏠리기는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누가 뭐래도 현재 우리 사회에 핵심 담론은 ‘청년 문제’다. ‘노인 문제’는 선거철에 반짝 일었다가 금세 사그라든다. 청소년은 성장하며 청년이 된다. 청년에서 노인으로 성장하는 시간보다 무척 짧다. 그렇게 가까이에 놓인 청소년 문제를 검토하지 않고 청년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에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 대전청소년위캔센터 권부남 센터장을 만났다. 그러나 답답함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청소년이 처한 환경은 흔들어 놓기에는 너무나 견고했다. 우리 사회의 주류 가치 철학을 온몸으로 받아 내고 있는 계층이어서다.  - 편집자주 -

                                     

          

이용원 대전청소년위캔센터(이하 위캔센터) 개관 때부터 센터장을 맡으셨죠? 이제 막 1년이 지났습니다. 위캔센터도 지자체에서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청소년 시설인가요?
 

권부남 위캔센터 역시 청소년 수련관으로 분류되어 있어요. 청소년기본법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청소년시설을 설치·운영하여야 한다(제18조 1항).”라고 되어 있어요. 위캔센터는 그렇게 설치한 거고, 대전 YWCA가 위캔센터를 위탁운영하고 있어요.

이용원 청소년이라고 하면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가장 막막한 문제이기도 해요. 청년과 관련한 논의는 계속 떠오르는데 과거에 비해 청소년에 관한 논의는 오가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떤가요?

권부남 아무래도 청소년 문제는 현행 입시 문제와 크게 결부되어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깊이 들어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럼에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청소년기인 건 분명하죠. 흔히 이야기하는 ‘자아 정체감’이 생기는 시기니까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떠나서 청소년기에 자아정체감만 제대로 형성되면 청년 문제는 물론 다양한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봐요.

이용원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떠날 수 없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청소년이 마주한 문제는 대부분 우리 어른이 잘못 만들어 놓은 틀 안에 있는 문제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청소년은 철저하게 피해자인 것이고요.

권부남 그러니까 사회구조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맞죠. 그런데 정말 뿌리가 깊어요. 제가 좀 순진했던 건지도 모르지만, 이 사회가 성장하면 그런 문제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학 입시 문제를 비롯한 많은 관련 문제가요. 성숙을 동반한 성장인 거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문제가 더 강화되었죠. 더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조이고, 점점 고착화되어 가잖아요. 누구나 더 좋은 직업을 갖고 싶고, 많은 돈을 벌고 싶고, 사회적 역량이나 지위 같은 것들이 굳게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잖아요. 그게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최고 가치이기 때문에 모두 그걸 향해서 가는 거고요. 그런데 그것만이 사회를 성장시킬 수는 없다고 봐요.

이용원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가치의 문제인 듯한데요. 사회가 성장했을 뿐, 전혀 성숙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그렇다고 입시 문제가 구체적으로 양산되는 공교육 영역부터 바꿔야 한다는 얘기하는 건 좀 추상적이고 무책임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문제가 광범위하잖아요. 좀 더 작은 단위에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듯한데요.

권부남 작은 단위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지요. 의미 있는 활동도 꾸준히 벌이고요. 그런데 과거보다 활발한 것 같지는 않아요. 요즘에는 공교육 영역에서도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서 시행하잖아요. 자율학기제가 대표적일 수 있고요. 이것말고도 1인 한 동아리 가입하기나,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자원봉사활동 같은 경우요. 이런 것이 공교육 안에서 이루어지면서 성과나 의미도 있겠지만 오히려 민간 영역에서 일어나던 고민이나 활동이 위축되는  것 같아요. 우리도 청소년 시설을 운영하지만 정작 청소년을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우리 청소년은 정말 바빠요. 바쁘다는 것을 이 시대 우리 청소년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요. 몸만 바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없고요.

이용원 재미있네요. 위캔센터 같은 시설을 만드는 이유가 청소년이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잖아요. 시설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직업체험관이야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겠지만요. 그래서 저는 그런 시설이 별로 달갑지 않아요. 이 시대 청소년에게는 정말 ‘아지트’ 같은 공간이 필요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이렇게 큰 청소년 시설에서 청소년을 만날 수 없다는 건,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이 어떤 삶을 사는지 유추해 볼 수 있는 사례인 듯해요.

권부남 일단 학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없어요. 공부를 잘하든 하지 못하든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를 마치면 학원에 가요. 그게 아이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문화예요. 청년은 독립개체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데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족 전체를 설득해야 하거든요. 사실 요즘 청소년의 부모는 소위 말하는 배운 세대잖아요. 그래서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똑같아요. 여전히 우리 아이들의 최고 가치는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안정적으로 사는 거예요. 그 가치는 부모가 만들어 준 거고요. 앞서 이야기한 성장과 성숙에 관한 문제겠지요.

이용원 사실 구조는 어른들이 만든 거고, 청소년들은 그 시기에 선택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구조 안에 들어가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청소년 문제가 지닌 특징에 영향을 미치는 것 중에 하나가 ‘투표권 없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청년기에 접어들면 투표권이 생기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책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고 관련 법을 입안하는 국회에서 마냥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청년 투표율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잘 보여 주었고요. ‘투표권’마저 없으니 정말 약자 같네요.

                
권부남 그런 면에서 분명히 정책적으로 소외되는 부분이 있죠. 청소년 예산은 깎이면 깎였지, 늘지 않는 게 현실이잖아요. 위캔센터에서도 청소년이 직접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청소년위원을 의무적으로 두고, 어떻게 하면 청소년을 위한 시설을 만들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요. 그런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죠. 위원으로 참여하는 아이들 역시 정말 바쁜 아이들이고요.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청소년 위원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스펙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서열화하는 행태에서 벗어나야 하잖아요. 요즘 청소년에게 ‘꿈이 뭐냐?’라고 묻는 것도 폭력처럼 느껴져요. 계속 꿈을 꿔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잖아요. 어른이 청소년에게 정말 관심을 갖고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걸 해 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른이 청소년을 위해 만들어준다는 공간도 결국 아이들이 ‘학습’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하는 공간이잖아요. 청소년이 흥미를 갖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지요.

이용원 예전에 청소년들과 대화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아이들이 그랬거든요. 청소년끼리 데이트할 수 있는 데가 없다. 우리도 어른들이랑 똑같이 연애한다. 카페에 가서 어른과 똑같은 돈을 내고 영화관에 가도 비싼 돈을 주고 영화를 본다. 우리는 벌이도 없는데 그렇게 해야 한다.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른들 눈치까지 봐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만난 아이들은 편안하게 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거든요. 위캔센터 같은 청소년 시설이  그런 기능을 하면 좋을 텐데요.

권부남 먼저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작은 단위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요즘 마을 공동체 단위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면서 이 사회가 지닌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잖아요. 이 섹터에서 청소년 문제를 함께 다룬다거나, 작은 단위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사실은 맞죠. 그런 개념으로 있는 게 청소년문화의집인데, 아직 많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아요. 그렇게 자리잡으려면 작은 마을마다 하나씩 있어야 하거든요.

이용원 청소년 문제 역시 ‘마을’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제도와 시스템으로 사회전반에서 한꺼번에 변화를 가져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듯해요. 마을에 어린이도서관이 따로 있는 것처럼 청소년 도서관이 있고, 거기에 다양한 프로그램 같은 것도 활발히 진행하면 작은 변화가 생길 테니까요. 거대한 기관을 만드는 것보다 마을 단위에서 실험을 계속하는 게 위험 부담이 적고 우리 사회의 관련 경험치를 높이는 데도 훨씬 도움이 될 듯하고요. 또 더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겠죠. 몸집이 작으니까요. 그래서 개인적로는 위캔센터처럼 이렇게 거대한 시설을 짓기 전에 작은 단위에 청소년 시설을 설치해서 접근성도 높이고 다양한 실험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관련 인력의 경험치도 높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권부남 충분히 동의할 수 있어요. 우리가 처한 환경 역시 아직은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마을로 들어가 다양한 사업을 함께 고민하고 기획해 보는 것부터 한 번 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사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게 청소년 문제예요. 그럼에도 청소년들을 계속 만나야죠. 결국엔 아이들이 편안하게 올 수 있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지역의 다양한 단위에서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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