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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0호] 밑그림은 신중하게 그릴것
대전의 화두 중 하나인 ‘원도심 활성화’는 최근 몇 달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됐다. 대흥동 일대의 문화예술 공간 몇이 문을 닫거나 이사하게 된 것을 걱정하며 대전시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한 바람을 수용했는지 대전시는 최근 원도심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진단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앵커시설이라고 부르는 거점공간 확보다. 대전시는 선화동 옛 성산교회 건물, 중동의 옛 중앙동 주민센터 등을 활용해 예술인, 소상공인, 청년을 위한 거점공간 마련을 계획한다. 한편에서는 거점공간 마련 계획을 반기지만, 한편에서는 원도심에 관한 넓은 이해와 긴 시각을 바탕으로 신중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원도심 일대, 원룸이 들어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기존의 주민과 상인이 밀려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서울 홍익대학교 앞의 사례가 많이 거론된다. 예술가들이 그 지역만의 고유한 분위기와 문화를 형성하니 임대료가 올라 이들이 자리를 지키기 어려워지는 현상이다. 최근 대흥동의 여러 공간이 문을 닫거나 이사하면서 이를 홍대 앞과 같은 현상으로 진단한 보도도 있었다.
그런데 대흥동 일대의 현상을 홍대 앞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난 2월, 대전문화연대는 원도심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집담회를 열었다. 문화예술인이 도시를 활성화시킨 데 따라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다는 가설과는 달리 당시 자리에서는 과연 원도심이 문화예술로 활성화되었는지가 의문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대전시가 장기적 전망 없이 무분별하게 원도심 일대에 예산을 투여해 토지주, 건물주의 기대 심리를 높였다는 의견이었다. 대전시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주로 오갔는데 무언가 때려 부수고 다시 짓는 방식이 아닌 있는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대흥동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 일대의 고유한 매력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원룸 건물 때문에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리에 원룸 건물이 들어서 대흥동을 떠나게 된 대전프랑스문화원 분원. 전창곤 원장은 현수막에 ‘대흥동을 떠나며’라는 글을 실었다. - 원룸과 그 소유자들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지만 “근대도시”의 면모를 강조하려는 대전시의 몇몇 안 되는 근대의 흔적인 대흥동이, 원룸과 편의점만이 즐비한 거리로 변모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후대에게도 과거의 기억을 송두리째 말살한다는 점에서 큰 죄를 짓는 것처럼 보인다. - 글 중에서
대전시에 따르면 2011년에서 2015년 사이에 대흥동·은행선화동 지역의 건축물 중 다세대주택 용도로 승인받은 경우가 총 118건으로, 원룸의 숫자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대흥동·은행선화동 지역은 중구 다가구주택 승인 건수의 25.8%를 차지하며 특히 2015년의 승인 건수는 중구 전체(17개 동)의 40%가 넘는 비율을 차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전시는 원도심 일대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임대료보다는 원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고령화된 주민(토지 혹은 건물 소유자)들이 임대업을 시작하기 위해 원룸을 신축함에 따라 문화시설들이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룸 신축에 따라 정주 인구가 증가하고 주변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 등이 작용해 은행선화동 상권의 임대료가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전시가 마련할 거점공간
대전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응책으로 원룸 신축을 자제시키는 방안을 내세워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한다. 대책의 두 가지 주요 내용은 관리형 지구단위계획 수립과 거점공간 확보다. 원도심 지역을 대상으로 관리형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 원룸 건축 요건을 강화하고 건축물의 설계 심사를 의무화해 원룸의 난립을 방지할 계획이다.
거점공간은 옛 성산교회 건물, 옛 중앙동 주민센터 건물,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 내 대체주차장 예정부지 등을 활용할 예정이다. 예술인, 소상공인, 청년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고 이들에게 저가임대 형식으로 제공해 작업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시민 의견 수렴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홍보를 위한 공청회 개최, 관계 부서 공무원들의 T/F팀 운영, 상생협약 체결 추진, 젠트리피케이션 영향 분석 및 모니터링 방안 마련 등의 대책을 계획한다.
거점공간으로 활용할 중동의 옛 중앙동 주민센터 건물은 3년 전 정도부터 비어 있던 것이다. 현재 지하 1층은 헬스장, 3층은 노래교실로 쓰는 등 중앙동 주민센터에서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곧 대전시에서 매입할 예정이다. 추경예산 15억 원을 산정해 반영됐다. 대전시는 이곳을 청년, 공유, 공동체 등을 키워드로 하는 거점공간으로 계획한다. 대전광역시 사회적자본지원센터가 입주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거점을 만드는 일을 할 것이다. 이것 외에 자세히 정해진 바는 없고 주민, 관련자와 숙의 기간을 거칠 예정이다. 도시재생본부 담당자 이정호 주무관은 “시의 의지만이 중요한 게 아니고 수요자 중심의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양지근린공원 내에 있는 옛 성산교회 건물은 아직 뚜렷한 활용 계획은 없다. 현재 중구에서 공원을 조성 중이며 옛 성산교회 건물은 중구에서 대전시로 관리 전환 된다. 대전시는 이 공간에 지역 주민이 사용할 수 있는 업사이클링센터를 계획했다. 업사이클링 관련 사회적 기업 및 단체가 입주해 주민 참여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옛 성산교회 건물이 어떤 공간이 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곧 사업설명회를 개최하고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시민 공모를 받을 계획이다.
선화동 예술과 낭만의 거리 조성 사업은 현재 방향을 구상 중이고 거점공간 관련해서도 아직 세부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 없다. 또, 문화예술촌 조성을 계획하는 충남도지사 관사촌에도 거점공간이라고 할 만한 공간을 계획 중이지만 아직 진행된 바는 없다.
미래를 그리는 밑그림은 신중하게
대전시의 거점공간 확보 계획은 환영할 만하다. 시가 원도심 내 유휴공간을 확보해 예술가, 청년들에게 저가에 임대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은 끊임없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대전문화연대 박은숙 공동대표는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사까지 중앙로를 중심으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공간은 필요하다. 다만 큰 그림 속에서 연결 고리를 만들지 않으면 예산 낭비가 될 수도 있다. 지역을 고려하지 않고 선진지 시설을 이식하는 형태로는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대전시의 계획이 안타깝고 우려스러운 이유는 먼저 ‘시기’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대전시에서 조금 더 일찍 대흥동 일대의 원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그간 원도심 활성화 명목으로 투입해 온 예산을 좀 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또, 현재 다비치안경원으로 쓰이는 등록문화재 제19호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 무단 철거된 후 복원돼 뚜렷하게 활용되지 않는 등록문화재 제377호 대전 대흥동 일·양 절충식 가옥 뾰족집과 같은 근대문화유산을 시가 매입해 활용했다면 근대문화유산도 지키고 이를 많은 시민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거점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의 문제가 있다. 박은숙 공동대표의 말대로, 거점공간을 채울 콘텐츠는 지역성을 고려해 만들어야 한다. 중동의 옛 중앙동 주민센터 건물은 한약거리와 건어물시장 근처에 있으며 선화동 옛 성산교회 건물은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 옆에 위치해 있다. 이 두 건물을 활용해 만드는 거점공간은 주변 환경을 고려해 주민의 삶을 침해하지 않으며 주민들의 참여가 가능해야 한다.
또한, 대전에 거점공간을 채울 문화예술 생태계가 존재하는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주로 거점공간은 문화예술을 콘텐츠로 이루어지며, 대전시도 예술인, 소상공인, 청년들에게 작업 공간을 마련해 주는 역할을 거점공간에 부여할 예정이다. 우리 도시의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원도심을 향한 대전시의 관심이 한 맥락에 닿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각각의 사안에 따라 필요할 때 만들고 기능을 부여해 현재는 명맥만 유지되는 공간을 우리는 자주 봐 왔다. 원도심 내 젠트리피케이션 해결을 위해 만드는 거점공간은 원도심 전체를 바라보는 넓고 긴 안목 속에서 나와야 한다. 국토교통부의 2016년 도시재생 공모사업에 선정돼 진행하는 중앙로 프로젝트의 마중물 사업, 대전역세권~중앙로~옛 충남도청사를 아우르는 복합적 도시 재생 사업인 중앙로 프로젝트와 젠트리피케이션 해결을 위한 거점공간 마련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또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 중교로 차 없는 거리 행사와 거점공간 마련도 다른 문제가 아니다. 원도심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 그림 중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점공간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해결보다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유휴공간이라 할지라도 무언가 한 번 만들고 기능을 부여하면,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밑그림은 다시 한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