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9호] 새가 날아들어 편안히 쉬어가는 '봉소루'

기사머리글

이정도 비탈을 두고 ‘산동네’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평평한 대지가 아님은 분명하다. 윗길에서 내려다보면 짙은 색 기와가 납작하게 눈에 들어온다. 야트막한 산비탈을 닮았다.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겸손함이다.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5호인 ‘봉소루(鳳巢樓)’는 중구 석교동 보문산 남동쪽 기슭에 있다. 이 봉소루는 조광조의 학문을 이어받은 봉소재 남분붕(1605~1674) 선생이 지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선생은 조선 인조 때 장예원 판결사에 올랐다. 장예원은 조선시대 노비에 관한 문서 관리와 소송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판결사는 정3품으로 장예원의 최고 책임자다. 당상관 벼슬로 그 품계가 무척 높다.

대전 중구청 기록을 살펴보면,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청나라에 굴복하고 두 왕자가 인질로 잡혀가는 등 치욕을 당하자 그 분함을 이기지 못해 높은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인재 육성이 병자호란과 같은 국난을 막을 수 있는 대비책이라 여겼기 때문이란다. 뜻이 같은 선비가 전국에서 구름처럼 봉소루에 몰려들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청나라가 침입한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이 1636년이고 이때 남분붕 선생의 나이가 31살이었다.

여백이 제법 있는 넓은 터에 누각은 안채와 붙어 ㄱ자 형태를 취한다. 안채는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다. 누각은 앞면 1칸, 옆면 2칸 규모로 되어 있다. 누각에 오르려면 본채 마루에서 계단을 올라야 한다. 누각에 오르면 대전 남부권 전경과 대전역 쌍둥이 빌딩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록을 살펴보면 봉소루는 1714년(숙종 40년)과 1758년(영조 34년)에 고쳐 지었다. 이후 1970년대에 다시 고쳐 지었다. 이때 구들과 아궁이를 없앤 모양이다. 봉소루를 찾았을 때 문이 닫혀 있었다. 부속채 대문 앞에 붙어 있는 관리인 연락처로 전화를 해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남 씨 후손인 그이는 친절하게 응대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외형은 거의 비슷하지만 손을 대기는 했지요. 지금은 본채 구들을 내려 앉히고 방 두 개를 터서 하나로 만들었어요. 옛날에는 아홉 자 방이라고 하면 무척 큰 방이었는데 지금은 두 개로 합해도 그리 크지 않으니….”

방 하나가 아홉 자 방이었던 모양이다. 아궁이는 누각 아래 기둥 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봉소루 뒤편 산자락 쪽에 붙어서 살림을 하는 안채가 있다. 윗방과 대청, 안방과 부엌으로 구성한 한옥인데 이 건물은 문화재가 아니다. 지금 사람이 살고 있다. 안채에서 북쪽으로 조금 높은 곳에는 은진 송씨 병관이 지은 ‘증형조참의유허비문’이 누각 안에 섰다. 봉소루에서 좌측을 내려다보면 귀여운 조랑말 석물이 있다. 본래 자리가 아니다. 석물 옆 유래비에 그 자초지종이 비교적 상세히 적혀 있다. 이 석물은 봉소루에서 남쪽으로 150여m 떨어진 석교동 51-13번지 앞 길가에 있었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도로를 확장하면서 그냥 묻어 두었던 것을 2008년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으로 발굴해 지금 자리로 옮겨 두었다. 남씨 종중에서 봉소루를 시민에게 개방한 것도 이때다. 석물이 본래 있던 곳은 봉소루가 올려다 보이는 곳으로 이곳을 지나는 선비가 예를 갖추기 위해 말에서 내리고 오를 때 썼던 디딤돌이었단다. 그래서 이 석물 이름이 하마석이다. 하마석이라고 하기에는 모양이 독특해 눈길이 더 간다. 일반적으로 남아 있는 하마석은 자연석을 상판이 평평한 정도로 다듬거나 아니면 사각형 형태로 두 단 정도의 계단처럼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글자 그대로 말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내리도록 하는 기능성 석물이다. 근데 봉소루에 있는 하마석은 귀엽게 생긴 조랑말 형태다. 높이도 낮지 않다. 예닐곱 살 꼬마 아이라면 아빠가 번쩍 들어 말등에 태워야 할 정도다. 조랑말 옆에 보조로 돌을 놓아 두지 않았다면 뛰어내리다가 발목을 삐기 딱 좋겠다. 또 본래 있던 자리가 봉소루에서 너무 멀다. 그리 먼 거리에서 예를 갖추라고 하마석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도 고개가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묘지 옆 무인석이나 문인석과 함께 서 있으면 더 잘 어울릴 듯 싶다. 추정이다.

봉소루 주변에는 수령 200~300년인 느티나무가 울창하게 자란다. 봉소루(鳳巢樓)에 봉소(鳳巢)가 새의 보금자리라는 뜻이라고한다. 시끄럽던 매미 울음이 그치자 마자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봉소’라는 이름답게 봉소루 주변 아름드리 느티나무 여러 곳에 새가 날아드는 모양이다. 지금, 봉소루는 평온하다.

  

   

하마석


글 사진 이용원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