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9호] 대동 작은집 두 번째 입주작가

“지구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있고, 인간은 그중 하나일 뿐이죠. 농촌에 사느냐, 도시에 사느냐와는 관계없이 우리가 모두 우주에 함께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자연 본래의 모습을 보는 인식을 가져야 해요. 인간은 농사를 지으면서 흙을 기름지게 만드는 일을 하려고 하죠. 그럴 필요 없어요. 땅에 손을 대면 반대의 결과가 초래돼요. 그대로 두면 동물이나 곤충, 식물이 알아서 땅을 기름지게 해요. 시간이 필요해요.”

   

  

“이 지구가 얼마나 기적 같은 곳인지 몰라요. 이 기적 같은 곳에 사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해요. 잡초도 마찬가지예요.”

   

  

다큐멘터리 <자연농 Final Straw> 중

  

  

  

  

8월 22일, 늦은 장마에 뜬금없이 비가 오다가다 했다. 그날은 오랜만에 해가 반짝 얼굴을 내밀었다. 해가 기울어도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가쁜 숨을 내쉬며, 대동 작은집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람이 먼저 손님을 맞이했다. 저녁 여덟 시, 옥상은 이미 한바탕 공연을 펼친 후였다. 다큐멘터리 <자연농 final straw>을 만든 패트릭 라이든과 솔밧(강수희)이 사람들 앞에 섰다. 이들은 대동 작은집의 두 번째 입주작가였다. 22일 상영회에에서는 대동에서 만든 책과 다큐멘터리 <자연농 final straw>을 공개했다. 그들은 지난 6월부터 대동 작은집에 머물며 다큐멘터리 <자연농 final straw>마무리 작업을 함께 했다.

“아직 완벽하게 완성한 영상은 아니에요. 다음 주에 미국으로 가서 음악 녹음 작업을 하고, 조금 더 수정해서 가을부터 천천히 상영회를 할 예정이에요. 씨앗을 던져준다는 말을 참 좋아해요. 이 영상이 씨앗이 되어서 많은 사람이 보고, 마음에 작은 씨앗 하나를 품었으면 좋겠어요.”

  

   

잡초는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잡초와의 싸움’, 농부가 농사를 정의할 때 종종 쓰는 말이다. 조금만 신경 쓰지 않아도 금방 풀이 자란다. 농부는 매일 밭에 나가 그 풀을 뽑거나 죽이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잡초가 무성히 자란 밭은 농부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게으른 농부’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자연농법은 그 게으름을 허락하는 농법이다. 자연을 공경하고, 땅을 갈지 않으며 풀을 뽑지 않는다. 화학 비료와 퇴비도 주지 않는다. 자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법’이다. 동물의 분뇨로 작물을 키우는 유기농법과도 구분한다.

“사실은 저희도 처음부터 자연농법을 명확하게 알고 영상을 찍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가서 듣고, 보고, 배우다 보니까 이게 농사방법이기도 하지만 삶을 사는 철학에 가까운 거예요.”

그들이 영상에 담은 농부들은 모두 삶의 이치를 탐구하는 철학자 같았다. 땅에 있는 벌레, 곰팡이, 잡초로 분류되는 모든 풀에 하나씩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인간관계를 맺고 푸는 데에도 자연스럽게 관점을 넓힐 수 있다고, 농부들은 말한다. 자연에 있는 것 하나하나를 차근차근 들여다보며 살았던 사람들, 그들이 만난 많은 농부가 자연과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할 지 알고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저희가 많이 변했어요. 자연농법을 시행하는 농부들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여요. 그들도 처음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대요. 자연농법이 워낙 정해진 법칙이 없어서 그래요. 지역의 기후와 땅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늠하고, 작물을 잘 자라게 하기까지 엄청난 실패를 겪는 거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시도했다가 포기해요. 그렇게 작물 기르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정말 철학자가 되는 것 같아요. 땅을 갈지 않고, 잡초와 벌레, 풀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 거잖아요. 모두에게 양보하고 다 함께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거예요.”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우리는 그동안 자연 위에서 군림하려고만 했다. ‘생산성’이 최대 목표가 되면서 인간에게 공생이란 낱말은 없었다. 더 많은 작물을 더 빨리, 더 보기 좋게 키워내야만 했다. 자연농법은 그것이 최우선이 아니라고 조용히 인간을 타이른다.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모든 우주는 연결되어 있고, 지구라는 별에 사는 우리 모두는 존재 이유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어떤 것도 함부로 생명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농부들이 자연과 함께 살며 깨달았던 삶의 이치다.

  

  

  

  

“콩 세 알을 심는다. 한 알은 새를 위해, 한 알은 벌레를 위해,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을 위해. 사람의 몫은 세 알 가운데 한 알이다. 대단한 양보다. 그렇게만 된다면 사람이 아니라 새와 벌레까지,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며 사이좋게 사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어떨까. 정말 인간은 세 알 가운데 두 알을 흔쾌히 다른 동물에게 주는가. 다 아시다시피, 인류는 그렇게 하고지 않는다. 농약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농약을 뿌리는 것은 세 알 중 두 알을 지키려는 행동이다.”

자연농 농부, 작가, 최성현, 강원도 홍천

  

  

“농부들을 보면서 우리가 당장 농사를 짓지는 못하지만, 도시에서 최대한 자연에 해로운 일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우리가 이런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제안하고 싶어서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편하다고 대형마트에서 음식을 사 먹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자연농법으로 기른 작물을 먹으려고 해요. 그래도 서울에는 조금씩 마켓이 생겨나는 추세인데 대전은 정말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채소 꾸러미를 주문해서 대동에서 하나씩 요리해 먹었죠. 자연농법으로 기른 작물을 구하기 가장 쉬웠던 곳이 스코틀랜드였어요. 스코틀랜드는 파머스 마켓이라는 곳이 있어요. 매주 농부들이 마켓을 여는 거예요. 거기 사람들 대부분 유기농이나 자연농에 관심이 많아서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었어요. 맥도날드에서 쓰는 달걀도 자연방사 유정란이에요. 만약 맥도날드에서 그런 음식을 팔지 않으면 먹지 않겠다고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거죠. 그러니까 바뀌었어요. 먹거리 파동도 몇 번 있었고요. 그런 식으로 관심 있는 사람이 늘고, 그들이 꾸준한 목소리를 내다보니까 전체가 변하기 시작한 거예요.”

두사람도 먹거리부터 시작해 조금씩 바꿨다. 휴지 대신 손수건을 쓴다. 소비자로 끊임없이 뭔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뭔가를 소유하지 않는다.

“만약 수희(솔밧)를 만나지 못했다면 실리콘 밸리 어딘가, 비싼 아파트에 앉아서 일하고 있었겠죠. 수희와 함께 지내며 많이 배웠어요. 이제는 다른 사람의 눈을 많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요. 정말 기분이 좋았던 때가 미국에서 살던 공간을 정리하고 영국에 갈 때였어요. 그때가 2012년 여름이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였거든요. 짐가방 몇 개로 생활했어요. 그렇게 가지고 있던 것을 하나씩 줄이니까 참 행복했어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소유라는 게 어쩌면 인간만 가진 욕심일 수 있겠구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가진 것을 내려놓고, 이미 만들어진 것을 활용하면 필요없는 것을 덜 생산하면서 살 수 있겠구나.”

  

   

햇볕을 받고, 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자란다
  
  

실리콘 밸리에서 테크니컬 라이터로 일하던 라이든 패트릭과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솔밧은 2011년 여름 카우치서핑이라는 웹사이트에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다. 자연농법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이들을 물리적으로 이어주었다. 하지만 이전에 이들은 언제나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물었다. 그리고 지금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변해 갔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이 드는 게 참 좋아요. 나날이 경험이 쌓이고, 좋은 인연이 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넓어지고요. 3년 전에 패트릭을 처음 만나서 이야기할 때 우리를 나무에 비유했거든요. 커다란 나무로 자라서 시원한 그늘에서 사람들을 쉬게 할 수 있는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어요. 아직은 한참 어린 묘목이지만, 이런 경험이 큰 나무로 성장하는 양분이 되겠죠. 앞으로는…. 정말 몰라요. 일단 8월 말에 대동을 떠나고, 서울에 조금 있다가 바로 미국에 갈 거예요. 거기에서 3개월 후에는 또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정말 모르겠어요. 일단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겠죠. 이렇게 떠도는 생활을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모두의 이해를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냥 좋은 동반자를 만나서 함께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행복해요.”

   

  

+ 패트릭 라이든과 솔밧의 더 많은 이야기 www.finalstraw.org


글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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