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0호] 광주에서만난 빛,문화,시민

도시재생 현장 광주 

‘5월에 방문할 도시’는 광주인가 보다. 작년 5월에는 개관 전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5.18 전야제에 다녀왔다. 올해 5월에는 개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광주의 도시재생 현장에 다녀왔다. 옛 전남도청 터 지하에 자리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둘러보고, 구도심 일대에 설치한 1차 광주폴리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는 철길 터에 조성한 산책로 푸른길과 주민 스스로 골목길 재생을 시작한 펭귄마을에 다녀왔다. 공개포럼을 하진 않았지만 매월 한 차례씩 만났던 원도심, 공간의 재발견 포럼 팀과 함께 5월, 광주에 갔다. 

           

              
문화중심도시 광주

‘광주 문화중심도시’의 시작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11월, 광주시는 ‘빛과 생명의 문화광주 2020기본계획’을 제출했다. 광주의 역사적 경험과 광주 비엔날레, 5월 문화의 특성 등과 같은 자원을 도시 발전 과정에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에서였다.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 역시 ‘광주 문화중심도시’라는 공약을 내세우고, 당선되었다. ‘광주 문화중심도시’는 그때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역시 문화중심도시 조성의 기본 계획안이었다. 광주 투어에 함께한 원공재 포럼 최정우 대표(목원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투어를 마친 자리에서 광주와 대전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해선 안 된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5.18광장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 

                   


“광주는 문화예술의 토대가 무척 단단한 도시죠. 역사적으로 축적된 남도 문화예술이라는 자원이 깔려 있고, 5.18 문화제, 광주 비엔날레 등 일상적으로 축적한 문화가 상당한 도시죠. 그러다 보니 시민이 ‘문화’라는 것에 합의하는 수준이 대전과는 차원이 달라요. 예를 들어 도시재생으로 어떤 공간을 지어야 한다고 했을 때 문화시설로 합의하는 데 걸리는 속도 차이가 크죠. 경험 때문이거든요. 우리가 본 광주폴리는 광주에서는 벌써 5년도 전에 시작한 이야기예요.”

               

                    

도심 곳곳에 이정표, 광주폴리

광주 구도심에 설치한 1차 광주폴리를 만났을 때 의아했다. 어디에선가 많이 본 건축물이었다. 거의 매일 지나다니는 중구청에서 밤이면 강렬한 분홍색과 녹색으로 반짝이는 네모난 출구처럼 보이는 조형물, 으능정이 곳곳에 놓인 커다란 장식물도 ‘폴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 

폴리는 전통적으로는 조경에서 주로 쓰이던 용어였다. 폴리라는 말은 흔히 예전 시골 저택 정원에 짓던 쓰임 없는 장식용 건물을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시공간의 개념이 변하면서 의미가 확장되었는데, 현대 건축에서는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장식용 시설물을 이야기한다. 광주폴리 프로젝트는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하나로 시작된 프로젝트로 당시 1차 광주폴리를 볼 수 있었다. 현재는 광주의 독립적인 프로젝트로 이어 나가고 있다. 남승진 교수와 함께 둘러본 1차 광주폴리는 광주 구도심 일원에 설치된 열한 개 작품이다. 1차 광주폴리는 광주 읍성 터를 중심으로 세웠다. 광주읍성은 일제 강점기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그 흔적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폐 철길 터에 조성한 푸른길 공원

                         

광주폴리는 차수마다 주제가 있었다. 1차 광주폴리는 ‘역사의 복원’이라는 주제로 열한 개의 폴리를 세웠다. 2차 광주폴리는 ‘인권과 공공공간’이라는 주제로 여덟 개, 3차 광주폴리는 ‘도시의 일상성, 맛과 멋’이라는 주제로 다섯 개 폴리를 세울 예정이다. 

             

    ▲1차 광주폴리 유동성 조절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김향순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김향순 도슨트는 발길을 옮기는 족족 빛의숲이라는 테마를 상기시켰다. 지하에도 고루 퍼지는 빛 때문에 전혀 지하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습하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김향순 도슨트가 반복했던 말 중 하나는 “전혀 지하라는 느낌이 들지 않죠?”라는 말이었다. 

▲ 지하인데도 내부에 빛이 고르게 들어온다.  

“광주는 길이 좁고 건물이 꽉 들어차 있어서 답답한 느낌이 많이 드는 도시예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모든 시설이 지하로 내려가면서 시민에게는 광장과 녹지공간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지상에서는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광장과 공원이 있습니다. 또 아시아문화전당에서 많은 분이 놀라는 시설이 예술극장입니다. 예술극장은 극장1과 2로 나뉘는데, 1,120석 규모의 극장1은 극장 밖 광장으로 개방하도록 설계하고 열여섯 개 방식으로 배치할 수 있는 가변형 무대입니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문화창조원 내부 상설전시

          

극장1에서 5월 20일부터 29일까지 열린 윌리엄 켄트리지 작가의 <더욱 달콤하게, 춤을>이라는 전시를 볼 수 있었다. 극장에서 전시한다는 말을 의아해하면서 들어서는 순간 화면에 비치는 검은 그림자의 인간 군상이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다. 45m 길이의 화면에는 노래하고 춤추며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계속 보여 준다. 

▲ 어린이 문화원 곳곳에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는 작품들이 있다.

            

그러나 옛 전남도청 본관을 비롯한 도청 회의실, 경찰청, 상무관 등 주요 5.18 사적지는 5.18민주평화기념관(1~5관)으로 리모델링을 마쳤지만 개방되지 않고 있었다. ‘광주’ 하면 누구나 떠올리고 가장 들어가 보고 싶어 할 공간은 정작 문을 닫았다. 
“광주는 역사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던 도시죠. 별관 일부를 철거한 것 역시 동의하지 않고 무작위로 진행했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많습니다. 5.18민주평화기념관 역시 그곳에 남아 있던 총탄 흔적이 리모델링하면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관을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항꾸네 가꾼 도시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편 따라 살자”
펭귄마을 한쪽에 쓰인 문구다. 양림동 주민센터 뒤편, 가스통으로 만든 펭귄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요즘 광주에서 유명하다는 펭귄마을이 나타난다. 쓰레기로 가득했던 골목을 가꾼 건 마을 사람들이었다. 엉성하고 어설프지만 많은 사람이 다녀가면서 유명해졌다. 주민들은 꾸준히 더러운 골목을 치우고 가꿨다. 이에 광주시와 남구는 펭귄 마을 일대 4천여㎡에 공예특화거리를 조성하기로 하고 터 매입을 준비하고 있다. 남구는 사업 예정지 가운데 건물과 터 80% 가량을 사들였으며 연말까지 매입을 완료할 방침이다. 광주시는 국비 17억5천만 원을 신청했으며 국비 확보가 순조롭게 추진되면 내년 1월 기본계획 용역에 들어가 2018년까지 공예매장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광주시는 시민이 시작해 완성한 것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도심철도 이전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용하지 않는 철길 터를 공원으로 만들자는 시민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1998년부터 3년간 지속적으로 냈다. 2000년, 광주시가 푸른길 공원 조성을 결정하고 2002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2014년까지 282억 원을 들여 총 12년 동안 8.2km의 폐 철길 터에 푸른길 공원을 조성했다. 그리고 2012년 말에는 푸른길 공원 시민참여관리운영 조례를 제정해 시민이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지만, 둘러본 많은 곳에서 오랜 시간을 들이는 꾸준함을 보았다. 펭귄마을에서는 주민이 직접 움직이고, 사람이 오가자 관이 나서 개발을 시작했고, 푸른길 공원은 광주 시민들에게 몇 년 동안 한 가지 이슈를 끌고 가 결국 만들어 내는 경험을 선물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전남도청 별관 일부가 헐리긴 했지만, 일부를 남겼다. 광주폴리는 폴리가 있는 장소를 죽 이어서 공간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사업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도시 전체에 폴리를 만들고 이것에 모두 이야기가 더해진다면 엄청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꾸준함은 관에서뿐만 아니라 시민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더 괜찮은 도시에 살 수 있도록 꾸준히 요구하고, 우리 도시가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는 것 역시 시민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이수연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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