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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0호] 대동 아이들의 거실
대동역에서 걸어서 10분 남짓. 대동 아이들을 위한 작은 공간이 나온다. 파란 조각구름이 걸린 이곳은 대동에 거주하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도서관이자 놀이터다. 건물 가까이 다가서면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이 공간에 모이게 된 지 이제 2년이 됐다. 이 공간에서는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간식을 먹으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한다. 자기 집 거실인 양 아이들은 이곳이 편하고 좋다.
대동초등학교 앞에 있는 조각구름은 마치 블록같이 생겼다. 네모난 하얀 건물에 파란 문이 하늘에 걸린 구름 같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이들이 편하게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책걸상이 보인다. 어김없이 아이들은 그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공간 한편에는 그림책이 가득한 책장이 보이고 그 공간 위에 작은 다락방이 있다. 아이들은 수시로 다락방에 올라가 책을 읽는다. 작은 아지트다.
지난 5월 7일부터 조각구름은 그림책도서관이 됐다. 꼭 그림책이어야 했다. 아이들의 즐거움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쉽고 재밌게 좋은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국제도서대회에서 수상한 그림책을 지금도 꾸준히 모으고 있다.
조각구름을 나와 건물 뒤편으로 걸어가면 초록색 대문이 하나 나온다. 대문을 열면 보이는 작은 사무실은 조각구름의 또 다른 공간이다. 지금은 사무실이지만 처음에는 이우람 씨와 친구들이 살던 공간이었다. 대동 아이들과 진짜 친구가 되고 싶어 조각구름을 만든 직후 이 집에 살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은 처음에 대동으로 이사 온다는 이우람 씨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동네 주민이 되고 나니 점점 살가워지기 시작했다. 때때로 집에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배호익 씨와 이우람 씨가 대동에 오게 된 건 우연이었다. 봉사활동을 위해 자주 모이던 지인들의 모임에서 대동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자는 의견이 나왔다. 대동은 6·25전쟁 당시 피난 온 피난민 중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지금은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지만, 아직도 서글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동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은 게 단순한 이유였다. 단지, 아이들과 놀아주고 싶은 마음 하나로 대동에 오게 됐다.
처음 시작은 토요일에 아이들과 대동초등학교 강당에서 노는 것이었다. 처음엔 강당에서 그다음은 운동장, 공원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가끔은 등산을 가기도 했다. 아이들과 만날수록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커지고 아이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집처럼 매일 들를 수 있는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을 찾아 오랜 시간을 헤맸다. 그러다 지금 조각구름이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옷 수선 가게가 나가고 오랜 시간 비어있던 이 공간을 발견하자마자 배호익 씨는 이곳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건축 관련 일을 하던 배호익 씨는 직접 아이들을 위해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허름하던 곳이 자원봉사자들의 손으로 하나의 공간으로 완성되자 아이들의 발길이 늘어났다.
조각구름은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진행한다. 프리마켓과 운동회, 음악회 등 아이들이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왔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적극적이다. 음악회와 축제 등 올여름에도 다양한 문화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조각구름의 목표는 대동에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문화를 통해 이 지역이 소외된 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아이들이 다양한 문화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이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길 바란다. 말보다 아이들이 직접 느끼게 하고 싶어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되도록 조각구름을 꾸몄다. 조각구름이 유난히 따뜻한 공기를 가진 이유도 여기 있다.
“조각구름이 마을 전체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시발점이 되길 바라는 게 저희 마음입니다. 아이들이 변화하고 부모가 변화하면 마을 전체가 변할 거예요. 저희는 아이들이 조금씩 변하는 걸 보고 있고요. 그래서 이름을 조각구름이라 지었습니다. 작은 이 공간이 구름이 되어 마을에 단비가 내렸으면 좋겠어요. 조각구름을 통해 대동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상상하니 웃음이 나옵니다.”
“조각구름은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문화 활동으로만 가득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하고 싶습니다. 이건 자원봉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모은 결정이에요. 프로그램이 목적이 되어 아이들이 흥미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어 수업과 같은 특별한 수업을 하겠다는 자원봉사자들을 정중히 거절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필요한 게 아니라 친구가 필요하니까요.”
조각구름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오는 이유도 이에 있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이곳에 들러 간식을 먹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다. 오래 있지는 않아도 꼭 들러서 얼굴을 비치고 간다. 이유는 단 하나다. 마음껏 노는 공간, 아무 때나 들어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이들의 거실이 됐다. 조각구름을 통해 많은 아이가 변했다. 처음에는 감정표현이 서툴고 거칠었던 아이들이 지금은 낯선 사람에게도 웃으며 먼저 인사한다. 아이들이 솔직해지고 있다. 조각구름은 욕심내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변화하는 순간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