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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1호] 시장이 살아 있다
전통시장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생겼다. 사람이 많이 지나는 자리에 상인들이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도 많아지고, 점포도 생겼다. 몇십 년씩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전통시장은 대부분 그렇게 생겼다. 자연스럽게 생긴 만큼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특별히 주목하거나 공간으로서 의미부여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었다. 묘하게도 전통시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전통시장이 활기를 잃으면서부터였다. 시장이 활기를 찾으려면 대형마트와 비슷해지거나 시장만의 무엇을 찾아야 했다. 처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형마트와 비슷해지는 것이었다. 마치 마트와 비슷하게 시장은 조금씩 변했다. 비가 와도 걱정이 없도록 우산을 씌우고, 보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깔끔하게 정리했다. 시설현대화사업만으로는 예전과 같은 명성을 찾지는 못했다. 깔끔하게 하는 것만이 마트로 발길을 돌린 사람들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이다
2008년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이하 문전성시)으로 처음엔 시장에 문화예술이 들어갔다. 시장에 문화를 불어넣을 수 있는 청년이 들어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1년 문전성시 사업으로 시작한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이었다. 2011년 시범 점포 두 곳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2년 열두 점포를 모집해 남부시장 2층에 문을 열었다. 풍남문 북쪽으로 전주천이 흐르는 다리가 있는 곳까지 죽 남부시장이다. 청년몰은 남부시장 열 개 동 중 6동 2층에 있다. 청년몰이 들어오기 직전까지 2층 전체가 빈 점포였다. 청년몰이 생긴 이후에는 1층에 있던 빈 점포에서도 관광객을 위한 상점이 생겼다. 6동은 열 개동 중 유일하게 점포가 늘어난 동이었다.
사람은 많이 찾았지만, 남부시장의 터줏대감들에겐 별다를 것 없는 시간이었다. 남부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 이 씨는 지나가는 사람만 많아질수록 장사가 잘 되던 때가 더 그리웠다. 1층에 남은 상인들은 이제 별다른 기대 없이 시장에 나온다. “그런 시절은 이제 안 돌아오지.”라는 이 씨의 말을 많은 상인이 비슷하게 했다.
“청년몰 생기고 사람이 많이 왔다 갔다 하지. 그런데 다들 먹으러 오는 거지. 상인들은 별거 없어. 사람이 많이 오니까 안 오는 것보다는 좋지.”
IMF 이후부터 장사를 시작한 윤 씨에게 청년몰, 야시장 등의 최근 변화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같은 6동에 있어 예전보다 사람이 많이 다녀서 활기가 있어졌다는 게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이었다.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층에서 몇 년씩 장사를 한 청년들에게는 매년 변화의 연속이었다. 이제 3년 차를 맞은 새새미는 매년 장사에 임하는 마음도 생각도, 다르다. 첫해는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두 번째 해는 한옥마을에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덩달아 청년몰에까지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처음엔 생각지도 못했던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때 청년몰은 한옥마을과 함께 전주 여행의 필수 코스였다. 그리고 세 번째 해인 2016년은 생각이 많아진다.
“제가 만들어 파는 복주머니가 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제품은 아니잖아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니까, 먹거리 같은 것의 매출을 이길 수 없는 거예요.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까 이런 형태의 가게를 운영하게 됐는데, 올해 들어서 이렇게 장사를 계속해야 하는 건지, 관한 고민이 많이 돼요.”
유천시장 입구에 걸린 청춘 삼거리 현수막
올해로 2년째인 사람, 이제 막 들어와 자리 잡은 지 3개월이 된 사람, 청년몰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자리를 지킨 사람까지 2층 청년몰에서의 시간은 1층과는 달랐다. 그곳을 지킨 물리적 시간도 다르고, 그곳에서 흐르는 시간의 더께도 달랐다.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밋밋하게 흐르던 시간은 2층에 올라오니 큰 곡선을 그렸다.
“처음 시작할 땐 부모님도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당시엔 이것밖에 하고 싶은 게 없었고 120만 원으로 시작했어요. 이제는 어찌 됐든 혼자 벌어서 먹고사니까 잘했다고 하세요. 고민이 되는 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거죠.”
이들에게 지금은 끊임없이 변해야 할 시간이었다. 2012년 문을 연 열두 점포 중 하나였던 보드게임 카페인 같이놀다가게의 주인장은 2016년 5월 결혼을 해 홍성으로 귀농했다. 장사가 잘되지 않아서, 시장 밖으로 가게를 확장해 나가서 자리를 옮기는 청년도 있었다. 그렇게 자리가 나면 또 들어올 사람을 모집한다. 서른 개 가까운 점포가 거의 다른 품목이라서 구경 온 사람들은 이것저것 눈요기를 하고 간다.
'동기'가 있어서 든든하다
“원래 다른 데서 장사를 했어요. 방송을 보고 남부시장에 왔는데 느낌이 좋았어요. 바깥에서 장사하면서 많이 지쳐 있었어요. 사람들이랑 경쟁하고 날을 세워야 하는 게 힘든 시기였죠. 여기라면 그런 게 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마침 자리가 나서 이력서를 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제가 들어오고 메르스가 터졌어요. 들어오자마자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 전에 한참 한옥마을 때문에 엄청 사람이 많았을 때였거든요. 그런데 물질적으로 여유가 없어도 여기 있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겨요. 지금도 주말을 빼면 장사가 잘 되는 날은 별로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친구들이랑 모여 있으니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마음이 치유되더라고요.”
태평시장 맛it길 점포들
개in주인의 노한빈 대표의 이야기다. 청년몰의 청년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한 건 함께 있어서 생기는 에너지였다. 같이 잘 되기 위해서 논의하고, 한 가게만 잘 된다고 질투하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이 올 수 있도록 논의한다. 이벤트도 준비하고, 홍보도 한다. 사람이 많이 와서 2층이 북적거리면 다 같이 좋고, 조용하면 또 같이 마음을 달랜다.
2016년 대전에 문을 연 중구 태평시장 맛it길이나 유천시장 청춘삼거리 청년들 역시 같이 있어서 덜 외롭다는 걸 가장 좋은 점으로 꼽았다. 태평시장 맛it길과 유천시장 청춘삼거리는 2015년 중소기업청이 실시한 전통시장 청년 상인 창업지원 사업으로 문을 열었다. 전통시장의 유휴 점포를 활용해 열 개 이상 점포의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창업 멘토를 선정해 교육을 받도록 하고, 홍보를 돕고, 일정 기간 점포 임차료 일부를 지원한다. 올해 4월 20일 태평시장 맛it길, 5월 31일 유천시장 청춘삼거리가 문을 열었다.
다시 활기가 돈다
활기가 돌던 시장이 컴컴해진 시간, 불이라고는 없었던 골목이 환하다. 오후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태평시장 맛it길은 태평시장 골목 한구석에 있다. 무대가 될 수 있는 마당을 중심으로 오밀조밀 열 가게가 모였다. 품목은 주로 고깃집이나 술집이다.
“처음엔 정말 폐허 같았어요. 공간을 보고는 뜨악해서 포기한 분도 있었고요. 리모델링 하고 청년이 모여 있다는 인상이 드니까 좀 밝아졌죠. 나중엔 골목 전체에 청년들이 들어오면 좋겠어요. 아직 뒤에도 빈 점포가 있거든요.”
“처음엔 정말 폐허 같았어요. 공간을 보고는 뜨악해서 포기한 분도 있었고요. 리모델링 하고 청년이 모여 있다는 인상이 드니까 좀 밝아졌죠. 나중엔 골목 전체에 청년들이 들어오면 좋겠어요. 아직 뒤에도 빈 점포가 있거든요.”
수육 집을 운영하는 우병우 씨의 이야기다. 스물셋부터 서른일곱까지 태평시장 청년들은 연령대도 다양했다. 기존 상인들은 어두컴컴했던 골목이 청년들 덕분이 환해지고 깨끗해진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원래는 태평종합상가였는데 차츰 사람이 모이면서 시장이 된 거예요. 30년쯤 됐을 거예요. 골목이 다 빈 건 10년 정도? 처음에 청년들 들어온다고 했을 때 가족끼리 놀러 갈 수 있는 데인 줄 알았는데, 죄다 고깃집이어서 좀 아쉬웠어요. 아이들이랑 즐길 거리가 있는 곳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웠죠. 뭐 말로는 나중에 공방이나 이런 것들도 함께 문 열도록 한다고 하니까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태평시장 맛it길로 향하는 발자국
시장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 김 씨의 이야기다. 태평시장과 유천시장은 남부시장 청년몰처럼 관광이 목적인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태평시장 맛it길은 ‘돼지고기’ 하면 생각나는 골목이 콘셉트였다. 그래서 뒷고기, 수육, 포장마차 등의 먹을거리가 많았다. 유천시장 청춘삼거리는 주전부리, 특색 있는 음식점이 있는 골목이었다. 떡 카페, 전통찻집, 빵집, 라면집, 초밥집 등 보통 시장에는 없는 먹을거리가 많았다.
앞으로는 희망이 있다
유천시장 청춘삼거리는 세 개 골목에 열 개 점포가 띄엄띄엄 있다. 청년 상인들은 ‘모여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직도 삼거리에 남은 빈 점포에 다른 청년 상인이 들어오면 더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생각한다. 시장에 들어온 청년들은 작은 것에서 희망을 본다. ‘꾸준히 장사하며 좋은 소문을 탄다면, 기존 상인들과 함께 힘을 합한다면’과 같은 가정은 앞으로 함께할 일을 생각하게끔 한다.
“부모님이 시장에서 떡집을 하셨어요. 장사하신 지가 40년 정도 됐고요. 어릴 때부터 시장을 죽 지켜봐서 누구보다 잘 알았어요. 처음에는 프로젝트 자체에 비관적이었어요. 시장에서 뭐가 될까 싶었죠. 엄마 가게가 바로 옆이니까 같이 해 보자는 엄마 말에 준비하면서도 불안했어요. 그런데 함께 창업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첫 번째 희망을 보았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하면서 같이 잘 될 생각을 해요. 다들 착해요. 또 정말 좋았던 건 저희가 들어오니까 상인분들이 가게 앞 청소를 하는 거예요. 모두가 지저분했을 때는 신경 쓰이지 않던 게 깨끗하게 리모델링한 점포가 들어오니까 물건 하나라도 더 정리해 놓는 식으로 신경을 쓰시더라고요. 저희가 오고 처음으로 상인회 회의 했을 때였어요. 평소 오지 않던 분들이 다 회의에 참석하셨어요. 고마웠어요. 뭐든 같이 만들어야 하잖아요. 우리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희망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청춘삼거리 떡 카페 정윤희 씨의 이야기다. 윤희 씨에게 시장에서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다만 같이하는 청년들이 얼마나 오래 버티고,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다. 남부시장 청년몰의 경우 사회적기업 이음에서 청년몰 매니저를 고용해 청년몰 전체를 관리하도록 한다. 청년몰 매니저는 청년들과 함께 청년몰에서 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빈 점포가 생겼을 때 입점 신청을 받고 선정하고, 청년몰 자체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돌본다. 태평시장 맛it길이나 유천시장 청춘삼거리는 올해 7월부터는 청년들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도록 한다. 만약 두 시장도 운영 주체가 있어 전체적인 관리를 한다면 청년몰처럼 창업을 하고 싶은 청년들의 플랫폼 같은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복잡한 일이 많겠지만, 젖혀 두고 보면 말이다.
시장이 움직인다
남부시장 청년몰은 2층에서 독립된 공간처럼 운영한다. 상인들과는 지나가면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의 교류 말고는 특별히 부딪힐 일은 없다.
“어느 날에 제가 지나가는데 어떤 관광객이 청년몰을 묻는 거예요. 남부시장이 넓어서 처음 오면 헤매기 쉽거든요. 그런데 한 상인분이 손가락으로 요리조리 가리키다가 ‘에이’ 하더니 데려다주겠다고 앞장서 가는 거예요. 그걸 보고 정말 감동했거든요. 인정받는다는 느낌이었어요. 고마웠어요.”
“어느 날에 제가 지나가는데 어떤 관광객이 청년몰을 묻는 거예요. 남부시장이 넓어서 처음 오면 헤매기 쉽거든요. 그런데 한 상인분이 손가락으로 요리조리 가리키다가 ‘에이’ 하더니 데려다주겠다고 앞장서 가는 거예요. 그걸 보고 정말 감동했거든요. 인정받는다는 느낌이었어요. 고마웠어요.”
박한빈 씨의 이야기다. 완전히 따로인 것 같지만, 시간은 옛 시장과 새 시장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시장이 마트와 다른 점이라면 우리 지역에 발 딛고 선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거다. 시장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부딪히고, 소리 내고, 왔다 갔다 발길을 주어야 움직이는 공간이다. 시간이 더 흘러야 하겠지만, 앞으로 시장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기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50대가 기억하는 시장과 30대가 기억하는 시장의 모습이 다르듯이 10대가 기억할 시장 역시 달라질 것이다.
글 이수연 사진 이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