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0호] 눈 감고 세상 바라보기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세월호 2주기 추모대회 날, 어둠이 내리고 좁은 무대에 올랐다. 도종환이 가사를 쓴 백자의 ‘담쟁이’라는 노래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절과 무기력, 분노와 희망 같은 단어들이 서윤신의 몸짓을 타고 무대를 벗어나 광장 전체로 흘렀다. 수백 개의 눈앞, 흔들리는 작은 촛불들 앞으로…. 서윤신은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할 것이 무엇인지 춤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춤으로 해야 할 일

세월호 사건은 서윤신에게 결정적 계기였다. 주로 가족, 주위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몸짓을 만들어내던 그가, 2년 전 4월 16일을 계기로 우리가 알아야 하지만 놓치고 있는 이야기들, 사회적 이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혼자 팽목항을 찾았다. 뉴스로 현장에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접했고 바로 팽목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본 실제는 뉴스에서 떠들던 것과는 달랐다. 그 이전과 후의 삶이 같을 수는 없었다. 
춤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하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자신의 몸짓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움직였다. 시청 앞에서, 길거리에서, 광장에서, 사람들 앞에서 춤을 췄다. 

                   
세월호 1주기 추모대회 때도 무대에 올랐다. 무용수 강혜림과 함께 물에 젖어 가면서,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현장의 모습을 전하려고 애썼다. 노란색 비행기를 접어 날려 보내기도 하고 물 위를 첨벙첨벙 다니면서 살고 싶어 했던 아이들의 마음을 간절한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올해 2주기 추모대회 때는 혼자 무대에 올랐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그날의 일을 잊는 것 같아, 좀 더 버티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안무를 했다. 답답함과 절망감을 표현하면서도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면 벽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예술가로서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 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서윤신은 그런 마음으로 무대에, 사람들 앞에 선다. 어떠한 압력이 두려워 자신의 철학을 꺼내지 못한다면 예술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다. 

                 

               

FCD Dance Company, 그리고 대전

서윤신을 설명할 말은 많다. 극단 ‘혜윰, 울. 너머’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현대무용과 힙합, 마임 등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한다. 3년 전, FCD Dance Company도 그런 마음으로 창단했다. FCD는 Freestyle Contemporary Dance라는 뜻으로 다른 장르의 춤을 추는 이를 모아 각자의 장점을 살리면서 하나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반 댄스를 하는 박병규, 락킹을 하는 임희수, 한국 무용을 하는 하정만, 현대무용을 하는 강혜림과 정소희 그리고 포토그래퍼 Elbert, 조명 감독 박병철이 FCD Dance Company의 단원이다. 


FCD Dance Company는 대전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외국으로 나갈까 우리나라에 남을까 고민하던 서윤신은 발 딛고 사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 땀 흘린 대전에서 자리를 잡고자 했다. 누구나 자신이 자라난 곳을 떠나 서울에서 활동한다는 게 안타깝고 한편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서울로 가는 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대전에는 활동할 만한 생태계라는 게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기. FCD Dance Company를 창단해 이어 온 과정이 그랬다. 힘드니까 단원들도 버티다 나가고를 반복했다.  


무용계는 대학교 무용단들이 ‘줄’이라는 것을 잡고 있다. 대학교의 무용단이 아니라 하더라도 명맥상 대학교 관련 무용단이 주류를 이룬다. 그렇지 않으면 주류에 끼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환경을 깨 보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움직임으로 사람들 앞에 서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움직임을 제대로 봐 주지 않았다. 예술을 경연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서윤신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는다. 그렇지만,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밀려나 대전에서 활동한다.’라는 선입견과 오해의 시선을 떨쳐 내고 싶었다. 최근 여러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니 달라진 시선을 느낀다. 힘들게 이끌어 온 FCD Dance Company의 움직임을 진지하게 봐 주는 사람들이 늘었다. 

서윤신은 현재 FCD Dance Company의 임시 대표다. 무용단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대표 역할을 하고 이후에는 대표가 없는 무용단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물음표로 시작해 느낌표로

지난 5월 6일, FCD Dance Company는 대전예술가의 집에서 ‘눈 감고 세상 바라보기’라는 이름으로 공연했다. 우리 주변에 가치 있는 것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볼 수 있다고, 몸짓으로 말했다. ‘21 Grams’와 ‘Hangman Game’이라는 작품으로 처음과 끝을 구성했고 그 사이에는 단원들 한 명씩 무대에 올라 각자가 원래 하던 장르의 춤을 췄다. 다양한 장르의 춤을 추는 사람이 모여 하나의 몸짓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많은 사람 앞에서 춤으로 보여 주었다.

서윤신, FCD Dance Company는 앞으로도 대전에서, 많은 사람 앞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여 줄 것이다. ‘대전에서 잘 나가는 무용단’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전 시민에게 다가가는 무용단’이 될 것이다. 시민이 쉽게 예술을 접하고, 예술에 눈을 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FCD Dance Company는 그러한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예술가들이 편하게 찾아와서 이야기 나누고 연습하고 먹고 잘 수 있는 공간, 시민과 소통하며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예술을 가까이 접한 적이 없는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움직임을 선보일 것이다.


FCD Dance Company를 후원해 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티켓 판매와 홍보, 인쇄를 도와주는 이들도 있고, 단원들이 아플 때 무료로 진료해 주는 이도 생겼다. 서윤신이 안무할 때, ‘안무’만 생각할 수 있게끔 돕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다. 그래서 땀 흘린다. 그동안 땀 흘렸던 곳을 떠나지 않고 앞으로 계속 이곳에서 땀 흘릴 것이다. 


물음표로 시작해 느낌표로 끝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왜 저런 동작을 하지?’와 같은 관객의 물음이 공연이 끝난 후에 ‘아, 맞아!’ 하며 느낌표로 바뀌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관객이 집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작품, 그들의 삶에 물음표를 건넬 수 있는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서윤신은 주위를 둘러본다. .

                  

                


글 사진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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