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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0호] 우리는 계속 다르게 살고 싶다
아이엠궁, 조선그루브, 반지하멜로디, 대전대학생문화기획단, 대전아트프리마켓, 청춘메세나, 청년고리 등 비슷하면서 다른 청년 단체가 생겼다. 활동을 중단한 단체도 있고, 활동을 지속하는 단체도 있다. 현장에서 자주 만나던 청년들은 어떤 때면 함께 일하는 동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나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사라질 때마다 상실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했다. 더는 누군가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야 했고, 문화 활동 같은 건 안정적인 직장을 잡은 이후에 취미로만 하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는 계속 들리고, 치킨이 먹고 싶을 때는 망설이지 않고 먹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과 끊임없이 부딪혔다는 데 공감했다. 시간이 지나며 경험이 축적되고, 더 나은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에 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세대가 바뀐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여전했다. 청년들도 자신들의 활동이 대학생 때 잠깐 하는 외도로만 그치는 게 안타까웠다.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마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처음엔 청년 활동을 재미있게 하다가도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시점에서 다른 문제가 되더라고요. 경제적인 문제로 계속 부딪히게 되는 거죠. 청년 자신도 재미로 그치는 게 아니라 경제적인 활동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엄청 멀고, 결국 그만두는 청년이 많은 거예요. 어떻게 하면 해결지점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결론적으로 가는 건 제도적인 뒷받침이었어요. 지금 청년정책은 일자리 매칭으로 그치는 게 대부분이잖아요. 정부에서 청년에 관해 그리는 큰 그림도 ‘취업’에 매몰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취업’ 말고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모르는 거예요. 기회 빈곤이라는 말도 있어요. 지금 청년들한테 그만큼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나 기회가 부족하다는 거죠. 청년이 자생적으로 경제 활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청년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에 관한 생각은 청년 정책에 청년이 참여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게 되는 거예요.”
청년고리 이태호 대표의 이야기다. 청년고리는 처음 단체를 만들면서부터 청년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하는 방안 마련을 위해 다양하게 시도했다. 2014년 청춘옹알이를 개최하여 청년의 목소리를 모았다. 2015년 “Do you want to build Daejeon?”이라는 주제로 대학생정책제안경진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2016년 청춘올라를 개최했다. 3년간 꾸준히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과정을 시도했던 건 청년 스스로 청년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해야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5월 21일, 대전광역시NGO지원센터에서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개최한 청춘올라도 청년정책아이디어콘퍼런스였다. 첫해였던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매해 청년 콘 퍼런스를 개최하면서 느꼈던 부족한 점을 하나씩 보완해 청춘올라를 준비했다.
“청춘올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올라가 스페인어로 ‘안녕’이라는 의미예요. 또 청년들이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자리에 모여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역량을 상승시키자는 의미도 담았어요.”
사회자에게 간단한 설명을 듣고, 열여섯 개 조로 나뉜 청년들이 모였다. 테이블에 앉아 서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조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가상의 인물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다섯 명의 조원이 있으면 각자 인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수식어를 몇 개 뽑는다. 여성, 20대 중반, 성 소수자, 계약직, 아르바이트, 학생, 실업자, 군인, 자영업자 등 수식어로 입체적인 한 사람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인물이 살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를 고민해 본다. 처음 인물을 만들 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키워드를 뽑기 때문에 조원들은 함께 만든 인물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2015년 청년고리에서 대전청년보고서를 작성하면서 1,800여 명의 대전 청년에게 물었어요. 대전시에서 추진하는 청년 정책에 대해 아느냐는 물음에 93.1%가 모른다고 대답했거든요. 청년들이 그만큼 일상에서 정책을 느끼는 게 별로 없어요. 정부나 시에서는 청년을 위해서 이렇게나 많은 예산이 투여되고 있다고 답하는데 막상 피부에 닿는 정책은 없는 거예요. 그건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청년들의 괴리감 때문이거든요. 일상을 해결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정책에 반영되면, 청년들이 무언가를 하는 데 토대를 마련하는 거로 생각해요.”
청년고리 황은주 씨의 이야기다. 은주 씨는 2014년부터 매년 청춘 콘퍼런스를 준비하면서 콘퍼런스 자체나 구성원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걸 느낀다. 2014년과는 다르게 대전시에서도 청춘 콘퍼런스에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2016년 청춘올라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2차 만남 때에는 청년들의 공유공간인 벌집을 시작으로 비파크를 둘러본다. 이후 3차 만남 때에는 1차 만남에서 구상했던 정책을 구체화하고 대전시장과 저녁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후 청춘올라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정책 보고서로 만들어 대전시에 제출할 예정이다.
청춘들이 조마다 만든 가상 인물은 다양했다. 20대 주부부터, 취업준비생이자 아르바이트생, 인문계열 학생, 계약직 연구원 등 테이블마다 우리 청년들의 모습이 하나씩 그려졌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해결책으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건 청년 등을 위한 심야콜버스 ‘집에 가슈’, 대학생을 위한 1년간의 ‘꿈꿀 학기’ 제공, 청년들에게 공간을 빌려주는 ‘한번만 빌려줘요’ 등이 있다.
벽에 전시된 청년들의 정책 아이디어
“꽤 오랫동안 청년활동을 한 것 같아요. 청춘메세나랑 TedxDeajeon 활동을 하고 있어요. 처음엔 대외활동하려고 시작했고, 그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 만든다는 성취감 때문에 지속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조금 과도기인 것 같아요. 재미보다는 책임감이 커요. 후배들이 계속 TedxDeajeon을 만들 수 있도록 잘 알려주고 있어요. 그래도 계속 이런 자리에 오는 건 이런 활동으로 사람을 만나면서 나만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에요.”
자리마다 가상인물을 만든다.
구용진 씨의 이야기다. 혼자 품고 있던 문제는 누군가와 나눌 때 별것 아닌 것처럼 된다.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든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년이 대화하고, 대화가 어쩌면 사회를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청년을 모이게 했다.
청년들은 조금 다르게 살고 싶었다. 자기 삶에서도 청춘대기업에 다니는 것만 인생의 목표로 삼지 않으면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관해 생각하면서, 안정적인 것만 추구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도 내게도 즐거움을 주면서,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면서, 누구도 차별받거나 차별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가장 첫 번째가 모여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란 걸 이제 조금씩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