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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0호] 용이 세 개인 남자
그는 비슷한 시간이면 어김없이 골목길에 나타났다. 장원약국 앞 버스가 다니는 큰길에서부터 골목길을 훑어 우리가 놀이판을 벌인 곳을 지나는 시각은 대략 오후 너덧 시쯤 되었다. 비 오는 날은 장난이나 놀이를 접고 기와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세며 배를 깔고 삼삼오오 숙제를 하곤 했기 때문에 그가 이곳을 지나갔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놀고 있을 때면 틀림없이 그가 나타나곤 했기 때문에 비 오는 날도 그곳을 지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볼 따름이다.
그 남자의 이름은 삼룡이다. 실상 이 이름도 그의 본명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어른들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만화 영화에서 보면 용은 상상 속의 동물로 비를 부르고 번개를 무기 삼아 무시무시한 힘을 과시한다. 그런 용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셋이라니…. 그러나 용 세 마리는 삼룡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것이었는지 그는 다리를 심하게 저는 장애를 갖고 있었다.
학교가 파한 후 마루에 가방을 냅다 집어 던지고 녹물 냄새 심하게 나는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신 다음 우리는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들처럼 골목에 모여들었다. 어제 하다가 중단된 놀이를 이어서 하거나 새로 편을 갈라 오늘 아니면 못 놀 것처럼 놀았다. 놀이가 한창 무르익어 우리의 함성이 커질 때 삼룡이가 등장하면 우리는 찬물을 끼얹은 연탄처럼 피시식 열기가 식어 담벼락에 붙어 설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 누군가가 손수레를 끌고 삼룡이는 손수레 뒤에 바싹 붙어 서서 집게를 들고 골목 여기저기에 뒹굴고 있는 종잇조각 등을 주워 올렸다. 좁은 골목에 손수레의 등장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그의 한없이 느린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우리는 종종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삼룡이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쯤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삼룡이는 바보래요, 바보래요.”를 합창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짓궂은 놀림이 한두 번도 아니건만 삼룡이는 매번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운 고개를 힘겹게 돌려 우리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양손 검지를 볼에 가져다 대고 비비면서“‘메롱, 메롱.”을 외쳤다.
그의 등장에 익숙해진 우리는 삼룡이가 골목 어귀에 나타나면 자동으로 “삼룡이다.”를 외치며 놀이를 잠시 멈추기도 했고, 어떤 날은 그를 놀리는 것도 심드렁해져서 눈길을 주지 않기도 했다. 어느 해인가, 며칠 동안 삼룡이가 보이지 않았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그를 놀렸던 나는 처음 그가 보이지 않던 날, 뭔가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듯한 아쉬움을 느꼈다. 이튿날에도 삼룡이가 보이지 않자 놀이를 방해받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사흘째에는 슬슬 궁금한 생각이 들었고, 급기야 나흘째에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동네 친구에게 삼룡이가 어디 사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들이 삼룡이는 또랑 다리 밑에 산다고 알려 주었다. 지금은 대동천이라고 부르지만 그 시절에 우리는 그냥 또랑이라고 불렀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이른 아침에 대동천변에 모여 하천 정화활동을 할 때 빼고는 또랑에 거의 가지 않았다. 냄새가 심해 우리의 놀이터로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오후 짬을 내어 대동천으로 갔다. 고려극장 근처에 있던 다리쯤으로 기억한다.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니 다리 끝과 뚝방이 만나는 곳에 박스를 켜켜이 쌓아 간이 침상을 만들고 주변을 거적으로 대충 막은 허름한 곳이 눈에 띄었다. 거적은 길이가 짧고 폭이 좁아 주위의 시선을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변에는 동네 여기저기에서 주워 모은 것으로 보이는 고물이 널려 있었다. 마침 어떤 사람이 대동천을 등지고 모로 누워 있었다.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삼룡이가 끙끙 앓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후다닥 뛰어 대동천 가로 달아났다. 왜 나는 집으로 갈 생각을 못 했을까. 천변에 쭈그리고 앉아 작은 막대기를 주워 수초에 낀 물때가 긴 머리카락처럼 하느작거리는 것을 쑤석거렸다. 짙은 회색 빛깔의 흙이 물속에서 잉크처럼 번졌다가 스르르 가라앉았다. 바람이 불면 쩌든 빨랫비누나 매캐한 연탄 냄새 같은 것이 몰려왔고 그때마다 나는 까닭 모를 슬픔에 빠졌다. 그 후 삼룡이를 놀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깊은 관심을 두고 있던 것도 아니어서 그에 대한 기억은 흐지부지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대동천이 정비되고 번듯한 다리도 생겼다. 수질도 좋아져서 물오리, 왜가리가 살고 수달도 종종 찾아오는 곳으로 변모하였다. 그래도 대동천에 가면 다리 위보다 다리 아래에 먼저 시선이 간다. 다리 아래 그늘진 곳에 서면 철없던 시절과 삼룡이에 대한 추억이 불쑥 막을 젖히고 고개를 내민다. 그에 대한 마음의 짐 때문에 나는 언제까지고 다리 아래를 향한 시선을 거둘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